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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저녁이 있는 삶

몇 년 전 한국 대통령 선거 때 한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폭 넓은 공감을 받았다. 비록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사회에서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함께하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또한 그 '저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큰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저녁'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참 푸근한 단어다.

저녁을 함께하는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현대사회는 누구나 이래저래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1980년대 한국에서 대기업 구성원으로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20여 년을 해 본 경험으로 볼 때도 평일 날 가족들과 저녁을 같이하는 일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새벽같이 나가 한밤중에 돌아와 겨우 몇 시간 자고 다시 일터로 나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였으며, 주말에도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자기 권리를 찾고 주장하다 보면 결국 조직생활에서 도태되고 마는 식이었으니 모든 사회가 다 그런 분위기였다. 요즘에는 많이 바뀌었고 정부에서도 주 52시간 법제화 같은 제도를 마련하여 뒷받침하고 있다 하니 '저녁이 있는 삶'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삶의 질을 논할 때 최근 중요시하게 언급되는 용어 중에 '워라벨'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일과 생활의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개인의 삶의 질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연봉을 받더라도 개인의 삶과 시간이 보장되지 못할 경우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 때 미국이나 서양사회의 모습을 동경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가족과의 삶, 그것은 결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된다.

미국에서 가족과 같이 저녁을 하는 일은 쉽고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밖에 나가 저녁을 먹기가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 중심적인 사회다. 한국에서 갓 미국에 와 살 때 가장 생경했던 점이 밤만 되면 대도시 일부를 제외하면 나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적막한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중년까지 살다 온 남성들 입장에서는 미국이란 사회가 도대체 재미가 없고 따분하기 그지없다는 불평이 나올만하다. 오죽하면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비록 '재미없는 천국'일지라도 한국 사회에서 그토록 갈망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며 오늘도 하루 일과를 잘 마치고 다가올 저녁을 기다린다.


송 훈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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