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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의 역설…'살인한파' 더 자주 온다

진단 : '동부 한파' 왜 일어났나

빛 반사하는 얼음·눈 녹으며 '변화 속도' 빨라져
민주당 온실가스 제로 선언 '대선 이슈' 급부상

미네소타 영하 66도(섭씨 영화 54도), 시카고 영하 45도(섭씨 영화 42도). 지난달 말 동부와 중서부에 불어닥친 혹한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2014년 11월에도 혹한이 몰아쳤지만 이번에는 그 규모나 정도가 훨씬 심했다. 남극보다 훨씬 추운 날씨는 살인 추위로 불렸다. 급격하게 떨어진 기록적인 한파도 그렇지만 영향권이 그 어느 때보다 넓었다는 점도 우려를 낳았다. CNN은 중서부와 뉴잉글랜드에서 살인 추위의 주 영향권에 거주하는 인구만 8400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역의 인구는 1억400만 명에 이른다. 넓은 지역에서 학교와 관공서, 가게가 문을 닫고 30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되는 등 교통이 마비되면서 일상생활이 버거울 정도였다. 가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가주도 전례 없는 산불을 경험한 만큼 기온변화가 어떤 사태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기는 충분하다.

며칠 사이에 최저기온이 160여 회나 바뀌는 이번 혹한이 무서웠던 것은 사망자 27명의 대부분이 일상생활 중이었다는 점이다. 난방 장치가 고장 나 실내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가 하면 90세 노인은 집 밖에서 새에게 모이를 주다가 역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69세의 페덱스 운송 기사는 야외 작업 중 숨졌다.

국립기상청 산하 우주기상예보센터의 브라이언 헐리 기상학자는 "몇 분 안에, 심하면 몇 초 안에 동상과 저체온증에 걸리는 상황"이라고 한파의 무서움을 경고했다. 국립기상청도 "체감온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면 피부가 5분만 노출돼도 동상에 걸릴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북극 한파가 물러가자 기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날씨를 되찾으며 시카고는 51도(섭씨 11도)로 올라갔다. 기상예보업체 웨더 언더그라운드의 제프 매스터스 예보관은 USA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런 정도의 기온 변화가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북극 소용돌이'가 남쪽으로 내려왔던 2014년 11월 17일(위)과 지난달 29일의 위성사진. 올해의 '북극 소용돌이'가 규모 면에서 훨씬 크고 남쪽으로 더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북극 소용돌이'가 남쪽으로 내려왔던 2014년 11월 17일(위)과 지난달 29일의 위성사진. 올해의 '북극 소용돌이'가 규모 면에서 훨씬 크고 남쪽으로 더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며칠, 국립기상청은 지난 5일 일리노이 동북부와 시카고 일원에 얼음폭풍 경보를 내렸다. 연방재난관리청(FEMA)도 10년만에 얼음폭풍이 온다며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고 실내에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짧은 기간 안에 이렇게 극단적인 날씨가 반복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살인 추위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북극 소용돌이(Polar Vortex)'다. 북극 소용돌이는 지난 2014년 한파의 원인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북극과 남극의 성층권에 있는 차가운 바람으로 원형으로 분다. 역시 원형으로 강하고 빠르게 부는 제트기류가 북극 소용돌이를 감싸고 돌기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2014년 북극의 한파는 남쪽을 내려왔고 북미와 유럽, 아시아에 한파를 몰고 왔다.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 북극 소용돌이의 남진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지목했다. 온난화가 시작되면 북극의 기온은 다른 곳보다 2배 정도 빨리 상승한다. 이에 따라 낮은 고도에서 북극과 대륙 사이의 기온차가 줄어준다. 기온차가 줄어들면 기압 차이가 줄어들고 이는 제트 기류를 약화시킨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차가운 북극 소용돌이가 남쪽으로 내려온다.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북극 소용돌이의 영향이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유럽, 아시아 일부에도 이와 연관이 있는 추위가 닥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온난화는 북극의 찬바람을 가두고 있는 봉인인 제트기류만 푸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사상 최악의 한파에 시달리는 동안 호주는 폭염과 산불에 시달리며 역사상 가장 더운 1월을 보냈다. 남호주의 주도 애들레이드는 기온이 121도(섭씨 49.5)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 기록을 바꿨다. 호주의 보물섬으로 불리는 남쪽 섬 태즈매니아에서는 지난달 8일 산불이 발생해 건조한 기후 속에 28일 전 방향으로 확산되며 21개 대형 산불로 커지고 있다. 반면 북동부의 퀸즐랜드주에서는 2000년에 한 번 올 만한 기록적인 폭우로 로스강 수위가 높아지자 댐을 방류해 소 30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퀸즐랜드주는 댐 방류 이후에도 2만 가구가 침수 위험에 놓여있어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기록적 폭염, 폭우, 한파는 이제 낯선 현상이 아니지만 지구 온난화에서 아직 주목받지 못한 곳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얀마까지 2175마일(3500km)에 이르는 산악지대에 형성한 거대한 빙원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흔히 힌두쿠시와 히말라야로 불리는 이 지역의 최소한 3분의 1이 2100년까지 기후변화로 해빙 위험이 있으며 20억 명이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북극과 남극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얼음이 있어 지구의 세 번째 극지로 불리는 이 지역은 남극과 북극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온난화가 진행되며 새로운 위험지대로 꼽힌다.

통합산악개발국제센터(ICIMOD)가 발표한 연구보고서는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방대한 연구조사로 평가받는다. 해당 지역 8개국이 공동 의뢰했고 200명 이상의 과학자가 5년 이상 조사에 참여했으며 125명의 전문가가 감수했다. 그만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신뢰도를 갖고 있다.

이 지역 빙하 3분의 1이 녹는다는 것마저도 탄소 배출을 급격하게 줄여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로 막는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하다. 탄소배출 감축에 성공하지 못하면 3분의 2까지 사라질 수 있다. 1.5도 상승에 묶어두려면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지역의 빙하는 1970년 이후 이미 15%가 사라진 상태다.

빙하가 녹으면 2050~2060년 사이에 강 수위가 높아져 고지대 호수가 범람하고 인근 마을을 덮친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수위가 낮아져 수력 발전량은 떨어진다. 농사도 위기를 맞는다. 몬순 시즌 이전에 강이 범람하고 몬순이 불규칙해지고 강우량은 극단적인 현상을 보일 수 있다. ICIMOD의 필리퍼스 웨스터 수석 과학자는 "최선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빙하지대의 3분의 1을 잃을 것"이라며 "충격적인 결과"라고 우려했다.

"100년에 한 번 올 홍수가 50년에 한 번 올 것"이라는 웨스터 수석 과학자의 경고는 북미 살인추위에도 적용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북극 소용돌이의 남하는 지난 40년 동안 빈도가 계속 높아졌다. 물론 원인은 기후변화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로 지구가 더워질 것이라고 예측한 이후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북극과 남극이다. 극지대 온난화가 시작된 것은 일반적으로 1990년대 초부터로 본다. 첫 징후는 수온이 소폭 올라가고 바다의 빙하가 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음 징후는 바람의 패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난 50년 동안 지구의 온도는 섭씨 1도 정도 높아졌다. 하지만 북극의 기온 상승은 이보다 2배 높다. 얼음과 눈의 특성 때문이다. 얼음과 눈은 태양 에너지를 반사한다. 얼음과 눈이 녹으면 심해와 지표가 노출되고 심해와 지표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한다. 이 때문에 기온은 더 올라가고 더 많은 얼음과 눈이 녹고 상황은 더 악화된다. 북극 소용돌이가 지금보다 더 자주 강하게 내려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과학교육자 빌 나이는 북극 소용돌이의 남진이 더 강해지고 변화도 급격해졌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에서 문제는 변화 그 자체보다 변화의 속도인데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허리케인이 더 강해지고 더 자주 온다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북극 소용돌이에도 변화의 속도가 붙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이번 추위로 현실화했다.

강력한 한파로 온실가스 억제는 주요 정치 의제로 급부상했다. 지난 7일 민주당 의원들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억제책인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을 제시했다. 아직은 의회 결의안이지만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없애겠다는 내용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을 본뜬 이름대로 기후변화 대책의 급박함을 담고 있다. '그린 뉴딜' 발의자인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과 에드 마키 상원의원은 "그 규모에서 2차대전과 뉴딜 이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가적, 사회적, 산업적, 경제적 동원(체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린 뉴딜'에 서명한 73명의 의원 중에는 엘리자베스 워런 등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들이 4명이나 있다. 또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구체적인 입법 작업에 곧바로 착수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후변화는 대선 때까지 뜨거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안유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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