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교수 할머니가 떠나간 빈 집

학교 길이 보이는 동네에 살며 서른 번의 봄이 지나갔다. 대부분 백인이 사는 이웃, 교육자들이 살고 있다. 그중 한 분은 집의 나이처럼 오십 년 넘게 살다간 건강학 여교수이다. 이제 빈집만 덜렁 남아있다.

지난여름, 대문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환자 배달 침대에 누워있었다. 집 주소가 우리 것과 비슷해 잘못 찾아 온 것이다. 몇 달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진 앙상한 그녀. 나를 알아본 할머니는 내 미국 이름을 부르며 웃으셨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할머니댁으로 응급환자 배달원들을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는 키다리 아들이 나를 반가워하며 어머니의 최근 건강상태를 횡설수설 설명했다.

평소 모자지간에 정이 없어 사무적으로 모시고 병원과 쇼핑을 갈 뿐이고 어머니도 함께 사는 걸 싫어했다. 물 한 컵을 달라던 부탁을 아들에게 전했을 때, 사기 컵의 물을 자기 엄마의 입에 거칠게 들이대던 아들의 태도. 낳아 길러준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며 빈정거리던 말들이 충격적이었다.

85세까지도 남편을 태우고 병원을 들락거리던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하며 삶을 버티었는데, 3년 전 영감이 떠난 후 지금은 시체처럼 누워계셨다.

내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분 딸의 배가 볼록 올라와 있어 물었더니 임신한 채 파혼했다고 했다. 손녀 출산한 후 일 년 후에는 또 다른 남자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어머니는 딸을 구박하지 않고 한 집에 데리고 살았다.

할머니 여교수님은 나의 첫 수필집을 만들 때 내 영어 글을 검사해 달라고 하니 끈기 있는 사람이라며 나를 격려해주기도 하셨다.

두 번째 구급차 요원들이 교수할머니를 모셔가더니 얼마 후엔 요양원으로 옮겨졌기에 그의 아들이랑 찾아갔다. 나를 본 할머니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가끔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그분을 뵙고 온 후 외로운 노후가 안쓰럽고 마음이 상해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교수 할머니는 최근 돌아가셨다. 이웃의 빈집 앞에 서서, 나는 멍하니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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