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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ㆍ낭만의 도시가 각박한 대기업 도시로

시애틀

윈도우 바탕화면 사진으로 유명한 프레몬트. Gas Works Park에서 바라본 시애틀 스카이라인.

윈도우 바탕화면 사진으로 유명한 프레몬트. Gas Works Park에서 바라본 시애틀 스카이라인.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땅을 사고싶다는 제안을 보내왔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들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있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인가?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밝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우리에게는 이땅의 모든것이 신성하고 거룩한 것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조랑말과 인간, 모두가 한 가족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대지가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1854년 당시 워싱턴주 스콰미시(Squamish) 인디언 추장 시애틀(Seattle)이 땅을 팔라는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크린 피어스에게 보낸 답장 편지 내용이다.

대지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고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는 인디언들의 믿음을 얘기하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핑계로 자연파괴를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일깨워주는 글이다. 시애틀 추장의 글에 감동한 피어스 대통령이 그 지역을 시애틀이라고 명명했다.

이번 가을을 천혜의 자연을 가진 워싱턴주에서 지냈다. 특히 태평양 바다에서 깊숙이 들어와 많은 섬과 반도가 있는 100여 마일의 퓨젯 사운드(Puget Sound)만의 절경에 취해 지냈다.



퓨젯 사운드 만을 끼고 시애틀이 있다. 이 만 주변은 워싱턴주의 핵심으로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산다.

워싱턴 주립대학이 있는 프레몬트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는 상당히 자유스럽고 진취적이다.

워싱턴 주립대학이 있는 프레몬트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는 상당히 자유스럽고 진취적이다.

서부 워싱턴주를 남북으로 잇는 5번 인터스테이트를 이용해 캐나다 밴쿠버부터 시애틀, 올림피아, 타코마를 오르내렸다.

근래 몇 년 사이 보잉은 물론 아마존, 홀푸드, 코스트코,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쟁쟁한 글로벌 대기업들이 시애틀에 둥지를 틀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약 20% 이상 증가했다.

인구 387만 명의 시애틀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가장 잘사는 도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잘나가는 도시가 됐다.

아마존 같은 우량 기업의 성장으로 도시가 발전한 시애틀은 철강, 자동차산업이 무너져 도심이 폐허가된 디트로이트와 대조를 이룬다. 도시에도 흥망성쇠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시애틀 광역권을 비롯해 워싱턴주 소도시들까지 흥청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잘 나가는 시애틀의 이면에는 집값이 비싼 도시, 빈부 격차가 심각한 물가 높은 도시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시애틀 지역은 지난 2년간 미국 대도시 가운데 집값 상승세 1위 자리를 지켰다.

시애틀 부동산 임대료는 2010년 이후 70% 이상 치솟았고 주택 평균가격은 두 배 이상 뛰었다.

고소득자와 고급 주택이 많아지면서 원주민들은 치솟는 집값과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터전을 잃고 밀려나거나 노숙자로 전락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애틀은 뉴욕, LA, 시카고 등 대도시를 운전하고 다녀본 경험으로도 어느 곳보다 교통체증이 심했다. 시애틀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주요도로인 5번 프리웨이와 주변을 잇는 간선도로들은 최대교통허용치를 넘긴 지 오래된 것 같다.

지난 9월 오리건주 서북쪽 끝 아스토리아에서 워싱턴주 북서쪽에 있는 라코너(La Conner)까지 270마일 거리를 8시간 이나 걸려 도착했다.

시애틀 도심지역을 지나는 길은 평일임에도 LA의 추수감사절 전야 할리우드 프리웨이나 405번 프리웨이 선셋 구간 못지 않았다. 시애틀 다운타운 스페이스 니들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해 시애틀 동쪽 35마일 떨어진 폴시티(Fall City) RV캠핑장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됐다.

미국 대기업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다.

시애틀 인근 신흥주택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그저그런 일식집에서 도시락을 주문했다. LA 한인타운에서 20달러 정도하는 도시락이 경악스럽게도 50달러 가까이 했다. 도시락이 50달러라니 식사를 하는 내내 지인에게 죄스러웠다.

벌이가 좋은 일부는 당연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다.

중산층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도시가 어쩌면 시애틀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자연에 어울어지는 예술과 음악, 훈훈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낭만적인 도시 시애틀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탐욕스럽고 각박한 악몽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빈부 격차와 무분별한 도시팽창은 시애틀은 물론 미국 경제와 사회 전반의 발목을 붙잡을 거라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신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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