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미개했던 색, '세계를 품다'

색의 해석 1)파란색

다른 모든 색을 뛰어넘는 빛나고 아름답고 완벽한 색.
어느 누구도 이 색에 대해 말할 수 없고,
이것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색의 질은 여전히 독보적으로 뛰어나다.
―첸니노 첸니니, ‘예술의 서 Il libro dell’arte(1400경)’에서

바람의 색은 무엇인가. 따뜻한 날씨의 색은 무엇인가. 사랑의 색은 무엇인가. 색(色ㆍColor)은 물체 고유의 성질이 아니다. 빛이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시각계통에서 감지하는 성질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감각적 특성이다. 즉 눈과 뇌에서 느끼는 합성된 주관적 감각. 그래서 우리는 같은 색이라고 느끼는 색을 보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색을 본다. 색이 범람하는 캘리포니아. 색은 감성과 지성, 열정과 이성을 매혹시킨다. 또 색은 의미를 만들어 전달함은 물론 분류, 동화, 대립, 계층화를 통해 사회적 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일정 역할을 담당해 왔고 인간의 정서적 감흥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색을 몇 차례에 나눠 해석해 본다. 그 첫 번째는 지구의 색깔 -보이저 1호가 우주를 항해하다 잠깐 뒤돌아보고 촬영한-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던 파란색이다.

◇피카소의 마지막 주문

사진가이자 작가인 브라사이는 1943년 11월 파리에서 피카소의 물감 공급상을 만나서 흰 종이에 쓰인 피카소의 친필 서한을 건네받았다. 브라사이가 기록에 남겼듯 '처음에는 시(詩)인 줄 알았지만', 곧 피카소의 마지막 물감 주문서임을 알아차렸다. '퍼머넌트 화이트'와 '실버 화이트' 바로 밑의 세 번째 색이 바로 '세룰리안 블루'였다. 세룰리안 블루는 영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색이다. 크리슈나, 시바, 라마를 포함한 힌두교 신들의 피부색은 영원과의 친밀함을 상징하기 위한 파란색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배우 톰 크루즈로 대표되는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 건물들은 대부분 세룰리안으로 칠해져 있다.

1901년 2월 17일, 스페인의 시인이자 화가인 카를로스 카사헤마스는 몽마르트르 근처의 새 카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말고 총을 꺼내어 정수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그의 친구들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슬퍼했는데, 특히 파블로 피카소의 증세가 가장 심했다. 그는 6년 전 동생이 디프테리아로 죽어가는 과정을 목도한 슬픔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피카소는 체념, 절망 같은 상태의 궁핍한 인물상을 묘사하면서 1901~04년에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슬픔과 상실을 표현하기 위해 피카소는 단 한 가지의 색, 파란색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렸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난 파란색이 없으면, 빨간색을 쓴다.(When I haven't any blue, I use red)"

대접받지 못한 색

LA의 색깔
남성의 색깔?
식욕 감퇴 효과
블루 라이트
◇대접받지 못한 색

인류 최초의 회화인 동굴벽화에는 검정, 빨강, 갈색 그리고 황토색과 흰색들이 사용이 되었는데 파란색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몇천 년의 세월이 지나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빨강과 노랑을 직물염색에 이용하였지만 여전히 파란색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았다. 고대로부터 중세 초까지 파란색은 유럽의 역사에서 대접받지 못했던 불우한 색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푸대접받았던 색으로 특히 고대 로마 등에서는 파란색을 색 취급하지도 않았다. 어둡고 미개하며 세련되지 않은 색으로 인식하여 파란색 옷은 품위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제국 초기에는 장례 의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무지개에서도 파란색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이렇듯 파란색은 궁정이나 귀족들에게 외면당한 낮은 계층의 색이었고 이런 현상은 12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파란색을 의미하는 'Blue'는 13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다. 이때 이르러 파란색은 아름답고 우아하며 귀족적이고 신성한 색으로 교회와 일반 사회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중세를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LA의 색깔

날씨 좋은 LA는 하늘이 압권이다. 다른 대도시에서는 사실상 하늘의 커다란 반원을 볼 수 없다. 빌딩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A는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이어지는 둥그런 하늘의 반원을 통째로 볼 수 있다. 그것도 선명한 파란색으로.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LA다저스 토미 라소다 전 감독은 은퇴식에서 말했다. 다저스의 색은 파란색이다. 중요한 경기 때에는 경기장에서 파란 손수건이 넘실댄다. 파란색은 다저스이고, 그래서 LA는 파란색이다.

◇남성의 색깔?

파란색은 남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통하지만 본디 동양권에서 태극의 파란색은 음양 중 음, 즉 여자와 연계되며 과거에는 여성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또한 아주 옛날에는 서양권에서도 파란 드레스가 유행했던 적인 있었던 것을 본다면 여성스러운 느낌을 띨 때도 있었으니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1940년대까지는 남자 아기를 위해서는 분홍색의 옷을, 여자 아기를 위해서는 파란색의 옷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유행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분홍을 좀 더 '결단력이 있는' 색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남자 아기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에 파랑은 좀 더 '우아한' 색이어서 여자 아이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분홍이 여자 아이와, 파랑이 남자 아이와 동일시되는 지금의 관례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왜 지금은 1940년대 이전과는 색깔을 반대로 사용하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동성애자들을 낙인찍기 위해 나치가 분홍색을 사용한 것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분홍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동성애자들과 취향이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홍색을 남자답지 못하고 유약한 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195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분홍색 품목은 여아를 위한 것이었고 파란색 품목은 남아를 위한 것이었다. 만약 아이의 성별에 확신이 없을 때는 아기 물품으로 연한 초록이나 노란색을 선택하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색깔 선택은 현대적 마케팅의 결과이다. 즉, 이불에서 슬리퍼, 유모차에 이르기까지 성별만으로 색깔이 구분되는 수많은 물품이 도처에 널려 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분홍, 그리고 남자아이는 파랑이라고 결정하는 것에는 사실상 성별에 기초한 색깔의 편견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문화적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중국계를 포함한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서는 여성들이 따뜻하며 붉은 계통의 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학자들에 따르면 여성들의 눈은 이러한 붉은 계통의 색을 더 잘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성들은 수세기 동안 잘 익은 열매나 딸기 같이 작은 과실을 채집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아기가 병에 걸린 것의 여부를 알아 차리기 위해서 아기의 볼이 붉게 상기된 것을 세심하게 관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의 색에 대한 가장 최근의 유행은 아기와 어린 아이에게 성에 대한 구별을 하지 않고 보다 밝은 색깔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파랑과 초록색은 남자아이 스타일로, 빨강과 보라색은 여자아이 스타일로 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선호 1위 색

바다와 하늘의 색이라 쾌적하고 상쾌한 분위기의 은유로 자주 활용되며,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의 국기 바탕색이 파란색이다. 파란색은 유럽인과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 1순위이기도 하며, 때문에 유럽 연합 깃발의 배경색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개개인 선호도를 따졌을 때도 거의 상당수의 나라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깔 1위는 파란색이 꼽힌다. 파란색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보수주의, 우파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냉전기에는 공산진영과 대립하는 자유진영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쓰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좌파나 진보를 뜻한다.

◇식욕 감퇴 효과

파란색 계통으로 도배된 방에 있으면 시간이 실제보다 천천히 간다고 느낀다는 연구가 있다. 20분 앉아 있었는데 10분이 지난 거 같이 느낀다고 하기 때문에 공부방을 파란색으로 인테리어 한다면 좋을 수도 있다. 또 식욕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사람이 먹는 음식 중에서는 인공 색소를 넣은 음식을 제외하면 파란 음식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픽 작업하는 사람에게 있어 예쁜 파란색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파란색은 다소 다루기 어려운 편이기 때문인데, 하늘색과 남색의 구분하는 요소가 밝기의 차이가 아니라 파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하늘색과 밝은 남색은 아주 탁한 색이 되고 만다. 특히 출력용으로 CMYK 포맷으로 작업할 시 더욱 다루기 어려운 색이 된다. 당장 RGB 포맷 그림을 CMYK 포맷으로 변환해 봐도 파란색이 얼마나 심하게 변질되는지 알 수 있다.

◇블루 라이트

셀폰의 시대다. "전자기기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 라이트(청색광)이 정말 위험한가요?" 대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지 않다"이다. 스마트폰, TV, 노트북 등 전자기기의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 라이트는 그 양이 적다. 즉 망막이나 눈의 다른 부위에 위험하지 않다. 블루 라이트는 400~450나노미터의 파장을 갖는 파란색 계열의 가시광선이다. 이름 그대로 푸른빛을 띠지만, 흰색이나 다른 색 광선에도 포함돼 있다.

블루 라이트가 위험한 건 녹색이나 적색 등 다른 빛 광선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블루 라이트(용접 등)는 눈은 물론 신체의 다른 세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LED를 쓰는 화면에서도 블루 라이트가 나온다. 특히 화면을 흰색으로 만들 때 블루 라이트를 가장 많이 방출한다. 일반적인 기기의 블루 라이트는 눈을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이처럼 전자 기기의 블루 라이트는 눈에 크게 해롭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수면이다. 생체 시계를 교란, 수면 리듬을 흩뜨린다. 요컨대 스마트폰 화면의 블루 라이트는 망막을 망가뜨릴 위험은 크지 않지만, 수면 리듬을 깨뜨릴 가능성은 크다.

사회부 김석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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