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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사자처럼, 바람처럼, 연꽃처럼

#. 1000만 명이 숨진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끝이 났다. 독일의 항복 서명은 파리에서 50마일 떨어진 콩피에뉴 숲에서 이뤄졌다. 당시 연합국 총사령관이었던 프랑스 장군 페르디낭 포슈 대원수의 전용 객차 안에서였다. 22년 뒤인 1940년 5월 나치독일은 다시 프랑스를 침공했다. 프랑스는 두 달을 못 버텼다. 히틀러는 1차 대전 때의 수모를 갚겠다며 같은 해 6월 22일 콩피에뉴 숲, 똑같은 장소에서 프랑스로부터 항복 서명을 받았다. 파리에 보관 중이던 1차 대전 당시의 객차까지 일부러 옮겨와서 였다.

프랑스군은 왜 그렇게 무참히 무너졌을까. 레지스탕스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그 패인을 통렬한 기록으로 남겼다.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이란 책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프랑스군은 온갖 비효율성에 발목 잡혀 있었다. 복잡한 지휘체계와 군 간부의 경직화, 형식적인 보고 관행, 현장에 대한 무관심, 부서간 칸막이 현상과 책임 소재 미루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결함은 군 지도부의 잘못된 전략과 역사에 대한 무지였다. 독일군은 1940년대에 걸맞은 현대전을 벌이고 있는데 프랑스군 지도부는 여전히 1915년의 전쟁 방식을 고집했다. 그들은 대부분 1차 대전 때의 지휘관들이었다. 또한 정도는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지난 전쟁 때의 승리에 취해 있었고 과거 경험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고자 했다. 패배는 이미 예정돼 있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경험에의 집착이 주는 위험성이다. 비슷한 사례는 기업에서도 흔히 있다. 한 때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회사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와 iOS가 지배적인 상황이 되고 있음에도 계속 자사 고유의 운영체계만 고집하다 무너졌다.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의 음반회사로 군림했던 영국의 HMV사는 온라인 음반 판매,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 등의 변화를 외면하다 몰락했다. 모두 과거의 성공 방식만 고수하며 새로운 흐름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무시한 탓이었다.



#. 2019년이 시작됐다. 하지만 지구촌 소식은 희망보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더 많다. 미주 한인사회도 그렇다. 구성원의 고령화와 이민자 유입 감소라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본질적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움직임은 드물고 타성으로 움직이는 게 일상이 됐다. 조직이나 단체는 여전히 10년 전, 20년 전 방식대로 움직이고 사람도 그 때 그 사람들이다.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라든지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식의 과거 집착이다.

경험은 빛나는 자산이지만 때론 미래를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 시야를 좁히고 변화에 둔감하게도 만든다. 이는 결국 사회나 개인을 지체(遲滯) 상태로 몰아간다. 지체란 기술과 사회 현상은 앞서가는데 생각이나 행동 방식은 뒤따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는 도태 아니면 소멸이다.

한인사회도 그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 블로크의 조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적 유연성이다." 새로움을 향한 열린 마음과 과감한 시도가 길이라는 말일 테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새해 벽두 친구로 부터 받은 연하장 문구다. 나는 이를 '사자처럼 용기있게 /바람처럼 거리낌 없이 /연꽃처럼 맑고 향기롭게'로 바꿔 읽었다. 과거 경험에만 얽매이지 말고 늘 새로움을 향해 고고하게 나아가라는 일깨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이 문구가 올 한 해 한인사회 모두에게도 작은 울림이 되기를 기원드린다. 한인사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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