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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극단에서는 '적당'이 안 보인다

누군가 지나치며 한마디 한다. "거, 좀 적당히 해. 그러다 몸 망가질라."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묘해진다. '씩' 웃어넘기고 말지만 왠지 그 말이 주는 뉘앙스가 머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적당(適當)이라!' 정규 업무가 끝나고 뭔가 할 일이 있어 자리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 보면 십중팔구 듣게 되는 그 말. 적합하고, 마땅하다는 말이 뭉쳐 때나 상황에 매우 어울림을 뜻하니, 분명 퇴근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것도 적당하지는 않을 일이다.

그런데,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아야 할 '적당'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는 쉬 가늠이 어렵다. 사람마다 사안마다 적당의 수준이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초래되는 불상사가 얼마나 많던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우의 이념문제는 어떤가.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이후, 공화파(왼쪽)와 왕당파(오른쪽)의 자리배치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개되는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개념은 '극진'과 '극보'로 확대돼 다시 '좌빨 혹은 공산주의자' 그리고 다른 쪽은 '수구 꼴통, 반동분자'로 불리지 않는가.



사회발전을 급진적 변화 시각에서 볼 것인가, 점진적 개혁을 통해 이룰 것이냐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집단행동으로 표출되면서 대다수는 어디에도 발 담그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곤 한다. 서구철학에서 기인한 진보·좌파는 평등과 복지, 분배를 중시하고 보수·우파는 자유와 개인차를 인정하는 경쟁을 중시한다.

하지만,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문제에 일방통행일 수는 없다. 공산주의 국가도 자본(자유)주의 국가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안정을 위해서는 '적당'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크든 작든 조직이나 국가의 정책이 어느 한쪽만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진보를 표방한다면 부족한 논리를 보수에서 차용하게 되고, 보수 역시 진보의 변화가 어느 시점에서는 정체를 헤쳐나갈 유용한 이념적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나 노무현·문재인 정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무도 빨리 '빨갱이' '파랭이'로 구분돼 버린다.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똑같다. 고성의 욕설에 주먹다짐도 발생한다.

매일 LA한인타운으로 출·퇴근하면서 '버몬트 길에 걸린 커다란 빌보드'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정농단, 촛불혁명, 태극기집회, 미르재단, 부정 입학, 공권력 남용, 태블릿PC, 세월호, 탄핵과 하야 등등. 그 많은 단어들이 담긴 사건의 내용은 '온당'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특히, 왼쪽 자리에서 저 멀리 오른쪽까지 쳐다볼라 치면, 거기엔 온통 '반동'들만 있겠다. 반대입장에서 본다면 다른 쪽엔 온통 빨간색만도 보일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중간지점을 바라보는 것도 벅찰 텐데 생각의 날개는 더 멀리 날고 만다.

이념엔 중간이 없다고 하지만, 행동은 절제할 수 있다.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두렵고 무서움이 있기에 실행은 더디게 마련이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서 갑작스러움보다는 인지할 수 있는 변화에 평온을 찾게 된다.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은 끊임없이 마주하며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극단에서는 적당히 잘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김문호 /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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