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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잘 살아!"

얼마 전 동료 목사의 딸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오래전 한 교회에서 같이 사역할 때 보았던 그 목사의 어린 딸이 이제 시집갈 때가 되어 가정을 꾸린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토요일 오후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는 하객으로 가득했다. 신부의 아버지가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이다 보니 온 교인이 정성으로 잔치를 준비해서 손님을 맞는 듯했다. 정갈한 장식을 한 예배당에 양가 어머니가 화촉에 불을 밝히고, 화동이 들어오고, 들러리가 입장할 때만 해도 여느 결혼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얀 웨딩드레스에 한 손엔 고운 부케를 들고 다른 손으로 아버지의 팔을 살포시 붙잡고 사뿐히 걸어들어오는 딸을 바라보는 신부 아버지의 눈빛에 담긴 애틋함을 보았을 때 내 마음도 무너졌다.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딸은 아직 고등학생인데' 잠시나마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애잔한 모습을 그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신랑 신부가 동부에서 공부할 때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 목사는 주례사를 하기 전에 신부 아버지를 나오라고 하더니 영어로 하는 자신의 주례사를 한국어로 통역해달라고 부탁했다.

주례자는 신랑과 신부가 사귀면서 겪은 몇 가지 이야기에 사랑에 관한 일반적인 권면으로 주례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통역하겠다고 앞에 나와 서 있는 신부 아버지는 통역할 생각을 안 하고 고개만 끄떡이며 주례사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간의 주례사가 끝나자 신부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은 통역(Translation) 대신에 해석(Interpretation)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는 오늘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로 영어로 한 주례사를 한국어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첫째는 교회 잘 다니고, 둘째는 부모님께 잘하고, 셋째는 부모님께 용돈도 많이 드리고, 넷째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자주 안부 전화 드리라고 했다. 신부 아버지의 해석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하객들의 웃음도 점점 커졌다. 주례사에 나온 내용이 아니라 신부 아버지의 개인적인 바람을 말했기 때문이다.

신부 아버지는 결국 오늘 주례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잘 살아!"라는 말이라고 소리치고는 자리에 앉아버렸다. '주례사 전체를 통역하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밥은 언제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짧고 재치 있는 주례 해석이 큰 박수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한 가정이 탄생하는 자리에 증인으로 참석해서 축복하고 돌아오는데 신부 아버지가 소리쳤던 "잘 살아!"라는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신부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밤이 새도록 해도 못다 할 말은 그저 속으로 삭이고 "잘 살아!"라는 말에 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소리쳤을 것이다. "잘 살아!"라는 말은 시집가는 딸에게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말이 아니겠는가? 하루하루 삶에 지친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사랑의 말 한마디를 이렇게 건네보자. "잘 살아!"라고 말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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