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법자들이 판치는 세상

나이 좀 든 사람들은 ‘황야의 무법자’라는 서부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인공 총잡이로 나오고, 엔리오 모리코네의 휘파람 주제곡이 인상적인 영화다. 1964년 작품이니 고전에 속하는 영화다.

이른바 ‘달러 3부작’으로 불리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가 큰 인기를 끌면서 마카로니 웨스턴이니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태어났다. 사실 이 영화는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요짐보’를 도용하여, 저예산으로 스페인의 시골구석에서 찍은 싸구려 영화인데, 뜻밖에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개봉할 때 제목은 ‘황야의 요짐보’였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를 한 방에 뒤집어 엎는 혁신이었다. 이전의 정통 서부영화에서는 총싸움할 때 총잡이들이 지켜야하는 엄격한 규칙들이 있었다. 상대방 등에 대고 쏘거나 비열한 꼼수를 쓰지 않는 등등의 불문율의 핵심은 비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부영화뿐만 아니라 무사도, 신사도처럼 기본적인 도덕률을 지켜야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당돌한 영화가 나와 그런 규칙들을 단방에 박살내버렸다. 이 새로운 서부영화에서는 과거 미국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거창한 명분이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이해와 탐욕을 위해 총질을 해대고, 이 과정에서 온갖 음모와 배신이 얽히고설킨다. 도덕이고 개뿔이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는 자가 최고다. 비열하고 잔혹해도 상관없으니 아무튼 이겨야 한다. 승자가 곧 선(善)이다. 지고 나서 구시렁거려봤자 아무 소용없다.

존 웨인 같은 정통파는 이런 영화를 엄청 싫어했지만 관객들은 뜻밖에 열광했다. 우선 재미있으니까 끌리기도 했고, 기존의 가치관에 저항하는 히피 같은 새로운 문화가 치솟아 오르는 시대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기존의 서부영화는 기껏해야 누가 총을 더 빨리 뽑는가 경쟁이고, 결국은 정의가 이긴다는 권선징악의 결말이 정해져 있으니 큰 재미가 없다. 그런데 새로운 영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으니 흥미진진하고, 이전의 미지근한 자극과는 상대가 안 되게 짜릿하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성공하자, 잔혹한 피로 얼룩진 ‘와일드번치’ 같은 서부영화가 나오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화제를 모으면서, 굳건하게 미국정신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좋은 서부’ 신화가 무너지고 만다. 그것은 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류 정신의 질서는 서서히 변하기도 하지만 한 방에 뒤집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꼭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주인공 같아 보인다. 정정당당이나 승복이라는 낱말과 전혀 관계없이 무조건 이겨야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이겼다고 우기는 총잡이 같아 보인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행동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질서를 지키는 보안관’이라는 오만하지만 당당한 자세를 버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려드는 태도도 그렇고, 걸핏하면 가짜 뉴스 탓하고 아무 거리낌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제발 내가 잘 못 본 것이기를 바란다.

어찌 트럼프뿐이랴! 내가 보기에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정치한다는 분 중에는 무법자가 많다. 황야의 무법자건, 석양의 무법자건, 새벽의 무법자건 무법자는 모두 ‘나쁜 서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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