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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코로나를 치유하는 문학의 힘

동유럽이 소련의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1988년 2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찾았습니다. 1940년부터 5년 동안 한 수용소에서 400만 명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엄청난 충격 속에서 제가 본 것을 표현할 길이 없어 괴로워했습니다.

시인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렇게 괴로워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그러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참혹한 수용소에서도 시를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인 이작 카체넬존은 아비규환의 참상을 시로 기록했습니다. 마침내 카체넬존이 가스실로 끌려가 한 줌의 재로 화하자 감방 동료들은 그의 시들을 유리병 속에 넣어 땅에 묻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우슈비츠가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고 유리병 속의 시들은 살아남은 유대인들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코로나19 창궐이 반년을 넘어가면서 세상이 공포로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이제는 코로나 우울증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가공할 역병 앞에서 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질병과 싸우고 있는 의사들이 한 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한국 의사 시인회가 낸 ‘코로나19 블루’란 시집입니다. 이 시집을 펴내는 취지에 대해 김완 회장은 “감염병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궁극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서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는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낯선 곳에 와 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 헛기침만 해도 쏘아보는 눈초리/ 인적 줄어든 거리// 환자가 오지 않아 두렵고 환자가 오면 더 두려운 하루하루”(홍지헌 '여행’)



이 시집에는 아버지를 간호하던 아들이 간암 3기임이 밝혀지자 “자식이/ 먼저 가는 건/ 정말 못 볼 짓이야/ 포기하지 말고 꼬옥 이겨 내거라/ 치료도 거부하고 곡기도 끊고/ 훌쩍 한 세상 떠나가 버린”(김기준 ‘어떤 눈물’)이라고 한 아버지의 이야기나 “나도 미궁에 빠질 때가 있다/하늘에 청진기를 댄다”(김승기 ‘진료실에서 길을 잃다’)처럼 의사이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나는 갑니다. 마지막 훈계서 한 장 가지고!”(김연종 ‘시인의 말')의 중국 우한병원 의사 리원량의 동료들입니다.

소설가 열다섯 명은 ‘코로나19-기침소리’라는 소설집을 냈습니다. 이들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외경으로의 무한한 상상력과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험 역시 시대의 척후병인 소설가들이 선도적으로 감당해 주어야 할 몫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낸다고 밝혔습니다.

이 작품집에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중국 여성이 시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남편을 한국인만 탈 수 있는 전세기편에 귀국시키고 자신은 어린 딸과 함께 우한에 남게 되는 생이별 이야기(엄현주 ‘기침 소리’), 부부가 겪는 자가격리 이야기(이하언), 마스크를 둘러싼 소동(임재희 ‘립스틱’, 김정묘 '코로나 은둔씨의 일일’), 재택근무 이야기(김민효 ‘무반주 벚꽃 엔딩’), 역병에 자식을 잃으며 가혹한 삶과 싸워온 우리 부모 이야기(오을식 ‘엄마의 시간’) 등에 이르기까지 요즘 겪는 현상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시인은, 소설가는 시대의 기록자이며 이는 코로나19 시대에도 어김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문학의 응전력이며, 코로나 블루를 이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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