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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용 전 한미자유수호연합 이사장

“제 2의 6.25 전쟁 없어야 ”
지금도 비참한 당시 상황 생생

“다시는 제 2의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91세 박길용(사진) 전 한미 자유수호연합회 이사장은 해마다 6월25일이 되면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다시는 이같은 비참한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와 고향선교회 감사로도 봉사한 박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강화도 출신으로 6.25발생 당시는 24세였고 결혼해 체신부 기사로서 서울 노량진에서 살고 있었다. 이날은 주일이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라디오에서 전쟁 소리를 듣고 아이를 업은 아내와 함께 수원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 도중 잘곳과 먹을 것이 없어 고생했을 뿐만 아니라 철도와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도중 전투기의 오폭으로 어린이 포함 많은 피난민들이 죽는 비참한 광경 도 보았다.

그러나 이미 수원까지 공산군이 점령한 것을 보고 다시 노량진 집으로 돌아가다가 북한 형사 에게 체포되어 파출소로 끌려갔다. 형사는 구타와 함께 권총을 머리에 대고 아는 정보를 대라고 위협했다.
다음날 영등포 본서에서 인민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리에 그날 저녁 4명중 한명만 남아 있던 형사에게 옷을 가지러 10분간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기지를 발휘해 도망갔다.



집에 가보니 폭격으로 집이 다 부서져 있었다. 간신히 가족과 함께 관악산을 넘어 강화도 아버지 집에 돌아 와 보니 북한군들이 집의 물건을 다 뺏어가고 자신을 체포하러 왔었다는 소리에 낮에는 집 다락방에 숨어있었다.

마침 단파수신기가 있어서 그후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형과 작은 아버지와 함께 3명이 영종도에 배를 타고 갔다. 도중에 미국 경비정이 조사를 했으나 단국대학 영문과 출신이어서 영어로 말해 통과할 수 있었다.

섬에 상륙하니 이곳에서는 대한청년단원들이 총을 들고 검문을 했는데 마침 교사로 있는 형님의 제자가 있어 증명서를 받았으며 그후 김포공항에서 미 제 5공군 무전대에 민간인으로 근무를 했다.

박씨는 지금도 잘 때에 가끔 당시 전쟁의 비참한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라 잠 못 이룰 때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6.25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못먹고, 못 입은 비참한 이야기들을 후손들에게 들려주면 “세상을 잘못 만나서 고생했다”는 소리에 이야기도 못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특히 “참전 미군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한국이 지금처럼 번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며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한국과 미국의 혈맹관계가 더욱 증진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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