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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의 미래를 실리콘밸리에서 찾다

'세계 10대 혁신 뷰티기업' 미미박스에 가보니

판교 미미박스 9층 사무실 입구엔 '성장'과 관련한 글귀가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벼락치기' 'sold out'은 회의실.

판교 미미박스 9층 사무실 입구엔 '성장'과 관련한 글귀가 적혀 있다. 왼쪽 아래의 '벼락치기' 'sold out'은 회의실.

2012년 3500만원으로 시작
IT 요람 실리콘밸리에 터전
1억9050억 달러 글로벌 투자
뷰티·데이터 접목에 러브콜


미국 신예 스타 정치인의 K뷰티 사랑이 올 초 세계적 화제를 뿌렸다. 2018년 역대 최연소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연방 하원의원(29·민주당)이 지난 1월 "한국의 피부관리 방법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짧은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린 덕분이다. 수십만 명이 이 포스팅을 봤고 미국을 넘어 영국 가디언의 '한국식 화장법' 특집 기사로 이어졌다.

K뷰티는 요즘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뭔가 아쉽다. 'K뷰티'라는 글로벌 인지도에 비해 개별 브랜드 파워는 한참 못 미쳐서다. 마치 BTS나 트와이스 없는 K팝이라고나 할까.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매출 6조 원이 넘는 뷰티기업이 버티고 있고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같은 화장품전문제조업체(ODM)가 속속 (매출) 1조 클럽에 합류할 정도로 화장품 제조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마켓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뷰티시장인 미국에서는 여전히 유럽은 물론 일본 기업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경영 매체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뷰티 기업 톱 10'에 '미미박스'가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의 세계 최대 뷰티 유통기업인 '세포라'와 함께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것이다. 지난해 10월엔 실리콘 밸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가 선정한 '2018년 가장 가치 있는 100대 기업'(투자한 1900여 개 기업 대상)에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글로벌 혁신기업들에 이어 26위에 오르기도 했다. 뷰티 기업으론 단연 1위였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인 하형석 대표. 글로벌 전역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동영상에 출연한다. [본인제공]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인 하형석 대표. 글로벌 전역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직접 동영상에 출연한다. [본인제공]

미미박스? 맞다. 2012년 자본금 3500만 원짜리 화장품 구독 서비스 회사로 출발해 이젠 '아임미미' 등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거느린 e커머스 기업으로 거듭난 바로 그 미미박스 말이다. 한국에서조차 아직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이 생소한 기업이 어떻게 쟁쟁한 국내외 경쟁자들을 제치고 미국에서 먼저 주목을 받게 됐을까. 또 존슨앤존슨 계열 벤처캐피털(VC)인 JJDC와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을 비롯해 쟁쟁한 VC들이 지난 5년 새 앞다퉈 1억9050만 달러나 투자한 이유는 뭘까.

그 답을 얻으려고 4월 초 미미박스 한국 본사를 가봤다. 뷰티산업 중심지인 서울 강남이 아니라 IT기업의 심장부 판교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2014년 일찌감치 진출한 미국에서도 뷰티산업 중심지인 뉴욕이나 LA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뒀다.

네 면 모두 유리라 시야가 탁 트인 10층의 한 회의실에 앉자마자 한우람 HR(인사) 리더가 "무슨 차를 마시겠느냐"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타벅스에서 모바일로 주문하듯이 회의실 바로 밖에 있는 사내 카페에 차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400만 회원을 둔 미미박스 국내 인터넷 쇼핑몰과 연동된 결제 서비스다. 직원 200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공간인 9층에선 정작 화장품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 반면 제품별 판매량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는 한 눈에 들어왔다.

사무공간은 IT기업 특유의 수평적 배치다. 대표 집무실이 별도로 있기는커녕 대표를 포함해 모든 부서장은 창문에서 가장 먼 바깥 자리에 파티션 없이 나란히 앉는다.

패스트 컴퍼니가 미미박스를 혁신기업에 선정하면서 밝힌 '데이터와 기술을 융합한 서비스로 뷰티산업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선정 이유가 과연 뭘 얘기하는지 어렴풋이나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회사의 핵심 키워드는 '마케팅'이 아니라 '데이터'다. 전체 직원 가운데 20%를 개발자로 채우고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책까지 뒀다.

그리고 실제로 데이터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지난해 세포라와 협업해서 미국 시장에 내놓은 자체 색조 화장품 브랜드 '카자'가 대표적이다. 미미박스는 세포라가 보유한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과 6개월 만에 47개 제품을 만들어내 전 세계 뷰티업계를 놀래켰다. 통상 기획에서 출시까지 짧아도 18개월 길게는 3년 이상 걸린다는 게 이 업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세포라의 풍성한 데이터에 미미박스의 데이터 활용 능력이 더해져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창업자 하형석(36) 대표는 이 과정을 "지도를 보고 따라간 길"이라고 표현했다. 고객 니즈는 있는데 기존 브랜드가 채워주지 못한 빈 곳을 정확히 알고 찾아갔다는 의미다. 고객이 원하는 콘셉트와 가격대의 제품을 요즘 미국에서 뜨고 있는 K뷰티로 포장해 재빨리 내놓았으니 반응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온라인 판매 성과가 놀랄 만큼 뛰어나 올해는 색조에 이어 스킨케어 브랜드도 내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미미박스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보다 더 큰 매출을 올렸다.

한국 뷰티업계에선 큰 기업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18년에서야 디지털전략 유닛(부문)과 디지털 기술개발 디비전(사업부)를 신설했다.

미미박스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은 것도 또 하 대표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근무하는 것도 이처럼 기존의 업계 강자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대표가 현지에서 직접 데이터를 더 많이 배우고 이를 토대로 시장을 개척하는 게 경쟁사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 대표는 "미국에서 이룬 성과가 하나둘 알려지면서 '어떻게 하면 미국 진출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며 "내 답은 '미국 진출을 하려면 미국에 가야 한다'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말했다. 하 대표 스스로가 정말로 그랬다. 지난 2014년 한국 스타트업으로선 처음으로 와이컴비네이터(YC) 선택을 받았을 때 무작정 미국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두드렸다. 구글에서 데이터를 받고 싶으면 링크드인에서 구글 담당자 연락처를 찾아 "당신네가 데이터에 기반해 내놓는 가정을 시장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요구를 관철시켰다.

하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머물며 매일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매일 밤 11~12시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 제품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그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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