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 ‘트로트 르네상스’의 열풍

“한국은 지금 트로트 르네상스를 맞았다.”

영국 언론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말 그대로 한국은 지금 트로트 전성시대를 맞아 사방에서 흥겨운 모양이다. 이 같은 뜻밖의 열풍에 대해 비평가들은 느닷없이 웬 트로트 열풍이냐, 복고 취향이 젊은 세대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라는 등의 의문을 제기한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 사이의 미묘한 관계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꽉 막혀있고, 철저한 반일사상과 친일파 논쟁이 뜨거운 세상이니 관심도 클 수밖에 없다. 서울대 음대 전상직 교수는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친일행적이나 일제 잔재에 대하여 엄정한 우리 사회가 유독 엔카에 뿌리를 둔 트로트에 대하여 관대하고 심지어 열광하는 역설적 상황은 사실 좀 당황스럽다.”

논쟁의 핵심은 트로트가 왜색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엔카와 트로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과 연구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두 노래는 같은 시기에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으나, 한국과 일본의 사회 환경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국에서는 반일감정으로 인해 왜색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한 많은 가요들이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이던 시기였다. 그리고 한 때는 일본 문화를 베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리고, 밀려들어온 서양문화에 빠져들면서,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부르며 낮잡아보고 푸대접하는 풍조가 꽤 오랫동안 강하게 계속되었다. 왜색(倭色)은 안 되고 양색(洋色)은 되느냐는 항의가 있었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본의 노래는 엔카(演歌)라는 버젓한 명칭을 가지고 순탄하게 발전한데 비해, 한국에서는 도롯도니 뽕짝이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부터가 그런 현실을 말해준다. 나훈아가 ‘전통가요’나 ‘아리랑’이라고 불러달라고 제안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트로트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일본 엔카의 원류는 한국 음악’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일본의 학자나 연구가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의 회고다.

고가 마사오(1904~1978)는 ‘엔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곡가로, 엔카라는 명칭을 만들고, 기타 반주를 노래에 도입해 독특한 정서를 만드는 등 엔카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런 고가 마사오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 유소년기에 한국에서 살았고, 그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회고록의 한 구절이다. “나는 조선인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 이후 작곡을 하게 되었을 때 조선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나의 작곡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977년 ‘저 꽃 이 꽃’이란 노래에 대해 말하면서 “만일 내가 소년시절을 조선에서 지내지 않았다면 이러한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국적 정서가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했다.

고가는 ‘황성옛터’ ‘알뜰한 당신’ 등을 작곡한 전수린(1907~1984) 등 한국 음악가들과도 교류가 있었고, 아리랑을 편곡하여 가수 채규엽에게 부르게 하여 크게 유행시키기도 했다. 고가 마사오의 대표곡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와 전수린의 ‘황성옛터’는 같은 해인 1932년에 작곡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엔카의 원류는 한국음악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습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트로트를 왜색이요, 촌스러운 음악이라고 폄하할 필요도 물론 없다. 그냥 뿌리는 같은데 서로 다른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음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트로트는 살아남았고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인의 심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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