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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6월 예선의 풍향계 ‘낙태권 논란’

연방대법원에서 유출된 낙태권 판결 다수 의견서 초안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다수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것처럼 새뮤얼 엘리토 연방대법관은 1973년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번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9명 대법관 중 다수가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초안 유출로 전국이 뒤집혔다. 워싱턴 DC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선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시위와 성명 발표가 잇따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문건 유출 다음 날인 3일 성명을 내고 “법의 기본적 공평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판결이 번복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결정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대통령이 판결 번복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바이든은 심지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경우 11월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성명에 담았다.   다수 의견서 초안이 유출됐지만 최종 결정이 나온 것은 아니다.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6월 말이나 7월 초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달 7일 열릴 가주 중간선거 예선(프라이머리) 이후에 최종 판결이 나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중간선거 예선에서 표출될 민심이 한층 눈길을 모으게 됐다. 통상 중간선거 투표율은 대선의 해에 비해 낮다. 중간선거 예선 투표율은 결선 투표율보다 더 낮다. 이 점에서 초안 유출이 유권자, 특히 여성 투표율에 영향을 줄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낙태 권리는 정치적 지향에 따라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당연히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간선거 예선을 치르는 시기는 각 주마다 제각각이다. 가주를 포함한 다수의 주가 5~6월 사이 예선을 치르지만 8~9월 중 예선 투표를 하는 주도 애리조나, 캔자스, 미시건, 미주리 등을 포함, 18개에 달한다.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한 가주 중간선거 예선의 관전 포인트는 전체 투표율, 여성의 투표 참여율, 투표 참여 유권자가 증가할 경우 어느 당에 유리한지, 박빙 선거구에서 어느 당 후보에게 유리할지 등이다.   가장 최근의 전국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에선 기존 여성 낙태권 유지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모닝 컨설트사와 함께 전국의 등록 유권자 1955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의견서 초안 유출 보도 후인 3일 시행된 이 조사에서 유권자 50%가 낙태권 유지에 찬성했고, 반대는 약 28%였다.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22%다.   민주당원 중 68%, 무당파 중 52%는 낙태권 유지 찬성 입장을 보였다. 공화당원 중엔 51%가 판결 번복을 지지했다.   이 조사엔 낙태를 전국적으로 합법화 또는 불법화해야 하는가, 또는 각 주정부에 맡겨야 하는가란 질문도 있었다. 47%는 합법화에 찬성했고 21%는 불법화에 찬성했다. 19%는 각 주정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모든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답한 이가 25%에 그쳤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합법화”란 응답이 31%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사례에서 불법화”란 답변은 24%였고, 모든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11%에 불과했다.   BBC 뉴스는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경우, 전국 50개 주 가운데 약 절반의 주가 단기간 내에 낙태를 금지하거나 낙태권을 강력하게 제한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대법원이 5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판례를 번복한다면 낙태권은 11월 중간선거를 뜨겁게 달굴 뇌관이 될 것이다.     6월 예선 우편투표는 오는 9일 시작된다. 초안 유출이 예선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선 결과가 결선 향방의 가늠자 역할을 하게 될지 눈여겨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임상환 / OC취재담당·부국장중앙 칼럼 풍향계 낙태권 낙태권 판결 중간선거 예선 중간선거 투표율

2022-05-08

[풍향계] 트럼프를 선택한 7100만표

공식 발표는 안 나왔지만 이 정도면 승부는 끝났다. 아직도 남은 표가 있긴 하지만 상황이 뒤바뀔 정도는 아니다. 현재까지 트럼프가 얻은 표는 7150만 표가 넘는다. 역대 어떤 대통령 당선자보다 많다. 그럼에도 바이든을 이기진 못했다. 바이든은 7600만 표를 얻었다. 그럴 리가 하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시민권자 한인들은 6대 4 정도로 트럼프 지지가 많았다. 이는 선거 전 중앙일보 웹사이트 설문조사에서 세 번이나 확인됐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거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한인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샤이 트럼프’, 드러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은근히 트럼프를 지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이든 지지자와 달리 나름대로 소신이 뚜렷했다. 설문조사 답변이나 SNS에 올라온 글, 주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가장 맘에 들어했다. 규제 완화, 세금 인하, 중국 압박 등이 모두 트럼프의 치적이라 믿었다. 주변 기독교인 중에서도 트럼프 지지자가 상당수였다. 코로나 사태 대처나 그간의 행적, 발언 등을 보면 크리스천 정신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도 “트럼프야말로 하나님이 보낸 일꾼”이라 목청 높이는 이들까지 보았다. 북한 김정은과 대화 물꼬 튼 것을 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트럼프가 더 나을 것이라 말하는 한인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한인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끝내 바이든을 선택했다. 왜일까? 알다시피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트럼프대 반트럼프 구도였다. 인물이나 정책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로 본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반트럼프 쪽에선 미국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관용을 트럼프가 방종과 이기심으로 바꿔 놓았다고 생각했다. 국제적 조롱거리로 추락한 미국의 자존심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런 표심들이 모두 바이든 앞으로 몰렸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자, 모든 미국인들의 대통령입니다.” 2008년 대선 때 오바마에게 패한 매케인의 승복 연설이었다. 하지만 100년 넘게 이어진 이런 전통도 이번엔 볼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패배 인정을 거부하고 있는 트럼프의 몽니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가 이미 바이든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 ‘대통령 바이든 시대’를 조망하는 보도 역시 봇물이다. 그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50년 가까이 의회 생활을 한 바이든이 “상대의 나쁜 점을 찾아 공격하기 보다는 좋은 점을 찾아 함께 가고자 했다”는 기사였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용공으로 몰아가는 공화당 보수 매파 제시 헬름스 의원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바이든은 뇌성마비를 앓는 9살 아이를 입양했다는 헬름스의 좋은 점을 찾아내 관계를 풀어나갔다”는 대목은 바이든이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말해 주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지금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거의 1860년 남북전쟁 직전 수준이다. 도시와 비도시, 동서부 연안과 내륙의 대립은 극과 극이다. 빈부격차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증오와 반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이든 같은 배려와 포용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산적한 문제들이 당장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은 비상식적이고 반이성적인 3류 정치에 시달리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은 든다. 이민자로서 인종과 피부색, 정치적 성향과 재산, 종교, 성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위협받지 않는 평온한 일상이 조금씩 더 가능해지리라는 희망도 품어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더불어 함께’라는 대의 앞에 소소한 개인의 이익은 조금이나마 양보하겠다는 자세는 가져야 할 것이다. 마침 바이든도 승리 연설 일성으로 치유와 화합을 부르짖었다. 앞으로 4년, 달라질 미국을 기대하며,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11-09

[풍향계] 삼성 이건희 회장 별세에 부쳐

1999년 분리되기 이전까지 중앙일보도 삼성그룹의 일원이었다. 덕분에 30대 시절 미국 오기 전 간접적이나마 삼성을 경험한 몇 가지 기억이 있다. 당시 삼성의 복리 후생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직원 가족들을 불러 전국 공장을 견학시켜 주는 것이 있었다. 주로 직원 아내들이 참가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었는지 한 번 다녀오고 나면 대부분 열혈 ‘삼성 전도사’로 돌변했었다. 아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특별했다. 그 중 세계 경영을 위한 지역 전문가 양성 코스나 합숙을 통한 집중 외국어 훈련은 당시 직장인이면 누구나 부러워하던 과정이었다. 특히 집중 외국어 훈련은 중앙일보 직원들도 꽤 많이 참가했는데 그때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며 맺었던 네트워크는 두고두고 사회생활의 자산이 되었던 기억도 난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가장 큰 목적은 직원과 가족들에게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일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지금 삼성이 세계 5위 브랜드 가치를 지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게 만든 것도 이런 내부 단속(?)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이건희 회장 비서를 지낸 정준명 전 삼성전자 일본본사 사장도 비슷한 회고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가장 싫어한 사람은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과, 배알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본분과 역할에 충실한 사람,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진 사람을 좋아했다는 말이다. 삼성이 왜 그렇게 직원 교육과 복지를 강조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알려진 대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내건 기업이념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 합리추구였다. 지금 삼성을 보면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고용과 수출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타 공인 최고 인재들의 집합소라는 점에서 그렇다. 능률과 효용을 중시하는 삼성식 경영 또한 누구나 배우고 따라하는 기업 교과서가 되었다. 모두 1987년 이건희 삼성 회장 취임 이후 일군 성과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 후 국내외에서 다양한 평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고인을 대하는 시선이 사뭇 복잡하고 다면적인 것같다. 세계 일류 기업을 일군 재계 거목이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 앞에서도 굳이 정경 유착과 세습 경영이라는 허물을 들춰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기업인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한국이라 해도 ‘자식과 마누라 빼고는 다 바꿔라’는 말대로 변혁과 혁신을 화두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환골탈태시킨 고인의 공적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해외 한인들로서는 처음 외국 나왔을 때 삼성이나 LG, 현대차 같은 한국 기업 로고를 보며 뿌듯해 했던 기억 한 조각씩은 다 가지고 있다. 삼성과 이건희라는 이름이 해외 한인들에게 더 각별한 이유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바퀴를 앞으로 밀고 가는 것은 수신제가(修身齊家)는 다소 부족했더라도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에 ‘올인’ 해 남다른 업적을 일궈낸 사람들이었다. 사업에 관한 뛰어난 통찰과 직관, 미(美)와 최고(最高)에 대한 포기하지 않은 집념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궈낸 고인도 후자 쪽이 아니었을까. 이제 고인은 역사가 되었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삼성이 그동안의 허물로 지적되어 온 윤리 경영, 도덕 경영의 아쉬움까지 해결해 한국의 자랑, 해외 한인들의 자부심으로 계속 뻗어가길 바랄 따름이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10-26

[풍향계] 누가 배신자인가

# 정치는 말싸움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말은 뒤집힐 수 있다. 지금 옳다고 계속 옳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 아니라고 해서 끝까지 아닌 것도 아니다. 그게 정치 언어다. 보통사람은 그래서 함부로 의견을 내놓기가 두렵다. 자칫 친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섣부른 판단이 두고두고 오점이 될 수도 있어서다. 지난 몇 년, 한국 정치판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주장들이 얼마나 판을 쳤던가. 얼마나 많은 모진 말들로 서로를 할퀴고 헤집었던가. 소설가이자 노 언론인 김훈은 오래 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욕망을 정의라고 말하는 그 말들은 허망할수록 격렬하고, 격렬할수록 무내용하고, 무내용할수록 진지하고, 진지할수록 기만적이다.” 말과 글을 취미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곱씹어 되새김질해야 할 경고가 아닐 수 없다. # 요즘 한국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윤미향 사태’의 불똥이 미국까지 튀었다. 한인들도, 관련 단체들도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발단은 이용수 할머니의 회견이었다. 올해 92세인 할머니는 과거 위안부 피해 경험을 증언하며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난 분이다. 위안부 피해자 인권 단체인 정의연(정의기억연대←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함께 30년을 같이 달려온 분이기도 하다. 그런 분이 정의연 활동을 공개 비판하면서 여당 측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의연 대표 윤미향을 잇따라 흉을 봤다. “30년간 이용만 당했다"는 게 요지다. 정의연 쪽도 가만있지 않았다.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으면 되지 일제 만행을 고발하고 알려온 그동안의 운동 성과를 할머니의 말 한마디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청춘을 걸고 여성인권 운동에 매진해 온 사람들을 여태껏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제와서 옳다구나 하고 싸잡아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고도 항변했다. 사태는 양측 지지 세력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해 ‘조국-검찰 대립' 때처럼 결론 없는 진영 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조짐이다. 지금으로서는 양측이 모두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 주장하는 것이어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도 알 수가 없다. 직접 경험했다고 사태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기억의 한계도 있다. 경험과 진실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해당 단체의 모금 관련 회계 부정 의혹은 검찰 수사로 넘어갔다. 차제에 당국도 모든 비영리단체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제고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사태를 좀 더 지켜보면서 성급한 판단을 아껴야 할 이유다. # 양쪽은 서로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맛있는 것 사 달라 했는데 돈 없다며 거절하더라.” 인간적 섭섭함을 토로한 이 말이 전후 맥락을 떠나 이용수 할머니의 심중을 대변한다. “자기가 못한 국회의원을 윤미향이 하게 되니 시샘이 나서 그런다.” 정의연 쪽의 이런 인식도 같은 배를 탔던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이쯤 되면 이제 서로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고 봐야 한다. 배신이란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지 상대의 소관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든 생각이 바뀌고 처지도 바뀔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달리하기도 한다. 누구도 그것을 배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길은 바꾸더라도 함께 마시던 우물에 침은 뱉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그걸 못해서 배신자 소리를 듣는다면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05-28

[풍향계] 단톡방에서 벌어진 일

어쩌다 들어가 있게 된 단체 카톡방(단톡방)에서 한 바탕 소동이 일었다. 요즘 한국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단체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이번에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그 단체 대표를 성토하는 글을 올리고, 또 누군가는 그에 반박하는 댓글을 달면서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됐다. 지난 해 조국-검찰 공방 때처럼 어차피 평행선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어서 결론이 날 리 없었다. 공방이 계속되자 일부 사람들은 단톡방을 떠나고, 급기야 회장이 나서서 글 게재 규칙까지 공지하며 자제를 호소했다.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앙금은 꽤 오래 남을 듯싶다. 동창 모임이나 단체, 교회 단톡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수십 수백 명이 함께 있는 방이다 보니 매일 수십 건씩 글이나 영상이 올라온다. 대부분 좋은 글이고 유익한 내용들이지만 간혹 저런 걸 왜 여기다 올리나 싶은 것도 눈에 띈다. 같은 방에 모였다 해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른데 자칫 언쟁이 붙고 볼썽사나운 싸움으로 폭발할 수도 있는 화약고다. 그럴 땐 분위기나 성격에 맞지 않은 글을 쓰거나 퍼 나르는 사람이 우선 잘못이다. 그렇다고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람을 섣불리 단정지어 판단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직접 만나 보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온라인에서의 완전 다른 모습에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는 의외로 많다. 한 두 마디 말과 글로 그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 테다. 그럼에도 말과 글 때문에 상종 못 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마는 게 또한 현실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가 된 어느 목사님이 최근 올린 글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열심히 페이스북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소통 잘하는 앞서가는 목사라 할 것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은 할 일 없어 시간 보내는 목사라고 할 것입니다. 운동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목사라 할 것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은 세월 즐기는 풍족한 목사라고 할 것입니다.” 마치 나를 두고 한 이야기인 것 같아 뜨끔하면서도 공감이 갔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듯 좋은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게 디지털 공간이다. 답은 없을까. 특정인끼리 모인 단톡방이라면 아무리 선의로 올린 글이라도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글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특히 비정치적 성격의 모임일수록 말없는 다수에 대한 배려는 필수다. 그게 온라인 공동체에 대한 예의다. 뭐든지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탈인 시대다. 과식, 과음, 과욕, 과장, 과잉…. 모두가 필요 이상으로 넘쳐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의원도, 연예인도, 단체장도 너무 많은 말 때문에 구설을 자초한다. 일찍이 공자는 모름지기 군자라면 말을 앞세우기 전에 실천을 먼저하고, 말은 그 다음에 따라야 한다(先行其言 而後從之)라고 설파했다(논어 위정편 13장). 병은 입을 좇아 들어가고 화는 입을 좇아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生)는 옛 경구도 있다. 알맞게 제한하고 조절할 줄 아는 절제, 절제(節制)가 그래서 답이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말이든 쉽게 쏟아놓을 수 있는 요즘이다. 그만큼 허언도 많아졌다. 대신 진짜 해야 할 말, 정말 들어야 할 말은 살펴 가리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다. 좁은 단톡방일지언정 말은 좀 더 아끼고 글은 최대한 신중하게 풀어놓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05-21

[풍향계] 한인회장 자격에 대하여

#. 봉사의 자리일까. 군림하는 자리일까. 비영리단체 리더라면 누구든 한번 쯤 자문해 보는 질문일 것이다. 물론 답은 본인도 알고 주변 사람도 안다. 문제는 봉사, 헌신으로 잘 출발했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초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런 저런 단체를 이끄는 리더들이 여간해서 좋은 평판을 듣기 힘든 이유도 이것이다. 한인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LA한인회는 조금 예외인 듯싶다. 임기 말인데도 선거 참여, 센서스 참여 캠페인 등을 활발히 이끈 데 이어 지금은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한인들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사업까지 펼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 한인회가 이런 것까지 하는 곳이었나 하는 긍정 반응도 부쩍 늘었다. 전에도 한인회가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역대 집행부마다 좋은 일도 하고 의미 있는 일도 해 왔다. 그럼에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은 한인회 하면 늘 싸우고, 생색내고, 자기들끼리만 놀고…라는 오랜 불신이 깊이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한인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도 칭찬 받고 관심도 끄는 게 아닐까. #. 34대 LA한인회 임기는 오는 6월말까지다. 규정대로라면 이미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차기 회장 선거 준비가 한창이어야 한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그런 일정이 모두 뒤엉켜버렸다. 한인사회가, 아니 미국 사회 전체가 올 스톱 된 상황이니 선거를 진행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LA한인회는 엊그제 임시 이사회를 열고 현 집행부 임기를 올해 말까지 6개월 연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위기 상황이 끝날 때까지 저소득 한인 지원, 각종 정부 지원 신청 등 지금까지 해 오던 중요 사업들이 중단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이유다. 이해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의아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현 집행부는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여태껏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연일 민원 봉사를 해온 충정을 연장된 임기 끝까지 사심없이 이어가야 한다. 또 연장된 임기 내에는 반드시 후임 회장이 선출될 수 있도록 선거 절차를 제대로 이행해 나가겠다는 약속도 지켜야 한다. 한인사회 역시 할 일이 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역할로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인회가 다시 무관심의 대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한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인회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능력과 신망을 갖춘 차기 회장 후보를 찾는데 같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 조선시대엔 벼슬길에 나갈 사람에겐 '사유(四維)'가 반드시 요구되었다. 도덕적 기초가 되는 4가지라는 뜻으로 예·의·염·치를 말한다. 예(禮)는 자기 분수를 아는 것, 의(義)는 벼슬을 얻기 위해 편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염(廉)은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는 것이고 치(恥)는 그릇된 길을 좇아 부끄러운 길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사사로이 자리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다. 조선이 온갖 모순 속에서도 518년이나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윤리의식으로 무장한 선비들이 목민관이 되고 백성을 이끌었다는 것도 한 요인이었다. 한인회장이 벼슬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인들의 권익을 챙기고 이민 생활의 아픔까지 다독여야 한다는 점에서 옛날 목민(牧民)의 자리와 다르지 않다. '4유'의 미덕이 지금도 충분히 살필 가치가 있는 이유다. 더하여 지금 우리 상황에 맞는 조건까지 보탠다면 더 완벽할 것이다. 한인 사회와 주류사회의 접점이 계속 넓어지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 영어와 언변(스피치)이 뛰어난 사람, 필요한 만큼의 재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한인사회를 향한 열정과 헌신의 마음이 더 뜨거운 사람이 그것이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04-29

[풍향계] 한국과 거리 두기

말의 힘이 크다. 용어나 정의되는 개념에 의해 생각과 의식이 지배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도 그렇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이 말은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뉴노멀(New Normal), 즉 우리 사회의 새로운 표준이 될 개연성이 높다. 걱정이다. 거리 두기라는 말 자체가 친밀, 친숙, 친교, 어울림, 더불어 살기 등 여태껏 우리가 추구했고 실천하고자 했던 가치들과는 너무 배치되어서이다. 말이 좋아 사회적 거리 두기이지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능한 한 말 섞지 말고, 함께 밥 먹지도 말고, 가까이 있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사람살이가 가능할까. 사람을 뜻하는 인간(人間)이라는 한자도 서로 지탱해 주는 모양의 ‘사람 인(人)'자에 문과 문 사이에서 말을 주고받는 모양의 ‘사이 간(間)’자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의지하고 말을 섞으며 살아야 비로소 인간이라는 뜻이다. 앞으론 이런 개념조차 바뀔까 싶어 두렵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급격히 높아진 사회적 밀도를 꼽았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사람끼리의 접촉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도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혼자 먹고, 혼자 마시고, 혼자 노는 일이 전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겠다. 보기 싫은 사람, 나대고 설치는 사람들의 오지랖이나 주제넘은 참견을 안 봐도 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렇다고 모두가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렇게만 살 수 있을까.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타인을 향한 시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증오의 시선, 무시의 시선, 배려의 시선이다. 배려의 시선이란 자연스럽게 바라는 보되 이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이를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 부르며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이런 시선이라고 했다. 그렇다. 싫어도 같이, 좋아도 같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고 사회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진짜 뉴노멀은 무작정 거리 두기가 아니라 배려의 시선이고 예의 바른 무관심이어야 한다. 우리 한인들이 한국(혹은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똑같이 위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는 증오의 시선이다. 한국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마음에 안 들어 하고 괴로워하며 날 선 언어들로 비판한다. 과잉 정치, 과잉 이념의 한 쪽에 발 담그고 내 편 네 편, 편을 가른다. 둘째는 무시의 시선이다.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여전히 60~70년대 후진국으로 여겨 얕잡아 보거나 폄하하는 우쭐거림도 있다. 셋째는 배려의 시선이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은 가지되 응원할 땐 응원하고, 모른 체 하는 게 나을 땐 모른 체 해주는 태도다.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 번째다. 한국 총선이 끝났다. 사상 초유의 결과에 환호하는 이도 있고 울분을 토하는 이도 많다. 그렇지만 걱정할 것 없다. 당장 망할 것 같고 내일이라도 사달이 날 것 같지만 그럼에도 한국은 잘 버텨왔고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은 예전의 약소국이 아니다. 해외 한인들이 걱정 안 해도 충분히 잘 헤쳐 나갈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더 관심 두고 추구해야 할 일만으로도 우린 바빠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거리 두기’는 이젠 한국과 먼저 실천하는 게 좋겠다. 배려의 시선으로, 예의바른 무관심으로.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04-17

[풍향계] 우린 왜 ‘기생충’에 열광할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국인의 무한 잠재력을 우리조차 믿지 못했던 것 아닌가. 아카데미상 4관왕이라니. 월드컵 4강 진출 때만큼이나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시상식 날 저녁, 처음 각본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고 여겼다. 초판 신문 마감을 앞둔 저녁 7시. 1면 제목은 ‘기생충, 아카데미상 역사 새로 썼다’였다. 101년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6개 부문이나 동시에 후보에 오르고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오스카까지 거머쥐었으니 당연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곧바로 국제영화상 수상.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수상이 결정되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다음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감독상 봉준호. 한국인 감독이 마침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확실히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969년생 닭띠, 봉준호. 이미 여러 화제작들로 유명해진 이름이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옥자, 설국열차에 이어 이번 기생충까지. 봉 감독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인류 보편의 문제에까지 천착하면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아카데미 감독상이 전혀 생뚱맞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거기다 ‘기생충’은 요즘 전 지구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리얼하게 다룬 작품 아닌가. 극한의 빈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처절하게 비틀어 풍자했지만 이것은 곧 으리으리한 빌딩 아래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이 느낀 공감의 강도 역시 생각보다 크고 예리했을 것이다. 수상 소감은 더 인상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멋진 스피치라니. 봉 감독은 당당하면서도 겸손했다.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경쟁 감독들을 추켜세웠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주었다는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롯해 미국인들에게 그의 영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해 주었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조커’의 토드 필립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작품상 경쟁자로 지목됐던 ‘1917’의 샘 멘데스까지. 압권은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5등분해서 그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지막 멘트였다. 어디서 그런 위트와 센스가 나왔을까. 과거 못살던 시대 주눅 든 한국인이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여유와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작품상까지 호명됐을 땐 환호보다 ‘오 마이 갓’이라는 탄성이 먼저 나왔다. 작년 5월 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때부터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줄곧 달고 다닌 것도 대단했지만,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4개 부문을 휩쓴 외국어 영화 1호라는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밤 10시, 마감을 앞두고 다시 고민했다. 내일 아침 배달될 2판 신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를 새로 썼다’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관객도 놀라고 한국도 놀라고 세계가 모두 놀란 전혀 예상 밖의 분위기를 전해야 했다. 실제로 역사를 새로 쓴 주역들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고른 사진이 관계자 모두가 함께한 통단 사진이었다. ‘기생충 4관왕, 세계가 놀랐다’였다는 제목이었다. 이런 날은 야근을 해도 힘이 난다. 역사의 현장을 함께한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현장에 나간 기자들, 편집국을 지킨 기자들, 시상식을 지켜본 많은 한인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생충이 상 받았다고 당장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솟구치는 뜨거운 감정은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다. 우리 모국 한국이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자부심, 미주 한인들은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 출신이라는 당당한 자존감 말이다. 영화 한 편의 수상 소식이 이렇게나 신나고 좋은 걸 보면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02-10

[풍향계] 피는 물보다 진하다

최근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장이 된 미셸 박 스틸은 한인들에겐 친숙한 정치인이다. 연방하원 선거에도 일찌감치 도전장을 던지고 분주히 뛰고 있다. 그가 얼마 전 워싱턴DC의 한 지역 신문에 기고한 글로 곤욕을 치렀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에게 휘둘리고 있으며, 유약한 대응과 처신으로 미국의 북한 비핵화 노력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고문이 실린 후 진보성향의 몇몇 단체에선 박 위원장이 한국의 평화통일 노력을 폄하하고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는 국내외 동포들에게 상처를 줬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민주평통 오렌지카운티 샌디에이고 협의회에서도 기고문이 적절치 못했다며 박 위원장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무대응으로 대응했다. 아마도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의사를 표현한 것이고, 그에 대한 찬반 양론은 당연한 일인데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입장이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일은 LA 최초 한인 시의원 데이비드 류에게도 있었다. 초선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수 한인들의 기대와는 상반되는 발언으로 비난받은 경우들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인 커뮤니티의 오랜 숙원인 정치력 신장과 맞물려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한인사회는 선출직 정치인 배출이 미국 내 한인들의 권익과 영향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여기고 이를 위해 부단히 힘을 모아왔다. 지금 이만큼이나마 한인 정치인들을 배출하게 된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였다. 한인 정치인들도 대부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인사회와 연관된 이슈에서는 늘 한인 편에 섰고, 한인 권익을 위해 뛰었으며, 한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하지만 소속 정당이 다르고, 지역구 관심 사항이 다르고, 각자의 정치적 소신이 다른 탓인지 어쩌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거시적 담론이나 전국 이슈에서 더 그랬다. 그럴 때마다 우리로선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섭섭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선거 때가 되면 또 그들을 밀어주고 격려해 주었던 것이 한인들이다. 이유는 하나, 피는 물보다 진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한인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겠지, 아무리 특정 이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 해도 결정적일 때는 결국 한인 편에 서겠지’라는 믿음 말이다. 때론 비정하기까지 한 정치판에서 이는 매우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한인이라고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소수계이고 여전히 커뮤니티의 힘이 더 결집되어야 할 처지라면 아직은 그런 순진한 믿음도 필요하다고 본다. 소수계 커뮤니티에겐 선출직 정치인은 존재 그 자체로 힘이다.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권익 신장과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는 선출직 정치인을 한 명이라도 더 배출하자는 것이 모든 소수계의 과제인 이유도 이것이다. 미국의 연방의원은 상원 100명, 하원 435명이다. 이중 아시아 태평양계는 상하원 통틀어 20명 정도다. 한인은 뉴저지의 앤디 김(민주) 하원의원이 유일하다. 인도계나 중국계, 일본계는 항상 우리를 앞선다. 베트남계, 필리핀계, 태국계의 위상도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 선출직 정치인을 얼마나 더 많이 가졌느냐가 가른 결과다. 올해 남가주에선 미셸 박과 영 김이 연방의원에 도전한다. 데이비드 류, 존 이도 LA시의원 재선을 향해 뛰고 있다. 지금으로선 당선 가능성도 높다. 이들은 한인 커뮤니티의 소중한 미래 자산이다. 그들의 당선을 위해 한인사회가 다시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모두에게 100% 만족스러운 정치인은 지구에는 없다. 비판과 훈계는 축배를 든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20-01-30

[풍향계] '신문쟁이'의 송년 편지

연말이면 늘 그랬듯이 올해도 ‘우리 가족 10대 뉴스’를 뽑아 보았습니다. 아들과 둘이 떠났던 사우스다코타 여행, 가족이 함께 했던 콜로라도 여행이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몇몇 결혼식 참석도 떠오르고 이런저런 단체에서 봉사했던 일도 새롭습니다. 이제는 많이 아물었지만 작년에 부러졌던 팔을 재수술한 일도 올해 제게는 아주 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신문 만들기였습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고르고, 제목을 다는 일은 익숙하고 일상적이어서 때론 그 엄중함을 잊기도 했지만 한 순간도 긴장을 놓거나 허투루 임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서툴렀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미디어 환경이 옛날 같지 않다느니, 동영상 시대에 종이신문 얼마나 읽히겠느냐느니 하면서 실수와 게으름을 감추었습니다. 부끄럽고 용렬한 일이었지요. 기자들과 함께 지난 한해 지면을 장식했던 기사들을 들춰보며 ‘한인사회 10대 뉴스’도 뽑아 보았습니다.오늘 신문 A-19면 그런데 누군가가 묻더군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요. 물론 과거의 기억만 더듬고 끝난다면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해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다가올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신문은 예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속보 경쟁에 밀리면서 더 이상 뉴스 전달자로서 신문이 소비되지는 않습니다. 신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세상 돌아가는 것 알 수 있고, 더 재미있는 소일거리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도 시간 모자랄 판에 언제 일일이 그 많은 기사를 읽고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신문이 아무렇게나 만들어져도 좋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아직도 신문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 넘칩니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독설가의 일방적 주장이 진리인 양 과대포장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실과 진실, 객관과 공정으로 무장한 신문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주 한인사회에서 한글 신문의 역할은 해가 바뀌어도 더 강조되면 되었지 퇴색하지는 않습니다. 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을 위해 한인들을 일깨우고 한인 정치인들을 북돋우는 일,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고 나눔으로써 한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 마음 훈훈한 미담들을 계속 발굴해 전함으로써 타국 생활에 힘겨워하는 한인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 이 모든 것이 여전히 해외 한인 신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을 보내면서 과연 우리 신문이 얼마나 그런 역할에 최선을 다했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좀 더 충실해보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지나온 과거를 좋은 쪽으로 기억하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습관입니다. 그런 경향을 심리학에선 969년이나 살았다는 성경 속 최장수 인물의 이름을 따서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하더군요. 괴로웠던 옛날은 잊고 즐겁고 아름다웠던 일만 기억하려는 것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칠 때가 문제입니다. 아무런 반성 없이 ‘아, 그때가 좋았어’ 라며 무조건 과거 예찬만 하다 보면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2020년 새해가 목전입니다. 희망이란, 과거가 좋았다면 지금도 좋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의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마음으로 2020년 새해를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미디어의 기본을 지키면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기사를 전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끼리’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전체를 통찰할 수 있도록 눈도 더 크게 뜨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도 변함없이 독자 여러분 곁에 늘 함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12-29

[풍향계] 그래도 산이 좋아

조선 선비들은 산을 관산(觀山), 유산(遊山), 요산(樂山)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멀리서 바라보기, 찾아가서 유람하기, 좋아해서 즐기기라는 말이다. 그래서 '오른다, 정복한다'는 느낌이 강한 등산(登山)이라는 말은 잘 안 썼다. 대신 '안긴다, 들어간다'는 뜻의 입산(入山)을 더 많이 썼다. 선조들의 이런 생각을 좇아 나도 가능하면 자주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고, 직접 찾아가서 살피고, 있는 그 자체로 산을 즐기려 한다. 이것 말고도 나대로 산을 찾는 이유가 또 있다. 무엇보다 산행 뒤의 성취감이다. 쉽지 않은 일을 땀과 수고 끝에 이루고 난 뒤에 밀려드는 뿌듯한 감정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일주일 내내 세상 잡사에 골몰하느라 찌든 심령을 씻어 낸 듯한 해방감과 청량감도 웬만하면 주말 산행을 거르지 않으려는 이유다. 최근 좀 멀리 블랙엘크피크라는 곳에 다녀왔다. 전에는 하니피크라 불리던, 사우스다코타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그래봤자 해발 7244피트밖에(?) 안 되지만 그럼에도 미국에서 로키산맥 동쪽에선 가장 높은 산이어서 꽤 유명세가 있다. 명승지 블랙힐스 일대 커스터주립공원 안,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실반호수에서 출발하면 2~3시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그곳에 갔다가 하산 길 8부 능선 쯤 되는 곳에서 부상자를 구조해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발을 삐었는지 거의 걷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구조대는 한쪽 바퀴만 달린 들것에 그녀를 태우기도 하고, 가끔은 부축도 하면서 가파른 등산로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먼저 내려오게 되었는데 산 중턱 쯤엔 골프 카트 닮은 산악용 특수 차량 두 대가 올라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 아래까지 다 내려오니 거기에도 앰뷸런스와 911 구급차, 셰리프, 공원경찰(파크레인저)까지 다 모여 있었다. 한 명의 조난자를 구조하기 위해 관련 기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단 한 명일지언정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수단은 다 동원하는 미국 시스템의 단면을 확인한 현장이었다. 며칠 전 LA인근 마운트 워터맨에서 등반 도중 실종됐던 70대 한인이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등산 애호가 사이에서 일주일 내내 화제가 됐다. 그 중 '밑으로 밑으로 내려만 오면 될 텐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고립될 수가 있을까'라며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이는 캘리포니아 산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완만한 한국 산과 달리 깎아지른 절벽에 가파른 계곡이 많은 이곳 산은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넘어지거나 구르기 십상이고 자칫 치명적인 부상도 입을 수가 있다. 폭포나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캐녀니어링(canyoneering)'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 산 속 변화무상한 날씨도 복병이다. 거기다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정말 예측 못 할 상황에 빠지고 마는 것이 산행의 어려움이다. 산은 누구든 받아들이지만 모두에게 다 너그럽지는 않다. 욕심 부리는 자, 서두르는 자, 자만하고 방심하는 자에게 산만큼 위험한 곳도 없다. 그래서 조난 사고 가 날 때마다 전문 산악인들은 당부, 또 당부한다. 혼자보다는 가능한 한 일행과 함께 갈 것,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지 말 것, 단체산행일 경우 리더를 잘 따를 것 등이다. 만에 하나 길을 잃었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큰 길을 만나면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훨씬 더 구조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비상용 라이터를 휴대하고 다니다 조난 시 불 안 나게 조심하면서 연기를 피워 올리라는 분도 있다. 이 모든 조언의 공통점은 결국 산 앞에선 자신을 낮추고 좀 더 겸손해지라는 것이다. 겸손은 어디디나 통하는 '마스터 열쇠'이므로.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7-04

[풍향계] 미국인은 왜 돈을 모을까

미주 한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한국 정치? 어느 정도 맞다. 자녀? 그것도 맞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관심은 지금 살아가는 문제, 앞으로 살아갈 일일 것이다. 나이듦에 적응하고 대비하는 일 말이다. 얼마 전 미국 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젊은 친구가 물었다. "미국서는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나요?" 인생이 무엇이냐는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다. 미국 생활 20년이 됐지만 나 역시 똑부러진 답은 못 찾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미국인들은 어떨까. 최근 재정 정보 전문사이트 '고뱅킹레이츠닷컴'이 보도한 '미국인이 돈을 모으는 이유'라는 글이 조금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전국의 남녀노소 5000명에게 물었다. "왜 돈을 모읍니까?" 놀랍게도 가장 많은 응답은 '은퇴자금 마련'이었다. 3분의 1 가까운 29%가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한다고 대답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던 '내집마련'은 27%로 두 번째였다. 그 다음은 여가생활(20%), 자동차 구입(20%), 대학 학자금 준비(14%) 순이었다. 길어진 수명에 노후가 두려운 것은 주류 미국인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복지강국이어도 국가가 개인의 노후보장을 완벽히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미국같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개인의 노후는 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다들 은퇴 준비에 고민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실상은 거꾸로다. 평생 일하며 중간 소득 수준을 유지했던 미국인 부부의 66%는 은퇴 시 통장 잔고가 5000달러도 안 된다. 은퇴자의 27%는 아예 통장이 비어 있거나 빚까지 지고 있다. 연방준비은행의 2013년 통계지만 지금도 비슷할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한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은퇴는 1세들에겐 준비 단계를 넘어 당장 맞닥뜨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어떻게 되겠지'에 머물러 있다. 소셜연금에 기대를 한다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연방노동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미국인 가정은 연 평균 4만5756달러를 쓴다. 한 달에 3800달러 정도다.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소셜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1461달러다. 젊어서 내가 벌어 내가 낸 만큼 돌려받는 것이니 적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한인노인 중엔 그 정도라도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대신 웰페어(SSI)에 의존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900달러 남짓이지만 이 돈은 내 이웃이 낸 세금으로 나눠주는 것이니 신청 조건 까다롭다고, 이런저런 제약 많다고 불평할 일은 못된다. 별 생각 없이 세월 보낸 사람과 꼼꼼히 준비하고 실천한 사람의 노후가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흘려보낸 세월을 탓하고만 있을 필요는 없다. 모아 둔 돈 없다고 너무 낙심할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수준이 되어야만 서글프지 않는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일부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도 고정관념이다. 잘 먹고, 잘 입고, 매년 한 두 번 크루즈 여행 가지 않더라도 씩씩하고 유쾌한 노후를 즐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노년 행복을 위한 5가지 요건'이 있다. 모두가 아는 '건(健)-처(妻)-재(財)-사(事)-붕(朋)'이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배우자다. 재물은 세 번째다. 일과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질문한 젊은 친구에게 이 이야기로 대답에 대신했다. "지금부터 은퇴준비를 하라. 돈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준비가 돈만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과 배우자, 일과 친구도 똑같이 중요하다. 다섯 가지에 골고루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게 미국 생활이다. 아니 이어야 한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6-06

[풍향계] 미·중 무역전쟁 막전막후

"큰일이야. 이러다 다 망하게 생겼어." 요즘 LA 자바시장서 일하는 분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다. 미국이 5000가지 이상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 추가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는 보도 이후 중국과 거래하는 한인 업주들의 위기감은 더 높아졌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렇게 현실 문제가 됐다. 극적 타결이 없다면 일반 한인들의 생활 장바구니 물가 부담도 곧 현실화 될 것이다. 미국의 공세는 가열차다. 중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설 기미를 안 보인다. 미국은 왜 이렇게 중국을 압박하고 있을까. 발단은 누적되어 온 거대한 무역적자다. 중국은 미국 전체 교역의 16.4%에 이른다(2017년). 전체 무역적자 중 중국 비중이 47.1%로 거의 절반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불만도 크다. 미국은 중국을 여전히 '비시장국가(Non-Market Economy)'로 본다. 중국 당국의 규제와 간섭이 개선되지 않는 한 미국은 계속 불공정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더 시급한 것은 미국 업체의 신기술 보호와 경쟁력 확보다. 세계 통신장비 시장을 30%이상 점유한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이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도 예전의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알다시피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참패 이후 중국은 근 150년을 서방의 무시 속에 보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는 그 시기를 버티게 해 준 슬로건이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다시 기지개를 켰다. 원대한 꿈도 펼쳐보였다. 과거 중화(中華)의 영화를 회복하고 중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꿈이다.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고대 동서양 교통로였던 실크로드를 향후 35년 동안 육상과 해상으로 다시 구축해 중국과 주변 국가의 경제 무역 확대의 길을 열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벌써 10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2015년 시작한 '제조 2025'도 야심차다. 이는 경제 전략을 지금까지의 양적 성장에서 10년 안에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IT, 로봇, 항공우주, 신에너지, 친환경, 신소재, 바이오 같은 기술 혁명이 있다. 이들 분야에서도 중국은 이미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1972년, 중국과 수교할 때 미국의 목표는 분명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미국적 가치를 전파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속내는 경제적 실리였다. 미국이 그동안 중국의 성장 발전을 적극 도왔던 것도 미국이 구축해 놓은 세계 질서 속에 중국이 들어오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상이몽이었다. 중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로 머물러 있다. 미국이 보기엔 인권도 제자리걸음이다. 거기다 중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까지 획책하고(?) 있다. 그런 중국을 어떻게 더 묵과할 수 있겠는가. 전쟁의 선봉엔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상당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참에 중국을 완전히 꿇어앉혀야 한다는 애국주의 분위기도 확산되는 모양세다. 하지만 현대 무역전쟁은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이미 세계 경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공존공생의 시스템 속에서 굴러간다. 싸움이 길어지면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직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고 있다. 중국이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다. 미국이 입맛대로 길들이기엔 중국도 너무 컸다. 지금까지는 양보 없는 힘겨루기로 달려왔지만 머지않아 양국이 타협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5-23

[풍향계] 50대 아저씨, BTS 공연을 보다

지난 주말 LA인근 패서디나 로즈보울 스타디움에서 BTS(방탄소년단) 공연이 열렸다. 이틀치 좌석표 12만 석은 이미 두어 달 전 온라인 발매 몇 분만에 매진됐다.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Speak Yourself)'를 주제로 한 이들의 월드 스타디움 투어는 LA를 시작으로 시카고-뉴저지-브라질-영국-프랑스-일본 등 세계 유수의 대형 경기장에서 석 달간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그 좌석들도 진작 다 팔렸다. 마음은 여전히 20대인 열성 아내 덕에 이 역사적인(?) 공연에 함께할 수 있었다. BTS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정말 이 정도였나'를 체험한 하루였다. 3시간 전에 갔는데도 로즈보울 주변은 벌써 '난리' 였다. 주변도로는 아침부터 통제되고, 스타디움 옆 골프장까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하늘엔 경찰 헬기와 주류 방송 헬기들이 수시로 떠다니고, 수만 명 '아미(ARMY: BTS의 열성 팬그룹)'들은 서너 시간 전부터 장사진이었다. 한인은 4~5%정도이고 95%는 타인종이었다. 20세 전후의 젊은 아가씨들이 대부분이었고, 의외로 40~50대 한인 여성들도 꽤 보였다. 스타디움 안은 더 뜨거웠다. 6만 명이 함께 BTS를 연호하며 내지르는 함성은 그야말로 천둥소리였다. 나로서는 하나도 알아듣기 힘든 노래들을, 그것도 한국말로 척척 다 따라 부르는 광경은 경이로움 그 이상이었다. 사실 나같은 50대 아저씨가 요즘 노래, 특히 떼거리 군무가 트레이드마크인 K팝에 관심 가지기는 쉽지가 않다. 외모도, 노래도, 춤도 그게 그것처럼 보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감정이입이 잘 안 돼서이다. BTS 역시 그렇겠거니 했다. 하지만 지난 해 잇따라 빌보드 최정상에 서고, 유엔 연설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얘들은 뭔가 다른 게 있겠구나' 했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그게 뭘까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인기 비결이 뭘까. 지역, 인종, 나이 구분 없이 왜들 그렇게 BTS에 열광할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미 사회 문화 현상으로 BTS를 조명한 글과 책이 적지 않았다. 탁월한 노래와 춤 실력은 기본이니 제쳐두더라도 다음과 같은 분석들엔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선, 노래 가사가 다르다. 기존 힙합이나 랩은 온통 섹스, 마약, 뒤틀린 사랑 타령이지만 BTS 노래들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젊은이들 스스로 외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준다. "멈춰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 멈춰서도 괜찮아"- Paradises(낙원) 중에서. 멤버 각자가 뿜어내는 스토리텔링도 남다르다. 별로 잘 난 것 없던 보통 아이들이 바닥부터 시작해 죽기 살기로 달려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달리기만 한 게 아니다. 무엇을 하겠다, 어떻게 하겠다는 '철학'이 있었고 그것을 SNS로 팬들과 직접 나누었다. '아미'들은 그래서 더 푹 빠졌다. 그들은 정상에 섰음에도 여전히 겸손하고 성실하다. 그 나이 또래의 천진함, 순진함도 잃지 않았다. 이런 BTS를 미국 언론들이 더 열심히 띄워준다. 누구든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모델로 그만한 사례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BTS는 이제 K팝이라는 범주에 가두어 두기엔 너무 커져 버렸다. 비틀스나 그룹 퀸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월드 스타가 됐다. 그들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대변한다. 미국과 유럽 것만 선진인 줄 알고 그것 따라가기만 급급했던 한국 대중문화가 이제는 스스로 패러다임을 만들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수준이 되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7명 '한국 청년'들이 그런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여전히 '한국'에 집착하는 나의 이런 생각마저 뛰어넘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이미 세계를 하나로 묶었고 나와 너,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일체의 경계마저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5-09

[풍향계] 이스라엘의 영토 야심

2000년을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불굴의 의지로 다시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라고 우린 알고 있다. 맞다. 하지만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있다. 지금 유대인들은 아무도 살지 않았던 사막 황무지를 근면 성실 헌신으로 일궈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설했다는 믿음이다. 정말 그럴까? 2차대전이 끝난 뒤 1947년 국제연합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해 절반 남짓을 유대인에게 떼 주어 나라를 세우게 했다. 하지만 유대인 군대와 민병대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1948년 5월 건국 전까지 단 6개월만에 팔레스타인 땅의 4분의 3을 점령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그곳에 살고 있던 80만명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쫓겨났다. 유대인들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을 되찾았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2000년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잃었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에도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며 주변 아랍국들과 계속 싸웠다. "증오를 먹고 사는 야만적인 아랍인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측의 이런 주장과 달리 아랍인들의 증오는 이스라엘의 선제적인 강제 이주와 탄압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약속의 땅'에 대한 맹목적 신앙은 주변 나라를 향한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군사 도발로 이어졌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잔인한 이스라엘(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번역, 2003)'이란 책에 따르면 '약속의 땅'은 지금의 시리아와 요르단, 레바논 일부, 나아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의 3분의 1, 시나이 반도를 넘어 이집트 전체의 3분의 1이나 포함되는 방대한 지역이다. 이스라엘의 영토 야심은 궁극적으로 이들 지역에까지 향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애꾸눈의 모세 다얀 장군이 이끌었던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전쟁)은 이스라엘 팽창 정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비롯해 요르단 땅이었던 요르단강 서안을 점령했고 이집트 쪽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까지 빼앗았다. 1978년 미국이 주선한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시나이반도는 이집트에 돌려주고 2005년 가자지구에서도 철수했지만 서안지구와 골란고원은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 물론 국제법은 침략으로 빼앗은 땅은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이스라엘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큰 선물을 안겼다. 지난 25일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문서에 공식 서명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신이 났지만 당사국인 시리아등 국제사회는 벌집 쑤신 듯 반발하고 있다. 자칫 군사충돌 가능성까지 얘기된다. 골란고원은 제주도만한 크기에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화산 현무암 지대다. 성서의 무대이기도 해 유대교 율법주의자였던 사울이 바울로 회심하기 전 다메섹(현재 다마스쿠스)으로 향할 때 지나 간 곳이기도 하다.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갈릴리 호수는 골란고원 위쪽 헤르몬산(해발 2814m)에서 내려오는 눈 녹은 물로 채워진다. 골란고원은 중동지역답지 않게 강수량이 많고 토지가 비옥해 예부터 농경과 목축이 성행했다. 지금 이스라엘은 수자원의 약 40%를 이곳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약속의 땅'이라는 믿음이 아니어도 이스라엘이 절대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친 이스라엘이 아닌 사람은 없었지만 트럼프는 유독 각별하다. 그는 지난해에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의 공식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함으로써 국제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었다. 이스라엘이 '왜곡된 민족주의'에 입각한 영토 팽창 욕심을 거두지 않는 한 이 지역은 계속 화약고일 수밖에 없다. 그런 화약고를 다독이기는커녕 오히려 옆에서 아슬아슬 불장난만 계속 하고 있으니 세계는 불안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3-28

[풍향계] '괄도네넴띤'과 댕댕이

댕댕이. 요즘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은 '멍멍이'를 이렇게 부른다. '귀엽다'를 '커엽다'로 읽기도 한다. '귀여운 멍멍이'는 그래서 '커여운 댕댕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신조어다. 이렇게 한글 자모를 모양 비슷한 다른 단어로 바꿔 읽거나 표기하는 것을 '야민정음(野民正音)'이라 한단다. 세종대왕 훈민정음에 빗댄 언어유희다. 탄생 배경이 재미있다. 스마트폰 시대, 작은 화면 속 글자를 읽으려다 보니 '머'와 '대'가 잘 구분이 안 된다. '광'과 팡'도 헷갈린다. 그래서 생겨난 게 '머전팡역시'(대전광역시)다. '명'은 '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명곡은 '띵곡'이 됐다. 눈물이란 단어를 위 아래 180도 뒤집은 '롬곡'도 있다. 요즘은 '괄도네넴띤'이라는 말이 화제다. 언뜻 네팔말 같기도 하고 태국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식 출시된 제품 이름이란다. '팔도비빔면'은 35년 동안 팔려온 인기 상품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포장지 글자를 우연히 '괄도네넴띤'이라 읽었다. 한글을 처음 배운 외국인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할 일 없는 백수가 장난삼아 그렇게 읽었다는 설(說)도 있다. 아무튼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인터넷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눈치 빠른 제조 회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발 빠르게 10만 개 한정으로 진짜 '괄도네넴띤'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박. 하루도 안 돼 매진이 됐다. 다시 출시한 2차 판매에서도 조기 판매 완료됐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늘 나오는 소리가 있다. 한글 파괴, 소통 장벽 등의 우려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렇게 해서 파괴될 한글이라면 500년을 이어오지도 않았다. 이런 정도에 소통이 막힐 거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소통이 될 리 없다. 유행어는 유행 지나면 사라진다. 온갖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한글은 건재했고 한국말은 더 풍성해져 왔다. 나는 이런 놀이(?)를 보면 오히려 신세대의 기발한 창의성이 부럽고 거칠 것 없는 발랄함에 질투가 난다. 세계 어떤 젊은이들이, 어떤 글자로 이런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염려론자들의 진짜 걱정은 한글 파괴라기보다 한국어 오염일 것이다. 그 점에선 미국 사는 한인들이야말로 '오염의 주범'일지 모른다. 현지 영어 발음 좇다보니 한글 표기법은 얼마나 제멋대로인가. 한국말도 아닌 것이, 영어도 아닌 것이 또 얼마나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나. "라이드는 내가 할 테니 넌 케어나 잘 해. 오더 받고 투고 딜리버리도 커스터머 컴플레인 안 나오게 조심하고. 파킹장서 스크래치라도 나면 애니타임 수~하는 게 여기잖아." 미주 한인들이 무심코 쓰는 이런 말들이 또 한국에선 '미국식'이라 해서 그대로 모방해서 쓰인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자. 영어 나라에서 이 정도라도 한국어 지키며 사는 게 어디인가. 어차피 언어란 생명체와 같아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바뀌고 진화하는 법이다. 기존에 있던 말만 정답인 것도 아니다. 아무리 나라에서 '자장면'이라 해도 다수 언중(言衆)이 '짜장면'이라고 하면 '짜장면'이 바른 말이 되는 거다. 2014년 국립국어원은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재미동포 언어 실태조사'를 했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생각하는 한인 2세 비율이 61.4%나 됐다. 비록 한국말은 서툴러도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어나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어가 미국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언어로 남을 수 있는 희망이 이것이다. 댕댕이면 어떤가. '꿀잼(정말 재미있음)'이나 '밀당(밀고 당기기)' 같은 신조어는 얼마나 신선한가. 미주에서도 이런 말 못 만들란 법 없다. 방법은 하나다. 한국어의 영역을 좀 더 확대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우리 말과 글을 가지고 놀도록 허(許)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어는 한국 사는 한국 사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3-14

[풍향계] 캘리포니아 출신 대통령 가능할까

지리멸렬한 지지율에 허덕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는 미세먼지 뒤덮인 대기처럼 불투명하다. 하노이 북미회담 성과로 재선 입지를 다지려던 시도도 '노딜'로 끝나는 바람에 전략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야당인 민주당은 더 바빠졌다. 내년 대선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만 벌써 14명이다. 부동산 재벌 출신 대통령 탄생에 고무된 듯 이번엔 하워드 슐츠(66) 전 스타벅스 CEO도 사실상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후보는 버몬트주 버니 샌더스(77) 연방상원의원이다. 지난 주말 고향 뉴욕 브루클린의 성대한 출정식에 이어 시카고 집회에도 1만 3천명이나 모였다. 2016년 대선 때의 '버니 열풍'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과시다. "1% 특권층만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미국"을 내세우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는 현재 예비 후보 중 지지율 선두다. 아직 출마 선언은 안 했지만 조 바이든(76) 전 부통령도 트럼프에겐 위협적인 상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명도가 높고 정치적 중량감도 큰 데다 오바마 시절의 향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매사추세츠주 엘리자베스 워런(69) 연방상원의원도 유력한 잠룡이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진보적 법학자였던 그는 백인 외모를 가졌지만 아메리칸 원주민 혈통을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LA 한인들 입장에선 캘리포니아주 카말라 해리스(54) 연방상원의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북가주 오클랜드가 고향인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를 둔 이민자의 딸이다. 8년간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을 역임했고 2016년 바버러 박서 의원의 뒤를 이어 역대 세 번째 가주 출신 여성 연방상원의원이 되었다. 그것도 연방하원 20년 경력의 정치 거물 로레타 산체스 의원을 물리친 것이어서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일요판 LA타임스는 내년 캘리포니아 예비선거(Primary)를 정확히 1년 앞두고 마련한 특집에서 '변화되고 있는 미국 정치판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민자 출신의 비백인 50대 여성인 해리스 의원을 지목했다. 신문은 해리스 의원이 2020년 3월 3일 열릴 가주 예비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럴 경우 40년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가주 정치인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근거는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과 인구 구성 변화다. 우선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 전역에 비백인 유권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변화를 갈구하는 여성, 소수계,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 1994년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이 대선, 연방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것도 이런 흐름의 결과였다. 내년 대선까지는 1년 8개월이나 남았다.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고 결과를 지금 예측한다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그럼에도 대선 과정을 주시해야 할 이유는 많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정치판의 큰 흐름 읽기다. 그것은 곧 종교적 복음주의, 근본주의에 근거한 백인 전통주의와 새로운 미국으로 이끌려는 진보 개혁세력과의 대결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민, 헬스케어, 부자 증세, 교육기회 확대 등 우리 생활과 직결된 정책 현안들의 향방을 가늠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어느 당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소수계 이민자로서 한인들의 권익과 입지도 크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게임이다. 샌더스 열풍은 어디까지 갈까. 과연 캘리포니아 출신 대통령은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 이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미국은 벌써 대선 레이스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3-07

[풍향계] 렉서스와 현대차

렉서스 중고차를 3년 쯤 탔다. 하루 100마이나 되는 출퇴근 거리를 리스차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어떻게저떻게 구한 차였다. 출고된 지 12년이나 됐고 주행거리도 16만 마일이 넘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하나 둘 돈 들 일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결국 트랜스미션까지 나갔다. 이젠 수리비가 자동차 값보다 더 들게 생겼기에 22만 마일밖에(?) 안 됐지만 어쩔 수없이 처분했다. 30만 마일까지는 탈 줄 알았다. 렉서스에 대한 평판이 워낙 좋고 다들 그렇게 말도 했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웠지만 "운이 없어 그런 차가 걸렸나 보다"하고 말았다. 다른 차를 리스했다. 현대 소나타 2019년형이다. 나로서는 다섯 번째 선택한 현대차다. 새 모델이라 그런지 외양도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가격 대비 훌륭했다. 그런데 차를 타기 시작하면서 경미한 문제를 발견했다.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엔진에서 뭔가 걸리는 듯 미세하게 "까르르…까르르르" 소리가 났다. 운행에 지장은 없었다. 주행 중엔 거리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도 조용한 곳이나 저속으로 갈 때는 제법 귀에 거슬렸다. 딜러에 전화를 걸었더니 "한 번 가져 오세요" 한다. 새 차로 기분 좋게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정비센터 들락거리게 생겼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한 달 남짓 지났지만 아직 딜러에 가진 않았다. 일부러 짬을 내는 것도 번거롭고 견딜만 하기도 해서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 멀었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모순이긴 하다. 렉서스는 '내가 운이 나빠' 그랬고, 소나타는 '현대차가 차를 잘 못 만들어서'라는 인식 말이다. 그래서 기업 이미지가 중요하다. 소비자 평판이 무섭다. 좋은 평판 위에 있는 기업은 여간한 잘못에도 "그럴 리가 없는데, 실수였겠지"한다. 반대로 똑같은 일을 두고도 신뢰가 부족하면 "그럴 줄 알았다"이다. 현대차뿐 아니라 삼성, LG 등 많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그들로부터 1원 한 장 받은 것 없지만 나는 이들 기업이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한국 기업에 대해 아직은 무엇인가 2%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경험도 그런 이미지를 더하는데 분명 일조할 것이다. 좋은 평판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100명, 1000명이 오랜 시간 비슷하게 느껴야 한다. 하지만 나쁜 평판은 한 순간이다. 단 한 명만의 부정적인 경험으로도 충분하다. 부정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은 더 무섭다. 좋은 경험은 주변 사람 8명에게 전해지는 반면, 나쁜 경험은 25명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한 마케팅 연구소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기분 좋은 경험을 한 소비자는 25%만이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반면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은 65%가 그것을 전달한다. 아마 나도 이번 경험은 계속 이야기하게 될 것같다. 어쩌겠는가. 현대차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JD파워가 수시로 발표하는 미국내 각종 자동차 성능 및 품질 조사에서 요즘 현대차는 도요타나 혼다, 닛산 등 유명 일본차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운 나쁘게 하필이면 나같은 '까다로운' 소비자에게 그런 차가 걸렸으니….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다. 설령 불량률 0.01%라고 해도 한 번 나쁜 경험을 한 소비자 마음엔 어떤 설명도 '변명'으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침묵과 의연함이 답이다. 대신 0.01% 불량률마저 0%까지 줄이겠다는 노력으로 시장에 보답하면 된다. 내구성이나 불량률 적기로 매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렉서스의 명성은 그런 자기 성찰과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기업들, 더 분발해야 한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2-07

[풍향계] 한국 가서 사장님 된 LA 목사님

청년 빈곤은 산업화 시대의 또 다른 그늘이다. 미국도 청년 취업난이나 대학생 노숙자 문제 등이 수시로 이슈가 되지만 한국은 좀 더 심각하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0%에 이르지만 대학에 못 가는 나머지 20%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퇴학이나 휴학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초중고생도 30만~40만 명에 이른다. 대학을 마치고도 취업을 못해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도 즐비하다. 이들 대부분은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으로 10대와 20대를 버텨낸다. 흙수저란 물려받은 것 없는 빈곤한 청년들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거기에 더해 '흙밥'이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아침을 거르거나 우유 한 잔이 고작인 젊은이들, 6000~7000원 식사 값이 부담스러워 컵라면에 단무지 하나로 때우기가 다반사인 흙수저 청년들의 식사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6·25 전쟁 때도 아니고 국민소득 3만 달러나 되는 나라에서 '청년 흙밥'이 웬말일까. 정부나 사회가 조금만 눈 돌리면 대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사가 다르니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청년들의 밥에 대한 작지만 따뜻한 관심으로 '정말 싸고 푸짐한 한 끼'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면 그것이 그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그런 곳이 있다. 김치찌개 3000원. 공기밥 무한 리필을 슬로건으로 내건 '청년식당 문간'이란 식당이다. 2017년 성북구 정릉시장에 처음 문을 연 이 식당 사장님은 뜻밖에도 20년째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글라렛선교수도회 이문수 신부다. 고시원에서 굶어 죽은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목사가 우연히 이 기사를 보게 됐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LA 중형교회 담임이었던 최운형 목사(51)다. 나성영락교회에서 6년간 부목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세계선교교회에서 시무하던 그는 평소 목회 철학이 '현장 사역'이었던 만큼 '바로 저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한국의 신부님 사장을 찾아갔다.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밥상은 그 자체로 귀한 일이고, 착한 일은 하나 더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설득, 흔쾌히 지점(?) 개설 허락을 받아냈다. 창업 정신과 조리법, 운영 방식도 전수받았다. 다른 것은 독자적 운영이라는 것뿐이다.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부와 같은 사역을 하는 것만으로도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아닌가요. 아름답죠." 안정된 담임목사직을 스스로 내던지고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았다. 가슴 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해 10월 드디어 서울 연신내에 식당을 열었다. 사장님이 된 것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 목사는 직접 주방에서 찌개도 내리고 홀 서빙도 한다. 월 150만원 가게 임대료에 파트타임 두 사람 인건비까지 감당하려면 하루 60~70명은 와야 하는데 아직은 30~50명 정도다. 당연히 적자다. 일단 부족한 부분은 전에 있던 교회의 후원금으로 메우고 있다. 가끔 쌀 포대를 보내주거나 반찬값을 후원해주는 독지가도 있다. "덕분에 점점 동네와 친해지고 있고, 찾아오는 분들께 따뜻한 밥과 찌개를 대접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하죠." 억 단위의 사치와 소비가 일상화된 한국이다. 그렇지만 단돈 만 원이 없어 밥을 굶어야 하는 청년들 또한 적지 않은 곳이 한국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3000원짜리 청년밥상에 담긴 사랑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요란한 말과 구호대신 직접 현장에 스며드는 '특별한 길'을 선택한 LA 출신 '목사 사장님'의 대박 성공을 성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연신내 '청년밥상 문간'은 지하철 연신내역 3번 출구 은평경찰서 방향 150m 건물 2층(불광2동 320-17)에 있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9-01-24

[풍향계] 오피니언 글로 돌아본 2018년

오피니언 리더는 시대 흐름이나 사회 분위기를 앞장서서 견인한다. 지도급 인사나 전문 분야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오피니언 리더인 것은 아니다. 어떤 정보나 사안에 대해 남들보다 먼저 관심을 갖고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디어를 통해 타당성 있는 글이나 말로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오피니언 리더가 된다. 한인사회에도 오피니언 리더가 있다. 신문에 글을 보내주는 필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올 한 해 어떤 글을 썼을까.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오피니언 기고자들의 관심사를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성 싶다. 첫째, 가장 많은 주제는 역시 한국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높은 지지율과 달리 미주에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드러낸 글이 많았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상황이 해빙무드로 급격히 바뀌어 가는 중에도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유비무환'을 호소하는 글도 단골이었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적폐청산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글도 꾸준히 들어왔지만 독자 반응이 그다지 뜨겁지는 못했다. 미주 한인사회가 여전히 보수 성향이 강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둘째, 미국에 살면서도 정작 미국에 관한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올해는 중간선거가 있어서 선거 관련 혹은 트럼프 정책 관련 글들이 있긴 했다. 정치력 신장이라는 커뮤니티 공통의 목표가 있어서 그런지 한인 정치인을 성원하는 글도 꽤 있었다. 하지만 한인이라고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었다는 1.5세 한 대학생 의견은 젊은 세대의 달라진 이민사회 인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일부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과 다양한 마이노리티를 대변해 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뽑혀 기뻤습니다 … 영 김 후보의 낙선은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점에서 아쉽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정치 성향이 저의 생각과 많이 다르고, 미국이 중요시하는 소수계 인권에 대해서도 잘 대변할 후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저는 지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 이젠 한인들도 이웃들과 미국 정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누가 진정으로 커뮤니티 이익을 대변하고 미국의 가치를 잘 실현해 줄 것인지를 찾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인이라고 무조건 지지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커뮤니티 이슈에 대한 관심과 조언들은 여전히 많았다. 특히 올해는 홈리스 셸터 문제나 방글라데시 주민의회 분리안 등이 불거져서 그런지 한인 권익 문제에 대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고무적인 것은 그런 한인들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든 주류사회에 전달되었고, 사태 해결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다만 최근의 욱일기 벽화 논란에서도 다시 드러났듯이 주류 사회와 연계된 사안에 대에선 좀 더 신중하고 전략적인 의견 표출이 필요하다는 숙제도 남겼다.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한인사회 대응에 대해 주류 사회는 곧잘 집단 이기주의 혹은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정치나 경제 문제 외에 생활 속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꾸준히 들어왔다. 부모, 자식, 친구, 음식, 반려동물 등 소재도 다양했고 필자들의 고령화 탓인지 '예쁜 손주'에 관한 글도 많았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한국에 다녀오면 꼭 방문기를 쓴다는 점이다. 고국 방문기가 '그래도 한국이 좋아'와 '이젠 도저히 못 살겠더라' 두 방향으로 확연히 갈리는 것도 이채로웠다. 오피니언면은 다양한 의견을 풀어놓고 나누는 커뮤니티 소통 공간이다. 나와 같은 생각도 있고 전혀 수긍할 수 없는 상반된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읽어주고 경청해 준 독자들로 인해 한인사회는 더 풍성해진다고 믿는다. 아울러 자신의 생각을 용기있게 드러내 준 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송구영신!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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