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친일인사 저격 전명운 의사 막내딸
레이크우드 전경용 여사
전명운 의사는 사건 후 장인환 의사와 공범자로 체포됐으나 애국심에 감복한 재판관이 전명운 의사를 무죄로 선고, 1908년 6월 27일 석방됐다. 하지만 장인환 의사의 재판 중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이름을 마크 필즈로 변경해 그해 12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했다. 이곳에는 1907년 안중근 의사가 망명, 장차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전명운의 저격사건은 안중근이 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909년 7월 LA에 돌아온 전명운 의사는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지만 1929년 상처했다. 그 후 생계가 막연해 자녀들을 천주교 고아원에 맡겼는데 외아들은 사망했다. 전명운 의사는 조국의 광복을 지켜봤지만 생활고 끝에 1947년 11월 19일 사망했다. 현재 LA위티어 천주교 묘지에 안장돼 있다.
두 딸(전경숙·경용) 중 막내인 전경용 여사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74년 한국에 사회복지사로 파견갔다가 LA에 돌아온 후 소셜워커로 근무했다. 이후 홀트아동복지회 디렉터로 일하다 은퇴했다. 전 여사의 장례식은 지난 29일 가족장으로 치러졌으며 컬버시티에 있는 홀리 크로스 천주교 묘지에 안장됐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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