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검은 피부의 슬픔

버스나 메트로 열차를 이용할 때 흑인이 앉아있는 좌석 옆 자리가 비어있어도 선뜻 앉기를 주저하는 나를 보고 나 자신도 놀란다.

론 데이비드는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흑인 청년이다. 왜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걸작이다. 300년 전 자기 조상이 노예로 잡혀와서 죽도록 매 맞고 일했기 때문에 자기들은 일을 하기 싫단다. 흑인들이 놀고먹어도 백인들이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단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인가.

광대한 신대륙을 개척하려고 노예로 잡아와 개처럼 부려먹은 백인들은 론의 말처럼 흑인을 평생 먹여 살려야 하는 무한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자기 피부가 검기 때문에 밝은 세상을 보기보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세상이 마음 편해진다고도 한다. 자신은 검은데 바깥 세상은 온통 환하게 보이면 피부에서 오는 열등감이 배가 되어 불편하다는 깊은 고뇌가 깃든 말인 듯하다. 그에게 검은 피부로 태어난다는 것은 극복될 수 없는 천형 같은 아픔인 것이다. 백인사회로부터 받은 냉대와 멸시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다고 하는데 무슨 연유로 백인, 흑인, 동양인을 차별하여 만드셨을까. 답답한 마음이다.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하느님이 백인은 덜 구어 하얗게 됐고, 흑인은 너무 구워 검게 태웠고, 동양인은 알맞게 잘 구어진 최상의 걸작품이라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왜, 무엇 때문에 인간을 유색인종으로 만들어 인간들의 삶을 힘들게 하셨는지 알 길이 없으나, 성경이 주장하는 창조론이라는 것이 어린아이 소꿉놀이 장난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중생을 구원하러 예수가 다시 오셔서, 부디 차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시기를 간곡히 기구해본다. 아멘.

이산하 / 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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