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에어] 왜 '어린 영웅'의 희생만 강요하는가

"꼼짝 말라고 하자마자 켄드릭이 총격범에게 달려들었어요." 지난 7일 콜로라도 주 하이랜드 랜치 스템스쿨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현장에 있던 여학생의 증언이다. 이 학생은 켄드릭 덕분에 다른 학생들이 몸을 숨길 시간을 벌 수 있었다며 울먹였다.

경찰은 켄드릭 카스티요의 희생이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카스티요는 이날 벌어진 총격 사건의 유일한 희생자다. 총격은 20년 전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컬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이 발생한 학교와 불과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교실에 들어온 총격범은 권총을 꺼내 학생들을 향해 총을 쐈다. 긴박한 순간 카스티요는 총격범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학생 몇명도 그를 도왔다. 총격범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카스티요는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졸업을 사흘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앞서 일주일 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봄 학기 마지막 인류학 수업 강의실에 총격범이 난입해 권총을 쐈다.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경찰은 숨진 학생 중 한 명인 라일리 하웰이 위급한 순간 총격범을 제압해 더 큰 참사를 막았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서만 미국에서 15건의 학교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와 학생을 대상으로 위협을 가해 학교가 폐쇄되는 일도 다반사다. 학교에서 총격을 벌이는 총격범의 대부분은 10대 학생이다. 스템스쿨의 한 6학년 남학생의 인터뷰는 미국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12살 앳된 얼굴을 한 네이트는 총격 당시 야구 방망이를 손에 꼭 쥐고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총격범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에 인터뷰를 진행하던 앵커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가 없다고 탄식한다. 총기규제 법안 강화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교사에게도 무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총격사건 기사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템스쿨 총격사건 기사를 또 다뤄야 했다. 언론에 공개된 사진 속에 담긴 총격에 희생된 학생들의 선한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해군에 입대하길 소망했던 하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턴사원으로 일하던 카스티요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자식의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부모의 슬픔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CNN방송은 일주일 동안 두 명의 학생이 '영웅'이 되어야만 했다고 보도했다. CNN 앵커 크리스 쿠오모는 하웰과 카스티요는 총격의 순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몸을 던져 다른 생명을 구했다. 그 시간, 정작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와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카스티요를 추모하기 위해 열린 행사에 정치인들이 마이크를 잡자 학생들이 퇴장했다. 현지언론은 총격 사건 희생자 추모행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학생들이 자리를 떴다고 보도했다.

'영웅'의 사전적 의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보통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어린 영웅'이 아닌,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어린 영웅의 희생을 막아 줄 '어른 영웅'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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