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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큰아버지인가, 엉클인가

평생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 있다. 나는 양치질 할 때 필요 이상 오래 닦고 화장실 밖으로 돌아다닌다. 이 습관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두 칫솔을 물고 사방을 돌아다닌다. 큰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다.

큰아버지는 워낙에 말씀도 행동도 조용하셔서 그랬는지 가족 모두가 어려워했다. 아버지도 세 살 위인 큰아버지를 아주 큰 어른 대하듯 하셨다. 아버지는 큰아버지보다 한참 먼저 결혼 해 나를 낳으셨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 집보다 할아버지 집에서 지낸 기억이 더 많다. 큰아버지는 세살배기 조카인 나랑 놀아 주고 글자도 가르쳐 주었는데 항상 웃었고 다정하셨다. 할아버지 집 사랑채에서 지내셨는데 나만큼 거침없이 큰아버지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 시간이면 항상 내가 가서 모시고 왔다. 식사가 끝나고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놓으시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하고선 바로 이를 닦으러 나가셨다. 이를 닦기 위해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 닦을 때는 항상 정원 쪽 바위 축대로 가셨다. 그 곳에서는 음지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칫솔을 들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를 닦으면서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이나 식물들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셨다. 큰아버지가 이를 다 닦고 자리를 떠나면 나도 칫솔을 들고 큰아버지가 있던 꼭 그 자리로 가서 큰아버지가 오늘은 무엇을 보셨나 살폈다. 상사초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기도 하고 바위틈 이끼 사이에서 작은 버섯들이 삐죽 나와 있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많이 까다롭고 깔끔한 분이셨다. 그러나 순종하는 장남이었다. 본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포기하고 그 상처 때문에 몇년을 과음 하셨다고 한다. 여름이면 사랑방 뒷문 담장에 걸린 능소화를 한참을 보고 서 계셨다. 지금도 날씬하고 말쑥하게 생긴 능소화를 보면 큰아버지 생각이 난다.

요즘 부쩍 큰아버지 생각이 나는 이유가 있다. 작은 며느리가 아직도 큰아들에게 '오빠’라고 부르길래 ‘앞으로 아주버님이라고 부르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큰애에게는 ‘제수씨’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대뜸 큰아들이 ‘노’ 하는 것이다. ‘나중에 동생 애들이 태어나면 너는 큰아빠가 되는 거야'했더니 큰애는 ‘엉클(Uncle)’이라고 한다.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미국에 살다보니 가르쳐도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은 내 아버지 빼고는 다 ‘엉클’이다. 그러면 큰아버지나 아저씨나 ‘거기서 거기'란 말인가. 아무리 개인주의 사회이고 가족중심 사회라지만 이건 아니다. 지금도 내가 큰집 동생들을 한 식구 같이 느끼는 것은 그만큼 어른들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내가 별 개념 없이 칫솔을 물고 돌아다니는 것은 큰아버지로부터 배운 습관의 대물림이지만, 나에게 큰아버지는 아버지나 매 한가지였다. 아이들 또한 자식을 낳은 후에도 끈끈한 관계가 지속되려면 일단 호칭부터 정립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많이 고민된다.


김지현 / 수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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