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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카나리아의 패자 부활전

핀란드 헬싱키에 10월이 오면 이색적인 행사가 열린다. 매년 10월 13일에 개최되는 ‘실패의 날’ 기념행사다. 타인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이에서 얻은 교훈을 발판 삼아 성공을 모색해 나가자는 취지이다. 낙오로 이어지는 실패를 거부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실패의 경험에서 재기를 위한 공동의 가치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실패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할 만큼 실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례도 숱하게 많다.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학문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패자 부활의 사회적 당위성을 보게 된다.

패자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을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발견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카나리아로 알려진 새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 중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카나리아에 관한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노래를 잊어 버린 카나리아는 뒷동산 언덕 위에 내다 버릴까… 아서라! 그것은 안 될 말이다. 노래를 잊어 버린 카나리아는 상아로 지은 배에 은(銀)노를 저어, 달 밝은 밤 바다 위에 띄어 놓으면 잊어버린 노래가 떠오르리라….’

카나리아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는 흔히 암컷이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카나리아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수컷의 전유물이라고 한다.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 때문에 소프라노 가수라는 별명도 얻고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암수가 다 모인 자리에서 노래자랑 대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수컷들이 암컷의 환심을 얻어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해 치열한 노래 경쟁을 한다는 사실이 조류 학자들의 관찰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노래자랑 연례행사가 끝난 후에, 학자들의 관심은 경쟁에서 패배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패자들의 행태에 있었다. 1978년 새들의 노래 경연을 관찰한 조류학자들이 고배를 마신 한 수컷을 추적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수컷이 자기보다 먼저 짝짓기에 성공한 선배를 찾아 사사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재수 삼수를 거치는 실패한 수컷이, 믿거나 말거나,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듬해 봄에 열리는 대회에 재도전할 목표를 세우고 맹연습에 열중하는 것이다. 성공의 첩경은 동물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본다.

얼마 전이다. 아프리카 대륙 인근 대서양에 섬 6개로 형성된 카나리 제도가 있다. 카나리아(새)와 같은 이름이어서 필자는 둘 사이에 인연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자료 수집에 나선 일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다니는 불확실하고 무책임한 정보는 혼란만 부추길 뿐이었다. 우연의 일치로 이름만 같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섬의 이름인 ‘카나리’도 원래 라틴어의 '개'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카나리아의 문화에서 패자 부활의 사회성을 본다. 실패가 낙오로 이어지는 것은 한낱 개인의 슬픈 일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손실이 결국 사회에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패의 개연성을 줄이고 그 후유증을 완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안전망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실패의 날 기념행사가 시사하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라만섭 / 전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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