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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케첩 사재기의 역습

하다 하다 이제는 케첩이 부족하단다. 활짝 문을 연 식당들이 병째로 두는 케첩 대신 일회용 패킷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일부 호사가들은 팬데믹 초기 화장지처럼 케첩 사재기 조짐이라고 호들갑이다.

이베이에는 이 틈을 노려 누군가 0.32온스 용량의 하인즈 일회용 케첩 20개를 8달러에 내놨는데 이게 실제로 팔렸다. 한 괴짜는 페이스북에 똑같은 미니 케첩 3개를 무려 1500달러에 판다고 올렸다. 어쨌든 경기가 살아나는 증거 아니냐며 사람들은 웃어넘겼다. 하인즈는 25% 증산을 목표로 새로운 생산 라인 건설을 시작했다.

팬데믹처럼 극적으로 사재기를 부추긴 사건도 없었다. 화장지, 손 세정제, 마스크, 일회용 장갑, 제빵기, 감기약, 운동기구, 파스타, 밀가루, 이스트, 시리얼, 통조림, 향신료, 발전기, 총기류까지 다양했다.

얼마 전 수에즈 운하를 막아선 컨테이너선 좌초 사고로 유럽에서 사재기가 재현되기도 했다. 특히 요즘 사재기는 규모를 키워 최근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고, 국가 간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사재기 공방까지 벌어졌다.



경제학에서 사재기는 단기간에 발생하는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생산자의 창고에 있어야 할 상품이 소비 주체인 가정집이나 업소로 공간 이동하는 의미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꺼번에 급속하게 이동하면서 일시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달리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거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는 사람들이 모든 정보와 상황을 활용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상하고 경제 행위를 한다고 주장했다. ‘합리적 기대가설’로 불리는 그의 연구에서 기대란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상품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되면 사 모은다. 부족해질 것으로 예측해도 미리 비축한다.

그러다 과도하게 값이 오르거나 너무 많이 쌓아뒀다고 판단되는 정보 또는 상황을 접하면 합리적으로 사재기에 제동을 건다고 그는 주장했다.

과연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이런 가설이 통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합리적 기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해답을 찾는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자기충족적 예언’ 가설을 통해 잘못된 예측을 믿고 행동에 나설 경우 불안과 집단행동이 방아쇠가 돼 그 예측이 현실이 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심리학자 스튜어드 서덜랜드 역시 “두려움은 전염성이 강하고 공포는 대부분 비합리적”이라고 말해 설득력을 얻었다.

관심이 식은 가운데 화장지 판매는 지난달 33% 감소했다. 업체들은 생산시설 가동률을 10%포인트 낮췄다. 불안은 사라졌고 집단행동은 힘을 잃었다.

요즘 만나는 한인 사업가들은 하나같이 재고 처분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잘 팔릴 물건 찾기는 사업가에게 즐거운 도전이지만 재고란 녀석은 보통 성가신 게 아니다. 창고 자리만 차지한 마스크, 손 세정제 등은 이미 헐값이 됐다.

“백신은 맞으셨어요?”가 새로운 인사가 된 마당에 마스크나 손 세정제 선물 인심이 후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물며 케첩은 보통 9개월이면 맛이 상해버릴 텐데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케첩 선물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류정일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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