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군서 월남-예지역 준장 이기건씨의 6.25체험기

매년 찾아오는 6·25지만 예비역 준장 이기건씨(80)는 올해도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6·25 당시 경주전투에서 중화기 1개 중대만을 남기고 전멸한 25연대를 맡아 참전하기도 했고 7사단 3연대 연대장으로 평양에 입성하던 기억들이 빛바랜 군복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치열했던 안광기계전투에서 기습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던 그는 “특히 경주전투에서 아군이 전멸해 8백여명의 학도병을 동원했는데 전쟁터로 가는 트럭안에서 이들 학도병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쳤다”며 그때의 어려웠던 상황을 증언하기도 한다.

평남태생으로 만주군관학교 1기로 군에 들어선 그는 여운영씨의 특사로 남북을 오가다가 인민군 제 1 보안간부훈련소에서 대열참모로 활동했다.

나라를 지키는 명예로운 군인으로만 남기를 원했던 이씨는 북에서 사상문제로 오해를 받게 됐고 이에 환멸을 느껴 위험한 월남의 길을 택했다.

남쪽으로 온 그는 당시 정일권·이영근씨 등의 권유로 태능사관학교에 입교해 소위 계급장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사관학교에서 중대장이 돼 있었던 만주군관학교 후배인 박정희 전대통령을 만나 선후배가 바뀌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격동기에 경험하기도 했다.

소위로 임관된 후 여수반란사건에 작전참모로 참가했고 한국군 포병창설에 관여했으며 6·25전쟁에 참가해 공훈을 세운 그는 국군 태동기의 살아있는 증언자로 남아 있다.

“6·25를 생각하면 처참했던 경험과 함께 이승만 박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경주까지 와서 격려해주던 이승만 박사를 다시 북진하면서 만났는데 그분이 무슨 일이 있어도 평양입성은 미군이 아닌 국군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경을 헤치고 평양에 입성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최근 들어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젊은이들이 참혹했던 전쟁을 잊어가는 것을 우려한다.

“6·25전쟁이 무엇이냐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물어보면 ‘동족상잔의 비극’이나 ‘민족의 아픔’ 등으로 미화합니다.

그러나 6·25는 명백히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무력 침공한 전쟁’입니다.

북한은 언제 자포자기 심정으로 남한을 침공할지 모릅니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해야 하지만 결코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어 남한침공을 계획하고 있는 북한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전쟁이 멈춘지 반세기가 가까워온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푸른 군복을 입었던 이기건씨의 열정은 식지 않아 그의 곧은 눈매는 아직도 그 날의 아픔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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