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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현대건설 60년 영욕-23] 정주영 '후발업체에 기술 줘라'

경부고속도로 건설사 중 유일한 시공경험…박대통령 '시범 보여라'

당재터널이라는 최대 난공사를 앞두고 현대건설이 보여준 변화는 건설장비의 현대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고속도로라는 것이 어떻게 건설되어야 하는가라는 가장 기초적인 의문의 해답에서부터 공법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의 모델이었다.

국제시방서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규격과 장비 사용법 어쩌면 감추려고 하는 노하우지만 현대건설은 타 건설사에 이를 전수해 우리 건설산업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정주영 회장의 기업철학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술은 항상 진화하기 때문에 정 회장은 늘 후발업체들에 아낌없이 주라고 했다. 삼성중공업을 만들 때 현대중공업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해가라고 했듯이 그렇게 강조해 왔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철저히 막으려 했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660만㎡를 1달러에 줄 테니 오라고 해도 해외에 조선소를 만드는 것은 기술유출과 일자리 창출을 막는 일이라면서 엄청난 이익의 유혹을 거부하고 군산에 제3의 기지를 만든 것은 정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고속도로 건설 시공기술을 경험 없는 다른 업체에 전수한 것부터 평소의 기업철학을 실천한 것임에 틀림 없었다. 정 회장은 생전에 시공기술 이전에 대해 선발 업체로서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KBS의 좌담 프로에 나간 적이 있어요. 그때도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할 때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경부는 맨 첫 구간이 서울 양재동에서 출발하는 서울~수원 구간 아니에요?

그걸 박정희 대통령께서 수의계약으로 맡길 테니 시범적으로 건설을 해 보이라는 거예요. 그게 38.6km예요. 아이들 생일은 잊어버려도 경부고속도로 첫 구간은 잊을 수가 없어 하하항.

그때부터 권기태하고 이기창이 김광명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지프로 달려보고 노선에 대한 가설계도를 그려보고 박 대통령하고는 군용 헬기를 타고 전 구간을 수없이 다니고 걷기도 하면서 노선을 잡았어요.

그걸 2월 초하룻날 시작해서 눈이 펄펄 내리는 12월 21일 박 대통령 모시고 3부 요인들과 개통식을 하지 않았어요? 근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박 대통령께서 시범을 보여주라는 말씀이에요. 그 말씀이 나를 알고 계신다는 뜻이거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 회장은 혼자만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 말씀이야. 가르쳐주라는 거지."

-대통령께서 국내 건설업체들의 경험이 일천하다는 실상을 알고 계셨던 셈이군요.

"그 어른이야 아는 정도가 아니라 꿰뚫어보고 계셨지요. 다른 업체들은 고속도로를 건설한 경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다 이거예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고속도로를 구경이나 했겠어? 달려본 경험도 없었을 거야.

그러니 우리 보고 시범적으로 하라는 거지. 근데 기술은 절대 영원히 혼자만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특허법이라는 것도 한시적인 거예요. 첫 개발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건 공감되는 얘기니까 30년이든 50년이든 보호를 해야 하지만 한시적이야.

그래가지고 우리가 수원공구를 할 때 거기가 모델 시공구간인 셈이니까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하는 건설업체 기술자들을 전부 보라고 공개 공사를 했어. 그놈 자식들 우리 현대 점심을 공짜로 다 얻어먹으면서 배웠어 하하항. 그게 기술 전수예요.

나중에는 우리 공구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데려가도 좋다고 했더니 얼마 후에 보니까 시공기술이 고속도로 달리는 것보다 빨리 전수되고 전파가 되는 거야. 그러고 그걸 어디서 들으셨는지 박 대통령이 얼마나 좋아하시든지 말이야 정 회장은 그럴 줄 알았다고 말이지 하하항."

어쨌든 현대건설이 보여준 건설장비 현대화는 고속도로 조기 완공도 가능하게 했지만 한국의 건설산업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됐지만 중기공장을 키우고 현대건설 자산보다 더 많은 자금을 들여 최신 장비를 구입하도록 한 정 회장의 안목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서빙고 중기공장 시절을 이명박 전 회장은 솔직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최신 장비를 들여오기 전까지는 중기공장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그때 내가 태국에서 3년 만에 돌아와 관리과장 발령을 받고 서빙고로 가니까 처음부터 장비 수입을 맡으라고 명령이 떨어졌는데 그 당시 김영주 회장께서 관악담당 중역이었지만 서빙고 공장이라는 게 원효로에서 크게 확장한다고 해서 옮겨왔는데도 장비라고는 한 서너 대밖에 없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전부 수입해야 된다고 해서 최신 장비 카탈로그를 봤더니 물론 그것도 달러가 귀한 시절 아니에요? 건설부가 필요한 장비에 대해 범위를 정해줬다고. 아무거나 수입이 되는 게 아니고.

그 범위 내에서 우리가 직접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의 제조회사들을 접촉하고 구매협상을 해야 하는 건데 서류를 보니 전부 영문으로 되어 있고 또 부속품도 계속해서 정규적으로 수입을 해야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엄청 큰 작업이고 중요한 거예요.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는 장비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영어만 잘한다고 장비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랬다고요.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장비를 알아야 되는 거지. 근데 그 당시에 영어도 영어지만 해외에서 최신 장비를 본 직원이 별로 없잖아요.

내가 그나마 서빙고로 발령이 난 것도 외국 가서 장비 구경도 하고 태국 고속도로에서 경리 일을 봤지만 시간만 나면 공사하는 그 부근에서 얼쩡거렸던 경험이 있으니까 회사 내에서 의논하다가 내가 적임이라고 그랬던 것 같애 허허헝.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거기(서빙고) 가면 출세한다고 그랬지만 중역들이 천생 나밖에 보낼 사람이 없다고 그랬던 거야. 장비를 구입하고 부속품을 계속 들여오자면 그건 무역을 알아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소위 대학 나오고 무역도 공부를 해서 좀 아는 고급간부가 하나 필요했던 거지.

그땐 장비 가지고 돈을 번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고 경부고속도로에 전부 투입될 거니까 대한민국의 큰 산업역군으로서 일한다 큰 애국자가 되어서 일한다 신발을 벗고 자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니까 진짜 장비도 애국하는 거예요. 그런 사명감으로 꽉 차 있으니 장비도 대충 구입해서 될 일이 아니었던 거지." 〈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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