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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의 과학 산책] 가르칠 수 없는 것

매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하는 말이 있다. “그동안 많은 학생을 만나봤지만, 이번 수강생들은 특별했어요. 항상 호기심으로 수업에 참여했지요. 따뜻하면서도, 예리했어요. 좋은 제자를 만나 행복했습니다.” 박수와 탄성이 잦아질 때쯤, 다음 대사를 이어간다. “참고로, 강의 평가가 시작되었어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대개는 야유 섞인 웃음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실은, 농담을 빌린 나의 진심이다. 부족한 나의 말을 경청하고, 깨달아 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해진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이 어려운 일이, 이번에도 겨우 성공했구나. 한국의 교육은 위기다. 과열된 사교육은 군비 경쟁처럼 치킨게임 중이다. 개인의 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의 계층을 공고화한다. 모두에게 명백하지만, 누구에게도 대안은 없다. 외부의 도전은 어떠한가. 기술 전쟁에는 항복의 선택지조차 모호하다. 기초과학의 격차는 비대칭 전력이다. 1970년대 프랑스에도 교육의 위기가 있었다. 미소 강국의 경쟁은 프랑스를 후진 주자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념의 대립은 교육에 혼란을 가중했다. 이때, 수학자 장 르레이(1906~98)는 목소리를 낸다. 허약해진 과학 교육은 천연자원의 멸절만큼이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강조한다. 과학은 학생 자신이 이해하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의 태아가 발달의 과정을 거치듯이, 각자의 마음속에서 과학을 재발견하여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과학과 기술을 전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탐구심을 전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금언도 일맥상통한다. “마음은 채워질 그릇이 아니라, 불붙여야 할 불꽃이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깨닫는 바다. 과학은 가르칠 수 없다. 선생은 궁금증의 불씨를 심을 뿐이다. 열린 마음들이 스스로 반짝일 때, 과학은 다시 태어난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2024-05-01

[김성재의 마켓 나우] 정부가 시장의 눈치를 보게 된 중대 사건

역사의 물줄기를 단숨에 바꿔버리는 하루가 있다. 영국에는 1992년 9월 16일 수요일이 그랬다. ‘블랙 웬즈데이’라 불린 이날 런던 외환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초긴장 상태였다.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 환율의 향방에 따라 영국이 유럽의 일원이 될지, 고립된 섬으로 남을지 결정되는 날이었다. 외환시장 개장 전부터 매물이 쌓이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 흐름을 탔다. 하락을 이끈 주범은 퀀텀펀드를 운용하는 헤지펀드 투자자 조지 소로스였다. 그는 영국 국채를 빌려 공매도하는 수법으로 파운드 하락을 이끌었다. 이에 맞서 영국 정부는 파운드 사수에 나섰다.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 이날 오전 기준금리를 10%에서 12%로 올렸다. 과격한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파운드가 지속해서 하락하자 오후에 금리를 다시 1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영란은행은 보유 외환을 털어 환율 방어에 착수했다. 240억 달러를 실탄으로 투입했다. 시장과의 치열한 공방전은 보유 외환이 바닥 날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영국이 유럽의 환율조정 메커니즘인 ERM에 잔류해 유럽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환율 최저선인 파운드 당 2.77 독일 마르크를 유지해야 했다. 1990년 영국은 안정적 독일 통화인 마르크에 환율을 고정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의도로 ERM에 가입했다. 전임 총리인 마거릿 대처는 영국의 ERM 가입이 시기상조라 봤다. 소로스를 비롯한 시장 세력은 대처의 견해를 지지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독일의 3배인 15%에 달했고 생산성은 독일보다 매우 낮았다. 설상가상으로 걸프전쟁 이후 혹독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여기에다 통일 이후 물가 압력에 직면한 독일이 금리를 인상했다. 체력이 약한 파운드의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환율 최저선 사수가 불가능하다고 본 투기세력은 영란은행과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소로스의 파운드화 매도 금액은 100억 파운드에 달했다. 그날 저녁 영국 정부는 ERM 탈퇴를 발표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파운드는 며칠 만에 달러 대비 25% 폭락했다. 영국 정부는 일개 헤지펀드 투자자에게 씻지 못할 치욕을 당했다. 영란은행은 33억 파운드의 손실을 보았고, 소로스는 10억 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3조5000억원)를 벌었다. 시장이 거대 국가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에 충격받은 유럽은 통화 통합을 가속했다. 1999년 최초의 단일 통화인 유로가 출범했다. 블랙 웬즈데이 이후 시장에 대한 국가의 도전은 더는 용납되지 않았다. 정책 당국은 시장에 끌려다니며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 시그널을 지속하며 주가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2024-05-01

‘뽀뽀 사태’ 20기 정숙의 반전, L사전자 과장 “학창시절 1등만 했다” (’나는솔로’)[종합]

[OSEN=박하영 기자] ‘나는 SOLO’ 20기 솔로들의 직업이 공개됐다.  5일 방송된 ENA·SBS Plus 예능 ‘나는 SOLO’(이하 ‘나는 솔로’)에서는 ‘솔로나라 20번지’의 자기소개 타임이 그려졌다. 이날 솔로나라 20번지의 자기소개가 공개됐다. 먼저 38살 영수는 소아 청소년과 의사였고, 영호는 대기업 엔지니어링에서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영호는 “아흔살이 될 때까지 1일 1뽀뽀는 무조건 하고 싶다”고 말해 MC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데프콘과 이이경은 정숙의 뽀뽀 사태 상대 남성이 영호가 아닐까 추측했다. 정숙과 현숙의 호감을 받은 영식은 “직업이 은행원이다”라며 4수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세운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왔다. 지금은 좋은 짝을 찾는 걸로 목표를 세웠다”라고 전했다. 올해 40세라는 영철은 “지금은 미국의 반도체 I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며 “제가 미군이라서 이번 연도에 훈련이 있어 (미국에) 갈 것 같다. 지금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렌드에 살고 있다”고 고백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어 “한국에서 연애를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영철은 “저도 잘 답을 모르겠다. 하나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건 그 사람과 내가 서로 각별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장기자랑으로 노래를 불러 데프콘의 심금을 울렸다. 광수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L사 디스플레이에서 회로 설계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라며 방탈출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결국 취미에서 직업이 된 광수는 두 명의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상철은 “S사에서 AI 개발자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여자 출연자들의 자기소개가 공개됐다. 먼저 영숙은 현대 제철에서 일하고 있다며 “활동적인 편이다.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3년 전부터 골프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외모 중에 자신 있는 부분이 있냐”고 묻자 영숙은 “입술이다”라고 밝혔다. 37세 정숙은 서울 거주 중이라며 “여러분들이 저를 어떻게 보셨는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되게 성실한 편이다. 이때까지 되게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왔고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반에서 1등을 놓친 적 없다. 그리고 공대를 졸업해서 L사 전자 본사에서 과장급 선임으로 재직 중이다”라고 고백해 놀라움을 안겼다. 이를 본 데프콘은 “너무 멋있다. 저희는 솔직히 좀 그랬다. 조금 약간 예체능 쪽이라고 생각했다. 뮤지컬이나 패션계 쪽이다. 대박이다”라고 감탄했다. 이어 정숙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3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서울교육대 졸업했다는 순자는 서울에서 10년 차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영자는 광수와 같은 대학교 출신으로 L사 금융 지원 서비스에서 재직 중이라고 소개했다. 옥순은 미국 뉴욕에서 거주 중으로 G사 소프트 엔지니어라고 했으며, 같은 미국 거주자 영철의 관심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현숙은 “서울대학교 약학 대학 졸업해서 약사이고, 동대학에 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라며 “화장품을 제일 좋아한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좋아하는 거 한 번 해보고 싶다 해서 현재 A 화장품 회사 연구원 13년차로 근무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mint1023/@osen.co.kr [사진] ‘나는 SOLO’ 방송화면 캡처 박하영

2024-05-01

[신복룡의 신 영웅전] 벨의 전화기 발명과 운명

대학교수 재직 시절에 나는 학생이 결석한 사정은 들어줬지만, 지각은 용서하지 않았다. 지각은 결석보다 더 잘못된 처신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소신이다. 길고 긴 인생에서 한두 시간이야말로 참으로 순간이요,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몇 시간의 차이로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는 사례가 허다하다. 1876년 2월 14일 미국 연방특허국에는 30대 청년이 이상한 기계를 들고 들어와 특허를 출원했다. 담당 직원이 기계의 성능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멀리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담당 직원이 일단 서류와 기계를 접수하고 그 청년의 신원을 물었더니 이름은 알렉산더 벨(1847~1922·사진)이라고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같은 날 연방특허국의 또 다른 직원이 전화 특허 출원을 받았다. 담당 직원은 서류와 기계를 접수하고 40대 신사의 신원을 물었더니 엘리샤 그레이(1835~1901)라고 했다. 열두살 연상인 그레이는 벨보다 훨씬 전에 이 분야에서 선구적 지식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레이는 전화를 출원하고 돌아와 전화의 대량생산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그레이는 전화 출원이 기각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특허국을 찾아가 진상을 알아봤더니 그와 벨이 같은 날짜에 전화를 출원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레이는 전화 특허권을 자신과 벨에게 공동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곧이어 법원에 제소했다. 이에 연방최고재판소 판사가 특허 출원 접수 과정을 알아봤더니 그레이보다 벨의 출원이 2시간 빨라 결국 그레이가 패소했다. 2시간 차 때문에 벨은 세계적인 발명가의 명예를 얻어 억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그레이는 바로 그 2시간 차 때문에 애쓴 보람도 없이 재산만 탕진했다. 인생에서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패는 실기(失期)다. 지금 우리 정부도 그렇지 않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24-05-01

금사과 팔면 절반은 이들 몫…농산물 유통마진 손본다

━ 농림부, 유통구조 개선방안 정부가 ‘금(金)사과’로 불릴 정도로 치솟은 농산물 물가를 잡기 위해 낡은 유통 구조를 손보기로 했다. 도매시장도 경쟁을 붙이고, 중간 유통 마진을 낮추고, 불필요한 소(小)포장을 줄이는 등 유통 과정 곳곳에서 군살을 빼는 내용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일 이런 내용의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은 “소매 가격의 49.7% 수준인 유통 비용을 10%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먼저 도매 시장에 경쟁 요소를 강화한다. 지정 기간(5~10년)을 만료한 도매법인의 성과를 평가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신규 도매법인은 공모제로 선정하기로 했다. 특히 성과가 부진한 법인의 경우 지정 기간 중이더라도 지정 취소를 의무화하도록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안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기존에도 임의로 법인 지정을 취소할 수 있었지만 1976년 농안법을 제정한 뒤 지정을 취소한 법인은 6곳에 그쳤다. 유통 마진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표 도매시장 법인 9곳의 위탁수수료 상한(7%)이 적절한지 점검하는 식이다. 박 실장은 “서울을 제외한 광역 지자체 도매 법인에서 위탁수수료 6%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매법인 영업이익률이 20%에 달하는 등 과하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수수료 상한이 적정한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유통 구조가 투명한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도 활성화한다. 각종 규제 완화 혜택을 줘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를 2027년까지 현 가락시장 규모(연 5조원)로 키우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수산물 온라인 도매도 시작해 2027년까지 거래 품목을 가락시장 수준(193개)으로 늘린다. 더 많은 판매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연간 거래 규모 5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진입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농산물 온라인 도매를 활성화하면 생산자는 더 비싸게 팔고 소비자는 더 싸게 살 수 있다”며 “산지→서울 가락시장→지역 업체 물류 창고→서울 소매업체로 오가는 식의 불필요한 유통 과정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을 산지에서 온라인으로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농산물값 급등락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또 전통시장과 중소 마트도 농산물 거래 물량을 키울 수 있도록 농협·상인연합회를 통한 공동구매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2026년까지 거점 스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100곳을 마련해 사과·배 등 청과물 취급 비중을 기존 생산량의 30%에서 50%로 확대한다. 농산물 소포장 판매 시 추가 유통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외국처럼 농산물 무포장(벌크) 유통을 활성화하는 내용도 대책에 포함시켰다. 주요 품목을 대상으로 농협에 벌크 판매를 시범 도입하고 할인을 지원하는 식이다. 낡은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대책은 필요하지만, 최근 농산물 물가 급등에는 기후 변화에 따른 작황 부진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농산물 재배 면적을 늘리고 재정을 쓴다고 해서 농산물 고물가 추세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지금 같은 정책을 이어갈지, 아니면 농산물 수입 확대를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유다. 김기환.나상현(khkim@joongang.co.kr)

2024-05-01

[우리말 바루기] ‘그닥’은 ‘그다지’로 고쳐 쓰자

날씨가 급격히 더워져 친구와 새 옷을 사러 갔다. “이 옷 어때?”라는 물음에 “그닥 별로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은 이가 이처럼 ‘그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워낙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그닥’이 표준어이며, ‘그다지’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닥’은 말을 줄여 쓰기 좋아하는 누리꾼들에 의해 생겨난 말로, 표준어가 아니다. 입말에서는 ‘그다지’보다 ‘그닥’이 더 많이 쓰인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언론 매체에서도 ‘그닥’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신문지상 글자 수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1000억원 상생안도 분위기가 그닥” “기업의 외형은 커 가고 있지만 내실은 그닥” 등과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닥’을 ‘그다지’의 평안도 방언인 ‘그닥지’의 준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겨난 뒤 쓰임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아 통신 언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언어의 경제성이 큰 힘을 발휘하기에, 줄여 쓰는 말들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래서 ‘그닥’이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고 표준어인 ‘그다지’보다 빈번하게 쓰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생명력을 인정받아 ‘그닥’이 표준어로 등극할지도 모르지만, ‘그닥’은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닥’은 ‘그다지’로 고쳐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현정

2024-05-01

[Editor’s Note] 수출 회복 반갑지만…신경 쓰이는 두 복병

미국 금리 인하 시기가 갈수록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하더라도 연말에나 한 차례 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합니다. 최근 발표되는 인건비·집값 등의 지표들은 인플레이션의 강도가 예상보다 강하며, 더 오래 갈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국의 고용과 소비가 모두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달러화 가치가 원화뿐 아니라 유로, 엔화 등에 비해 계속 강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미국만 ‘나홀로 호황’을 이어가다 보니,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유럽 경제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무역 의존도가 높고 세계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큽니다. 그나마 우리 경제의 유일한 활로라 할 수 있는 수출이 잘 회복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4월 실적을 보니 반도체 수출은 꾸준히 회복되고 있고, 자동차 수출도 지난달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불확실합니다. 원화보다 더 취약한 엔화 흐름도 문제입니다. 엔화값의 초약세(수퍼 엔저)는, 수출 시장에서 경합하는 철강·화학 등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국제 유가도 언제 다시 오를지 불안합니다. 모두 우리 기업이나 정부가 해결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이어서 당분간 그저 지켜보며 대응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사회 이동성 개선 방안’을 내놨습니다. 교육과 자산 형성 기회를 늘려 ‘개천 용’이 더 나오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입니다. 방향성에 대해 여야의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건 환율이나 국제유가와 달리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필요한 법 개정 등에 아무쪼록 여야가 뜻을 모으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승녕(francis@joongang.co.kr)

2024-05-01

석유화학, 불황 돌파구 찾는다…LG는 ‘필터’ 롯데는 ‘첨단소재’

중국발 공급 과잉과 세계 수요 약세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가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업황이 나쁜 기존 석유화학 사업 대신 첨단소재 등 신성장동력 사업에 더 집중하며 실적 개선을 노리고 있다. LG화학은 사우디아라비아 알코라예프그룹과 수(水)처리 필터인 RO멤브레인(역삼투압) 제조시설 현지화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1일 밝혔다. RO멤브레인은 해수를 담수화하거나 공업용수 정화 등에 사용되는 필터로, LG화학의 첨단소재 사업 중 한 영역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청주공장에 1250억원을 투자해 RO멤브레인 생산 설비를 증설하기로 하는 등 이 분야를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연매출 2000억원 수준인 RO멤브레인 사업을 5년 내 두 배로 키우는 게 목표다. 특히 알코라예프그룹과 계약은 세계 RO멤브레인 최대 시장인 사우디 시장의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사우디는 세계 RO멤브레인 시장의 21%를 차지한다. 자국 물 공급의 70% 이상을 해수담수화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옴시티 건설 등 사우디 국가 발전 프로젝트인 ‘비전 2030’ 때문에 해수담수화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LG화학의 이번 계약은 사우디가 자국 내에서 생산된 RO멤브레인을 우대하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현지에 제조 시설을 만들면 향후 사우디 정부가 발주하는 해수담수화 프로젝트 수주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특히 알코라예프의 자회사 알코라예프 워터는 사우디 최대 수처리 기업이다. LG화학은 향후 최대 3억2000만 리얄(약 1200억원)을 사우디에 투자할 계획이다.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롯데케미칼도 첨단소재 투자를 늘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기능성 첨단소재를 생산하는 자회사 삼박LFT가 지난달 30일 전남 율촌 산업단지 내에 신규 컴파운딩(혼합)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완공되면 롯데케미칼은 고부가합성수지(ABS)·폴리카보네이트(PC) 등 약 50만t 규모의 국내 최대 컴파운딩 소재 생산 시설을 확보하게 된다. 내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총괄대표는 “율촌공단에 2026년까지 약 3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공장 가동 이후 추가 투자를 통해 향후 70만t까지 생산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소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중국산 저가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제품에서는 중국과 대결에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기술에서 앞서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첨단 소재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성민(yoon.sungmin@joongang.co.kr)

2024-05-01

MS 간 GS…허태수 회장 “움츠러들면 미래 없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사장단에 “사업 환경이 크게 요동치고 있지만, 움츠러들기만 하면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에너지·건설 등 전통적 산업 중심으로 사업을 해온 GS가 인공지능(AI) 중심의 디지털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GS그룹 해외 사장단 회의에서 허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GS가 1일 밝혔다. 해외 사장단 회의는 글로벌 신흥 시장이나 선진 기술 중심지에서 연 1회 여는 회의로 그룹의 미래 과제를 논의하는 최고 회의체다. 올해 사장단 회의 주제는 ‘생성형 AI와 디지털 혁신’이었다. AI 기술 발전을 업무 생산성 향상과 사업혁신으로 연결하려면 사장단부터 기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허 회장은 “(사업환경이 요동치는 이때를) 오히려 내부 인재를 키우고 사업 혁신을 가속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디지털 AI 기술은 인재들의 창의력과 사업적 잠재력을 증폭하는 힘이다. 최고경영자(CEO)부터 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사업 현장에서 자발적인 디지털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솔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장단은 지난달 29일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하고, 30일엔 아마존의 클라우드컴퓨팅 사업부인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찾아 AI를 업무에 도입할 방법을 고민했다. 회의에는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홍순기㈜GS 사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등 주요 계열사 CEO가 참석했다. ◆GS더프레시 50주년=GS리테일의 수퍼마켓체인 GS더프레시는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고 이날 밝혔다. GS더프레시의 모태는 1974년 세워진 최초의 현대식 슈퍼마켓인 럭키수퍼 을지로 삼풍점이다. 1일 기준으로 점포 수는 469점으로 오는 7월 500호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성민 기자 윤성민(yoon.sungmin@joongang.co.kr)

2024-05-01

류는 현재 진행형

“힘들었던 4월은 끝났습니다. 5월부터 다시 달려나가야죠.”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류현진(37)은 지난 30일 대전 SSG 랜더스전에서 승리 투수가 된 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11년간 뛰다 올해 한화로 복귀한 그는 이날 6이닝 7피안타 2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해 KBO리그 통산 100승 고지를 밟았다. 한화의 후배 선수들은 류현진에게 물세례를 퍼붓고 얼굴에 케이크를 묻히면서 축제 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올해 입단한 19세 막내 황준서까지 합세한 ‘집안 잔치’였다. 류현진은 연신 도망 다니며 “하지 마!”를 외쳤지만, 입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 동료들에게 그런 세리머니를 처음 받아봐서 정말 기분 좋았다. 경기 후 관중석으로 올라가 단상 인터뷰도 처음 해봤는데, 역시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다”며 웃어 보였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지닌 투수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98승(52패)을 거두고 MLB로 떠났다. 올해 큰 기대 속에 복귀했지만, 시즌 첫 6경기에서 1승만 거두는 어려움을 겪었다. 3월 23일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3과 3분의 2이닝 5실점(2자책점)으로 부진했고, 지난달 5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4와 3분의 1이닝 동안 안타 9개를 맞고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실점(9점)을 기록했다. 지난달 24일 수원 KT전에서도 5이닝 7실점(5자책점)으로 흔들렸다. KBO리그가 올해 처음 도입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에 적응하느라 시행착오도 겪었다. 류현진은 결국 4월의 마지막 날, 복귀 7번째 경기에서 어렵게 통산 100승째를 채웠다. 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이던 2021년 8월 22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 이후 2년 8개월 만에 100구 넘게(103개) 던지는 투지가 빛났다. 그는 “박승민 투수코치께서 ‘다른 투수도 (ABS 판정에) 내색하지 않고 던지는데, 네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안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돌이켜 보면 내가 너무 신경을 쓰면서 볼넷도 내주고 어려운 경기가 많았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최대한 내 투구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올 시즌 남은 등판에서도 계속 이 경기만큼만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류현진이 100승을 거두는 날엔 흥미로운 승부가 많았다. 과거 ‘천적’이었던 SSG 최정은 12년 만에 류현진과 다시 맞붙어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SSG 추신수는 MLB 시절 이후 처음으로 대결해 3타수 2안타(2루타 1개)를 기록했다. 류현진은 “솔직히 최정 선수는 의식을 많이 했다. 첫 타석에선 미국 가기 전엔 안 던지던 컷패스트볼(커터) 위주로 던졌다. 그런데 초구 이후에는 잘 참더라”며 “이제 다음 경기부터는 또 어떻게 대결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신수 형과도 신경 써서 승부했고, 던질 수 있는 공을 다 던졌다. 하지만 형이 두 번째 안타 때 2루까지 뛸 줄은 몰랐다”며 “나이도 있는데 부상을 조심하셔야 하지 않나.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류현진은 이제 한화의 재도약에 앞장설 생각이다. 그에게 이달의 목표를 묻자 “4월에 기록한 패배를 승리로 다시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한화는 지난 3월 7승 1패로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4월 성적은 6승 17패로 승패 마진이 -11에 달했다. 팀 순위도 8위까지 처졌다. 류현진은 “이제 안 좋았던 4월은 끝났으니, 5월부터 또 열심히 달려나가야 한다. 팀이 우선이고, 개인적으로는 그냥 매 경기 선발 투수 역할을 잘해내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미 통산 200승은 빨리하고 싶다”고 했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100승 55패, MLB에서 통산 78승 48패를 각각 기록했다. 통산 성적은 178승 103패다. 앞으로 22승을 추가하면 200승 고지를 밟는다. 배영은(bae.youngeun@joongang.co.kr)

2024-05-01

수상한 미국 인건비·집값…금리인하 9→12월 또 밀리나

━ 물가 반등 우려 커지는 미국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에 영향이 큰 인건비와 집값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물가 재반등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 시점도 기존 9월에서 연말로 또다시 밀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미국 고용비용지수(ECI)는 전 분기와 비교해 1.2% 상승(전년 같은 분기 대비 4.2%)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1%)를 소폭 넘어 섰을 뿐 아니라, 2022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4분기 ECI는 전 분기 대비 0.9% 상승했는데, 이번에는 상승 폭이 더 커졌다. ECI는 기업이나 정부 및 공공기관 등에서 실제 사람을 고용할 때 지출하는 비용을 합산한 지표다. 임금뿐 아니라 수당과 보험 같은 복리 후생비도 함께 집계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건비에 해당한다. 전 분기 대비 1분기 ECI 상승률은 특히 민간(1.1%)보다 정부(1.3%) 부문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항목으로 나누면 임금·급여보다는 수당(benefits)이 ECI 상승을 이끌었다. 실제 전 분기 대비 임금·급여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모두 1.1% 늘어나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당은 0.7→1.1%로 상승 폭이 커졌다. 인건비는 물가 중에서도 서비스 물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로버크 소킨 씨티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ECI 상승률 1.2%라는 숫자는 물가 상승률과 임금 상승 데이터가 Fed의 목표와 다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인건비뿐만이 아니라 미국 주택 가격도 예상 밖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이 발표한 2월 주택가격 지수는 전월 대비 1.2% 오르면서 시장 예상치(0.2%)를 큰 폭으로 상회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2022년 4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최대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7% 올랐는데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다. 안주 바자 FHFA 부국장은 “미국 주택 가격은 1월에 약간 하락한 후 2월에 상승하면서 반등했다”며 “조사 대상 9개 지역에서 모두 지난 12개월 동안 가격 상승이 나타났고, 뉴잉글랜드와 중부 대서양 연안 지역은 두 자릿수 상승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 CPI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4% 달할 정도로 높기 때문에 주택 가격 상승은 물가 안정에 부정적인 뉴스다. 물가가 다시 튀어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1·2월 물가 지표가 갑자기 크게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계절적 요인”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최근 물가 상승률 반등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짚었다. 물가 재반등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발표된 후 금리 인하 전망도 크게 후퇴했다. 이날 지표 발표 직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9월에도 Fed가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53.9%)이 가장 높다고 예상했다. 지표 발표 전만 해도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44.2%)이 동결(42.5%)보다 소폭 높았지만, 뒤집힌 것이다. 페드워치는 12월이 돼야 Fed가 첫 번째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리 인하 전망이 후퇴하면서 금융 시장도 요동을 쳤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의 3대 지수인 다우존스30 산업평균(-1.49%)·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1.57%)·나스닥(-2.04%) 지수 모두 전 거래일 대비 큰 폭 하락했다. 김남준(kim.namjun@joongang.co.kr)

2024-05-01

AI는 ‘금’ 안 좋아한다…천장 뚫는 ‘은·동 랠리’

━ 미래산업 필수품 된 은·구리 이젠 귀금속이나 화폐 재료보다는 비싼 ‘산업용’ 원자재가 됐다. 최근 수년래 최고치까지 가격이 치솟은 은(銀)과 동(銅·구리) 이야기다. 몸값으로 보면 귀금속의 상징이자 안전 자산인 금(金) 못지않은 상승세다. 이러한 은·동 시세 랠리 뒤엔 인공지능(AI)·신재생에너지 같은 미래 산업으로의 글로벌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구리 선물(3개월 만기) 가격은 전일 대비 1.7% 오른 t당 1만135.5달러를 기록했다. 2022년 4월 이후 2년 만에 종가 ‘1만 달러’ 시대를 연 것이다. 연초 8400달러 수준이던 구리 가격은 꾸준히 우상향하는 추세다. 은 시세도 심상찮다. 지난달 12일 런던금시장협회(LBMA)의 은 현물 가격은 1트로이온스(약 31g)당 29.03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28달러대까지 올랐던 2021년 5월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30일 기준 26.66달러로 다소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둘의 가격은 니켈·철광석 등 주요 원자재와 비교해 눈에 띄는 강세를 보인다. 이처럼 빠른 시세 상승은 글로벌 경기 회복 등을 상징하지만, 근본적으론 미래 첨단산업이 대두한 걸 보여준다. 구리는 최근 중요성이 커진 전력·신재생 설비에 전방위로 활용된다. 빅테크 기업은 AI 데이터 처리 용량 확보 차원에서 데이터센터 증설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구리 전선이 대규모로 들어간다.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 등에도 구리가 없어선 안 된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열풍과 맞물린 재고 감소세가 가시화하면 구리 가격이 t당 1만 달러를 상회하는 강세 랠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구리는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확대되는 풍력 발전용 터빈, 전기차(배터리 포함) 등에도 쓰인다. 글로벌 원자재 거래 업체 트라피구라는 “구리 수요가 2030년까지 100만t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요 압박과 달리 파나마 광산 폐쇄, 중국 제련소 감산 등으로 공급은 흔들리는 형국이다. 전도성이 좋은 은 역시 태양전지 재료로 활용되는 등 태양광 패널엔 없어선 안 되는 존재다. 세계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장신구용 은 수요는 전년 대비 13% 줄었지만, 태양광 관련 은 수요는 64% 급증했다. 태양광 수요는 올해도 20% 증가할 거란 전망이다. 은은 반도체 등 여타 첨단산업에도 투입된다. 갈수록 전통적인 귀금속보다는 산업적 역할이 강조되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RBC캐피탈마켓은 “태양광 수요 증가 등으로 은 공급 부족이 점차 심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전 세계가 AI 보급, 청정에너지 확대에 열중하면서 향후 가격도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전력망 부하,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고려한 송전망 업그레이드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달 30일 장관 회의를 통해 2035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한다는 데 합의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까지 구리 가격이 65%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첨단산업과 밀접한 한국도 은과 구리 가격 움직임에 자유로울 수 없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국내 은·구리 수요는 해마다 늘어날 것”이라면서 “둘을 사실상 전량 수입하는 만큼 공급망 다변화, 해외 자원개발 확대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정종훈(sakehoon@joongang.co.kr)

2024-05-01

한국야구 MVP의 위엄… 페디, 미국서도 ‘에이스’

지난해 KBO리그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던 투수 에릭 페디(31·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자마자 맹활약을 하고 있다. 페디는 지난해 NC 다이노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30경기에 나와 20승 6패 평균자책점 2.20을 기록하며 MVP가 됐다.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5선발로 뛰었던 기량을 국내에서 마음껏 뽐냈다. 페디는 1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본 화이트삭스가 2년 1500만 달러(약 208억원) 계약을 제안했다. 2023년 NC에서 받은 연봉 100만 달러(14억원)의 7.5배다. 2022년 워싱턴에서 받았던 215만 달러(30억원)보다도 훨씬 많다. 페디는 빅리그에서도 팬들의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6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복귀전에선 5이닝을 채우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은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8일 시카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는 8과 3분의 1이닝 7피안타 2볼넷 9탈삼진 2실점하고 시즌 2승을 따냈다. 페디는 KBO리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강한 투수가 됐다. 대표적인 게 스위퍼의 활용이다. 페디는 2022년까지는 싱커(40%), 커브(29%), 컷패스트볼(27%)로 땅볼을 유도하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면서 스위퍼라는 구종을 장착했다. 스위퍼는 오른손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보다 옆쪽으로 더 많이 흘러나가는 구종이다. 셸비 밀러(LA 다저스)에게 스위퍼 던지는 법을 배운 페디는 한국에서 이 공을 쏠쏠하게 써먹었다. 여기에다 종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까지 연마했다. 2년 전과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페디는 싱커(32%)에 이은 제2구종으로 스위퍼(27%)를 활용하고 있다. 왼손타자에겐 스플리터(18%)가 제대로 먹혔다. 스플리터 피안타율은 0.155로 매우 낮다. 2022년 페디의 삼진율은 16.4%로 MLB 최하위권이었지만, 올해는 27.5%(상위 25%)까지 올라갔다. 페디의 활약과 달리 화이트삭스는 MLB 최저 승률에 허덕이고 있다. 1일 현재 6승 24패에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 페디의 트레이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대권도전을 노리는 팀이 원하는 투수력 보강을 위해 페디를 영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김효경(kaypubb@joongang.co.kr)

2024-05-01

실점 장면마다 김민재…투헬 “탐욕스럽다” 공개 비판

‘괴물 수비수’ 김민재(28)의 소속 팀 바이에른 뮌헨(독일)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첫판에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뮌헨은 1일(한국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레알 마드리드와 2-2로 비겼다. 뮌헨은 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옮겨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차전을 벌인다. 전반 24분 레알 마드리드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에게 선제골을 내준 뮌헨은 후반 8분 레로이 사네의 동점골, 후반 12분 해리 케인의 페널티킥 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뮌헨은 후반 38분 비니시우스에게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주며 다잡은 승리를 놓쳤다. 김민재가 페널티킥의 빌미를 주는 반칙을 범했다. 그는 페널티박스에서 패스를 받으려던 호드리구를 잡아채며 발로 걸어 넘어뜨렸다. 김민재는 앞서 전반 24분 비니시우스에게 골을 내주는 상황에서도 실책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토마스 투헬 뮌헨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김민재의 실수를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투헬 감독은 “김민재는 수비할 때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공을 따낼 수 있을 땐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조심해야 한다”면서 “김민재는 너무 탐욕스럽다. 너무 쉽게만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김민재는 공격과 수비에 모두 관여하는 모험적인 플레이를 즐긴다. 페널티킥을 내준 상황에 대해서도 투헬 감독은 “안쪽에 잘 있다가 비니시우스가 패스할 때 쓸데없이 (앞으로 나오며) 공간을 내주는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피주영(akapj@joongang.co.kr)

2024-05-01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도 외국인? 핵심 키워드는 ‘지한파’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은 ‘지한파’ 외국인이 맡을 듯 하다. 한국인 선수와 함께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특성을 파악한 외국인 지도자들이 차기 감독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이하 강화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 경질 이후 공석인 축구대표팀 사령탑과 관련해 기존 11명(외국인 7명+내국인 4명) 이던 후보군을 3~4명으로 압축했다. 당초 강화위원회는 황선홍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내국인 지도자들 중심으로 최종 후보군을 꾸릴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축구계 안팎에 일찌감치 ‘황선홍 내정설’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 무산’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와 클린스만에 이어 다시 한 번 외국인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쪽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강화위원회는 인물 정보나 협상 우선순위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외신 보도를 통해 최근 대한축구협회와 접촉한 지도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제시 마쉬(미국) 전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 브루노 라즈(포르투갈) 전 울버햄프턴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멕시코) 레알 마요르카 감독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한국 선수를 지도해 본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마쉬 감독과 라즈 감독은 축구대표팀 공격수 황희찬(울버햄프턴)의 옛 스승이다. 마쉬 감독은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시절 황희찬과 함께 했다. 라즈 감독은 울버햄프턴 감독이던 지난 2022년 임대 형식으로 황희찬을 영입해 프리미어리그 무대로 이끈 주인공이다. 과거 멕시코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아기레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레알 마요르카에서 뛴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강인과 함께 했다. 한국 선수를 가르친 이력이 있는 감독들이 최종 후보군에 줄줄이 올라온 건 앞서 불거진 축구대표팀 내 갈등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객관적인 경기력 못지않게 나이와 연차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적 정서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선수단 내 갈등이 발생할 때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해성 강화위원장은 앞서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전술▶육성▶명분▶경력▶소통▶리더십▶인맥▶성적 등 총 8가지 기준을 공개하면서 “한국 문화에 공감대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부분도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변수는 후보에 이름을 올린 감독들이 대부분 다른 팀의 러브콜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매체에서 ‘최우선 협상 대상자’로 지목한 마쉬 감독에 대해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마쉬 감독이 마침내 코치직에 복귀할 기회를 잡았지만, 그를 원하는 팀은 한국 이외에도 더 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의 보도에 따르면 아기레 감독도 한국과 멕시코대표팀, 오사수나(스페인) 등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강화위원회가 현실적인 부임 가능성까지 고려해 후보자들에 대한 우선 협상 순위를 정한 것으로 안다”면서 “당초 예고한 대로 5월 초·중순 정도면 최종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외국인 지도자를 모셔올 경우 대한축구협회가 이들의 연봉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전임 감독이었던 클린스만을 경질한 뒤 위약금은 누가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송지훈(song.jihoon@joongang.co.kr)

2024-05-01

구글, WSJ에 AI 콘텐트 이용료 83억원 낸다

인공지능(AI) 빅테크 기업과 글로벌 주요 뉴스 매체 간 협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30일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구글이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 뉴스코퍼레이션과 AI 콘텐트 이용 및 제품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코퍼레이션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발행하는 다우존스, 미국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 영국의 더 타임스, 호주 유로 방송 등을 보유하고 있다. 구글은 이 계약에 따라 뉴스코퍼레이션 측에 연 500만~600만 달러(69억~83억원)를 지급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뉴스코퍼레이션 측은 “구글과 사업 전반에서 오랜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것은 맞지만, AI 콘텐트 개발만을 위한 별도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건 아니다”는 설명 자료를 냈다. 전날엔 챗 GPT 개발사 오픈 AI와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콘텐트 이용과 AI 기능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오픈 AI는 앞서 AP통신과 비즈니스인사이더·폴리티코·빌트를 보유한 독일의 악셀 스프링거, 프랑스의 르 몽드, 스페인의 프리사 미디어와도 비슷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빅테크 기업과 뉴스 매체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NYT)가 오픈 AI와 MS(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낸 저작권 소송이 진행중이고, 시카고 트리뷴, 뉴욕 데일리 뉴스 등 대형 지역 신문사 8곳도 최근 오픈 AI와 MS를 상대로 유사한 소송을 냈다. 김민정(kim.minjeong4@joongang.co.kr)

2024-05-01

[삶과 추억] ‘뉴욕 3부작’ 쓴 뉴욕의 대명사

‘뉴욕 3부작’으로 유명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폴 오스터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77세.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폴 오스터가 폐암 합병증으로 뉴욕 브루클린 자택에서 지난달 30일 저녁 숨졌다고 보도했다. 오스터는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1947년 미국 뉴저지주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빵 굽는 타자기』 『폐허의 도시』 『달의 궁전』 등 소설은 물론 시, 에세이, 번역, 평론,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서 34권의 책을 펴냈다. 컬럼비아대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오스터는 1982년 가족사를 담은 에세이 『고독의 발명』으로 이름을 알렸고 1985~86년에 낸 소설집 『뉴욕 3부작』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 등 중편 소설 3편으로 이뤄진 『뉴욕 3부작』은 오스터의 독창적 문체가 돋보이는 초기 대표작이다.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추리적 기법으로 풀어냈다. 『뉴욕 3부작』 이후 오스터는 뉴욕을 상징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고, 그가 활동한 뉴욕의 브루클린 빈민가는 예술가 마을로 탈바꿈했다. 오스터는 1995년 웨인 왕이 연출한 ‘스모크’의 각본을 썼고 이후 ‘블루 인 더 페이스’ ‘다리 위의 룰루’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의 삶’ 등 여러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그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거의 매일 하루 6시간씩 글을 써왔으며, 컴퓨터 대신 만년필과 오래된 타자기를 애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말 국내에 소개된 장편소설 『4 3 2 1』에는 자신의 삶을 담았다. 자신과 같이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계 퍼거슨이 주인공으로, 서로 다른 네 운명의 퍼거슨이 각자의 삶을 살다 마침내 하나의 삶으로 통합되는 형식이다. 『4 3 2 1』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오스터는 1974년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와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소설가 시리 허스트베트와 재혼했다. 약물 관련 사고로 아들과 손녀를 잃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를 ‘천재’라고 불렀고, 장편소설 『롤리타』로 유명한 러시아계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나에겐 두 종류의 문학이 있다. 내 작품이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작품들, 그리고 내가 쓴 작품들”이라고 말한 뒤 전자에 해당하는 작가 중 하나로 폴 오스터를 꼽았다. 홍지유(hong.jiyu@joongang.co.kr)

2024-05-01

“마리 앙투아네트와 세번째 만남…찾았죠, 나만의 마리”

말 많고 탈 많은 공연계에서 김소향(44)은 성실하다는 칭찬을 듣는 배우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해 어느덧 23년 차. 앙상블로 7년 일하며 바닥부터 입지를 다져 이제는 믿고 보는 대극장 배우 반열에 올랐다. 그가 지난 2월부터 출연 중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1700년대 프랑스 왕비였던 실존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와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대립을 다룬다. 작가 미하엘 쿤체,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가 만든 뮤지컬은 2006년 일본에서 초연했고, 국내에선 뮤지컬 제작사 EMK가 2014년 처음 선보였다. 김소향의 마리 앙투아네트 연기는 2019년, 2021년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제야 마리를 알 것 같다. 나만의 마리를 찾았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공연은 26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Q : 공연계에서 성실한 배우로 유명하다. A : “팬들이 17만원(VIP석 기준) 내고 뮤지컬 보러 오시는데 당연히 성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Q : 궁에서 쫓겨난 마리가 수레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 전혀 몸을 사리지 않던데. A : “100번 넘게 같은 역할을 한 만큼 낙법 노하우가 있다. 마리가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처음엔 아무것도 모른 채 프랑스로 시집왔다가 누명을 쓰고, 아이들을 뺏기고 결국 단두대에 오른다. 감정 변화가 중요하니까, 늘 정신을 붙들고 있으려고 한다. 몸을 던지는 장면도 당연히 계산해서 한다.” Q : 오열하면서 노래하는데도 가사가 또렷하게 들린다. A : “어떤 배우는 연기가 좋고, 어떤 배우는 음역이 좋고 그런 장점이 하나씩 있지 않나. 내 장점은 ‘한’을 잘 표현하는 거다. 절규하면서 노래하는 것. 한 서린 감정을 드러내는 것. 이걸 잘하는 게 김소향이라고 팬들이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Q : 성대 관리가 어렵겠다. A : “목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울면서 지르는 연기를 하면 목에 무리가 가는 게 정상인데 무대에선 괜찮다. 신기하게도 몸이 적응한 것 같다. 마그리드 역의 주현(옥주현)이도 ‘어떻게 그렇게 울면서 노래를 하냐’며 신기해한다.” Q : ‘사치하다 죽은 왕비’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인데, 특별히 공들인 장면이 있나. A : “마리가 변하는 모습, 철없는 소녀가 각성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목걸이 사건’을 기점으로 변화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는 발성이나 눈빛, 목소리가 전부 달라져야 한다. 이 변화가 설득력이 없으면 관객들이 감동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Q : 그 변화를 표현하는 넘버가 ‘독사’인가. (마리는 사치스러운 목걸이를 샀다는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넘버를 부른다) A : “맞다. ‘독사’가 변화의 시작점이다. 독사 부르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데, 그때 늘 ‘이제 시작이다’란 생각을 한다. 그 전까지는 해맑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라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데, 독사를 부르면서 모았던 기를 다 분출한다. 누가 쳐들어오는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웃음)” Q : 가장 어려운 넘버는. A : “‘최고의 여자’다. 루이 16세와 결혼한 마리는 남 몰래 페르젠 백작을 사랑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 ‘최고의 여자’인데 지르는 대목이 전혀 없다. 애매한 음역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완급 조절이 어렵다.” Q : 대극장 뮤지컬 주인공을 맡은 지 10년이 넘었다. 못해봐서 아쉬운 캐릭터가 있나. A : “어떤 캐릭터를 못해봐서 아쉽다는 마음은 없다. 다만 앞으로 창작극을 더 하고 싶다. 창작극을 할 때는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극장 크기는 상관없다. 이번에 ‘마리 퀴리’가 런던에 가는데, 정말 내 자식 같은 느낌이다. 그런 작품을 더 하고 싶다. 못 해본 작품 중 매력 있다고 생각한 건 뮤지컬 ‘이프덴’과 ‘레드북’이다.” Q : 인간 김소향의 꿈은. A : “막연한 생각이지만 글을 쓰고 싶다. 3년 전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열었는데, 뉴욕에 살며 겪은 일을 글로 써서 낭독했다.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분들을 보는 게 큰 감동이었다. 직접 글을 쓰고 그 작품에 출연도 하는 날을 꿈꾼다. 재능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꼭 글을 쓰게 해 달라고 할 거다.” 홍지유(hong.jiyu@joongang.co.kr)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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