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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막걸리 한 잔 받으시지요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고문이다. 요사이는 만져 봐도 되는 것은 물론 의도적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미술작품도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전시장은 작품에 관람객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단 하나밖에 없는 미술작품을 보호하려는 정성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엄숙 일변도의 분위기가 예술과 관람객 사이의 거리감을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의 유수 미술관들은 예술과 삶을 되도록 가깝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천상병 귀천 공원'이 강화도 건평항에 올해 초 개관했고, 거기에 천상병 시인의 동상(사진)이 세워졌다. 동상 옆에는 시인의 대표작인 '귀천'의 시비도 있다. 이 공원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 탄생 50주년을 맞이하여 세워진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만큼 고단했던 삶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노라'고 노래한 시인의 마음이 깊은 울림을 준다.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천 시인은 바다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탓에 멀리 가지 못하고 강화도를 자주 찾았고, 거기 건평나루 주막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귀천'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여기에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파란만장한 삶은 전설처럼 널리 전해져 온다.

'귀천'을 지은 지 얼마 후인 1967년 6월, 난데없이 간첩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유명한 '동백림 사건'이다. 천상병 시인은 전기고문 등 끔찍한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과 실어증을 얻었고, 성불구자가 되었다.

시인의 동상은 천진난만하게 환하게 웃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양손에는 술병과 잔을 들고 있다. 시인이 생전에 막걸리를 밥보다 더 즐겨 마신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막걸리는 천상병 시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다"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그런데, 동상이 건립된 이후 시인이 들고 있는 빈 술잔에 누군가가 거의 매일 막걸리를 채워 놓아 화제가 되었다. 인근에는 술을 살만한 가게도 없어, 일부러 술을 가져와서 시인에게 따라주는 것으로 보인다.

동상 제작자인 조각가는 "처음에는 작품이 손상될까봐 황당했었는데, 하루 이틀 막걸리를 따라주는 것을 보고 그분을 추모하는 진정성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일은 예술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진정성 있는 마음이 시인을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시민이 시인의 동상에 막걸리를 정성껏 따라주는 세상…. 아름답지 아니한가?


장소현 / 극작가·시인·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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