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와인 칼럼니스트들의 다짐

우리 몸은 쓰고 남은 단백질이 분해될 때 생기는 암모니아를 ‘요소 회로’를 통해 처리한다. ‘오르니틴 트랜스카바미라제’라는 효소는 이 과정에 필수적인데, 신생아 몇만 명 중 한 명 꼴로 이 효소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견된다. 이 가여운 아이들의 절반 정도는 한 달 안에 사망한다.

1993년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유전자치료 센터 소장으로 부임한 짐 윌슨 교수는 요소 회로 이상 질환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크 뱃쇼 교수와 함께 이런 아이들을 치료할 계획을 세웠다.

동물실험을 마무리한 연구팀은, 1997년 환자를 대상으로 제1상 임상시험을 드디어 시작했다. 당시 17살이었던 제시 겔싱어는 망설임 없이 이 연구에 자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제시 간세포의 일부는 정상 효소를 가지고 있어 단백질을 적게 먹고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면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연구에 참여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구에 참여해서)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뭘까? 죽는 거겠지. 그렇지만 그 아이들을 위해 죽는 거야.“

이윽고 임상시험에 참여한 제시는 1999년 9월 13일 유전자치료제를 투여받았는데 불행히도 간·신장·폐가 차례로 망가져 사흘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아들의 죽음에도 제시의 아버지는 연구팀을 옹호하며 ‘나는 죽는 날까지 이 연구자들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연구자들은 동물실험 초기 단계에서 생쥐와 원숭이가 죽은 적이 있다는 점을 제시와 아버지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윌슨 교수가 자신이 설립한 ‘제네보’ 라는 회사의 주식을 상당량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연구가 상업화될 경우 이 회사가 모든 권리를 가지도록 되어 있었다. 만약 제시가 참여했던 연구가 성공했다면 윌슨 교수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될 것임은 자명했다. 결국 윌슨 교수는 5년간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펜실베니아 대학은 연구자들이 자신이 참여하는 임상시험과 연관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을 금지했다.

어떤 사람에게 맡겨진 공식적 임무가 개인적인 이익과 부딪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이해충돌’이라고 부른다. 윌슨 교수의 경우 주주로서의 개인적인 이익이 엄정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할 연구자로서의 임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첨예한 이해충돌 상황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이런 갈등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의학 연구자들만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후원자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다든지, 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든지,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자한다든지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이해충돌 상황이다.

의학계가 이해충돌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정책은 당사자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사실대로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좋은 방법은 물론 이해충돌을 아예 피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와인 칼럼니스트들의 다짐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는 공짜로 와인을 받거나 여행 경비를 지원받거나 식사 대접을 받지 않겠습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행사에만 참석할 것이며, 와인 제조업자들이 뉴욕을 방문한다 해도 만나지 않겠습니다. 모든 와인을 소매점에서 구입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지면에 밝히겠습니다. 상표를 가리고 와인을 시음할 것이며, 혹시 그렇지 못했다면 역시 밝히겠습니다. 우리는 와인이 스스로 진가를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이해충돌에 놓일 수 있다.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해도 오해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와인 칼럼니스트들의 다짐을 명심하자.

임재준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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