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배·비행기 조종할 때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던 까닭은

도구로 읽는 과학사 3. 해상시계

여러분의 집에는 얼마나 정밀한 지도가 있나요? 만약 그런 지도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지도를 가지고 항해를 떠날 수 있을 것 같나요? 물론 항해할 배에 GPS(위성항법장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과거엔 그러지 못했어요. 영화에서 돛을 단 거대한 범선이 등장할 때 해적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예요. 바닷길을 자유롭게 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 대부분 쉽고 정해진 길로만 다니다 보니, 그 길에 딱 맞춰 기다리는 해적들이 많았던 거죠. 해상 무역과 식민지 탐험이 활발했던 시기, 정밀한 항해를 위해 어떤 기구들이 개발되고 사용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지난 회 살펴봤던 시계의 활약이 이어진답니다.


정확한 방위와 위치의 결정
정확하고 정밀한 지도를 가지고 항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선결 요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자기편차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해요. 쉽게 말해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과 실제 북극의 차이가 얼마 정도 되는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침반을 사용하면 쉽게 북극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처음에는 항해사들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대략 12세기에 나침반이 사용된 기록이 있는데요. 당시 항해사들에게 항해 도구란 나침반과 모래시계 정도밖에 없었으니 무척이나 귀하게 여겨졌겠죠. 그런데 나침반을 가지고 항해하다 보니 엉뚱한 곳에 도착하는 거예요. 무척 당황스러웠던 항해사들은 특정 지점에서 실제 북극과 나침반의 북극이 얼마만큼 차이가 나는지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가령, 1604년에 자기 편차를 기록한 지도를 보면, 선과 함께 10, 20, -10, -20 같은 숫자들이 있어요. 10이라고 적힌 선을 따라가며 나침반을 보면 실제 북극과 10도의 차이가 나는 식이죠. 그런데 이 선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요. 실제 항해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할 수 있겠죠.




1750년경 쓰인 항해사들의 나침반.






자기편차만큼 어려웠던 건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결정하는 문제였어요. 지도에는 위도와 경도가 그려지고, 그 위에 각 지역이 표시되죠. 따라서 지도상의 한 위치와 실제 위치를 정확하게 대응시키기 위해서는 현 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정확하게 구해야 해요. 위도는 북극성과 태양을 이용해 구할 수 있는데요. 육지에서 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위도는 북극성을 이용할 경우, 수평선과 북극성이 이루는 각을 측정하면 돼요. 태양의 경우, 초기에는 ‘직각기(cross staff)’라는 기구를 이용해 지평선과 태양이 이루는 각도를 측정했어요. 이때 태양을 너무 오래 바라보는 게 문제였죠. 우리 눈은 태양을 20~30초만 바라봐도 실명에 이를 수 있어요. 눈이 렌즈 역할을 하므로 눈 안쪽에 화상을 입기 때문이에요. 이후 ‘역각기(back staff)’로 바뀌지만 그 역시 완전하진 못했죠. 더욱 정확한 관측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1700년 무렵부터 ‘육분의(sextant)’라는 기구가 개발돼 사용됩니다. 위도를 구하는 방법은 점점 더 수월해졌어요.



십자형으로 직각을 이루어 미끄러지는 두 개의 막대로 이루어진 직각기를 사용하는 모습. 가로대의 양 끝에 태양이나 별을 위치시켜, 일정한 간격으로 매겨진 눈금을 통해 둘 사이의 각도 차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도 측정은 가장 어려웠던 문제 중 하나였어요. 시간 선이기도 한 경도는 정확한 시계가 없으면 구하기 어려웠는데, 한참까지도 해상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시계 대신 사용되었던 것이 1514년에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베르너가 고안한 ‘월거(lunar distance)측정법’이에요. 지구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달은 1시간 동안 달의 지름과 비슷한 거리만큼 이동해요. 따라서 달 주변 항성들의 위치를 파악해 달의 운행 경로를 파악하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달의 운행 경로가 계속해서 바뀐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월거측정법을 포기할 순 없었죠. 각국은 왕립 천문대를 건설해 매일 밤 달을 관찰했어요.




피터 아피안의 ‘지리학 개론'(1532)의 권두화에는 직각기를 이용해 월거측정법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경도상 제정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시기 해상 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는 신대륙 탐험 이후 원거리 항해와 국제 무역이 활발해지던 때였으므로, 각국은 앞다투어 정확한 경도 측정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죠. 이런 가운데 1707년 21척의 전함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가 대규모 난파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이 사고로 1647명이 죽었죠. 최고 우위를 자랑하던 영국 함대가 전투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뒤 돌아오던 중 경도 측정의 오류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한 겁니다. 영국 의회는 무척 당황했죠.

그해 곧바로 경도 문제 해결을 위한 위원회가 설립되고, 논의를 거쳐 1714년에 경도상이 제정됐죠.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경도 오차를 55km 이내로 줄이는 이에게 현재 시가로 50억원에 이르는 상금이 걸렸습니다. 6주 동안 항해하면서 2분 이내의 오차로 줄이면 말이죠. 1673년 하위헌스가 진자시계를 고안해 육지에서 시간 측정은 더욱 정확해졌지만, 고정되어야 하는 진자시계가 흔들리는 배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5000원짜리 전자시계만 있어도 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당시에 그런 해상시계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존 해리슨이 1737~1740년 개발한 해상시계 H2.






그때 경도 문제 해결을 위한 해상시계 제작에 과감하게 뛰어든 시계공이 있었습니다. 존 해리슨은 6년간의 개발을 통해 1736년 실제 항해에서 해상시계 H1을 선보였죠. 중간중간 수리를 해야 했지만, 경도상의 기준을 만족시킬 만큼 훌륭하게 작동했어요. 하지만 해리슨은 더 훌륭한 시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시계 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요구한 그는 새로운 시계 제작에 나서 1740년 H2를 내놓고 심사를 요청했어요. 하지만 뭔가 이상한 조짐이 벌어졌어요. 경도위원회가 계속 심사를 미루며 결론을 내지 않았거든요. 결국, 해리슨은 세 번째 시계 제작에 몰두했죠. 19년의 세 번째 연구 기간에는 회중시계 역시 대형 시계보다 정확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H3와 함께 회중시계인 H4를 같이 만듭니다.

해리슨은 당당히 심사를 요구했죠. 하지만 경도상의 심사를 맡은 천문학자들의 생각은 달랐어요. 그들은 경도 계산을 위한 월거측정법을 완성하기 위해 매일 밤 천체 관측에 시간을 쏟았죠. 더욱이 천문대는 막대한 정부 예산으로 운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시계공이 경도 측정을 하겠다며 조그만 시계를 가지고 왔을 때, 천문학자들이 느꼈을 당혹감이 짐작되나요? 더욱이 그들은 해리슨이 시계를 만드는 동안 월거측정법을 이용한 경도 측정법의 완성에 거의 다가가 있었어요.



세 번째 해상시계 개발에 나선 존 해리슨은 1740년부터 1759년까지 19년 동안 두 개의 시계를 제작했다. 사진은 회중시계로 만들어진 H4.






자연히 심사는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했어요. 81일간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H4는 단 5초의 오차만을 보였지만, 심사위원들은 다시 심사받을 것을 요구했어요. 해리슨의 해상시계 설계도를 제출할 것도 요구했고요. 결국 심사위원이었던 천문학자 네빌매스컬린은 부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했고, 해리슨은 경도상을 받지 못했죠. 시간이 흐른 뒤 매스컬린은월거측정법을 사용해 1767년 <항해력 연감과 천문 추산>이라는 책자를 출판했어요. 비교적 저렴한 인쇄물을 통해 월거측정법은 19세기 중반까지 활용됐죠.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H4가 묻혀 있을 순 없었죠. 해리슨의 시계를 복제해 대량 생산하려는 시도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계속됩니다. 결국 18세기 말에 이르러 해상시계가 상업적으로 판매되죠.


비행기가 발명되면서 해상시계는 비행기 조종사와 항법사들에게도 필요한 기구가 되었어요. 그런데 비행 중에 계속해서 주머니 속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건 영 불편했죠. 비행사 산토스 뒤몽은 친구 루이 프랑소와 까르띠에에게 손목에 찰 수 있는 시계를 요청했어요. 그렇게 해서 까르띠에의 ‘산토스 뒤몽’ 시계가 탄생합니다. 친구 조종사의 이름을 딴 거죠. 현재에도 모양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출시되는 이 시계 중에는 1억원에 가까운 고가 제품도 있답니다. 시계란 게 참 놀랍죠.

글=조수남 과학사학자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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