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술과 황소장이 만나 애플 시총 1조 달러 넘었다

2일 오전 장중 주가 207.05달러 찍어
잡스 창업 후 42년 만, 미국 기업 최초
17종류, 12억 개 판매한 아이폰이 견인
2007년 시총 734억 달러에서 급등
"혁신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2011년 10월 뉴욕 나스닥이 그를 추모하는 디스플레이를 만들었다.애플은 2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AP=연합뉴스]


애플이 미국 상장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130조원)를 넘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공동 창업한지 42년 만에 역사를 새로 썼다.

애플 주가는 2일 오전 11시48분(현지시간) 207.05달러를 넘으면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찍었다. 애플 주가는 올해 들어 이날까지 19.1% 올랐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2분기(4~6월) 실적이 전문가 전망치를 넘기면서 분기 사상 최고 성적으로 나타나자 곧 ‘시총 1조 달러’의 벽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국영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가 2007년 잠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적이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페트로차이나 주가는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떨어졌고 다시는 시총 1조 달러에 이르지 못했다.


애플은 세계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었다. 애플 주가를 보여주는 나스닥 전광판.[AP=연합뉴스]


애플의 성공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최근의 주식 시장 호황이 만난 결과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평생 천착했던 기술력과 단순한 디자인의 결실인 아이폰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여기에다 뉴욕 증시가 9년째 상승세를 이어가는 등 미국 경기 호황이 더해져 주가가 올랐다.

애플이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기업이 되기까지는 기술 혁신과 세계적인 히트 상품, 그리고 비용은 낮추면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급체인을 확보한 덕이었다.

애플은 잡스가 1976년 PC 회사로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투박하고 복잡한 산업용 기계에 가까웠다. 이런 컴퓨터를 작고, 단순하고 가격이 싼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드는 게 애플이 정한 임무였다.


1984년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 회장(왼쪽)과 존 스컬리 사장(가운데),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가 애플 컴퓨터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애플은 2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AP=연합뉴스]


1985년 잡스는 독선적인 경영을 이유로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사회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혼란을 겪음녀서 애플 실적은 악화했다. 9년 뒤인 96년은 한 해 순손실이 8억6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당시 애플의 시가총액은 30억 달러가 채 안 됐다. 1997년 애플은 PC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밀리면서 직원의 3분의 1을 감원하고 파산 직전까지 갔다.

실적이 부진하자 애플은 최고의 도박을 걸었다. 잡스가 나가서 창업한 넥스트라는 회사를 4억 달러에 사들인 것. 이런 경로로 잡스는 애플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복귀하자마자 잡스는 이미 계획에 잡혀 있던 신상품의 70%를 뒤엎었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광고를 시작하며 회사 정신으로도 강조했다. 1997년 직원회의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잡스는 “이젠 더는 ‘우리가 애플을 살릴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애플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이다.”

단순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애플의 상징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늘 같은 청바지에 검은색 목이 긴 스웨터를 입은 잡스부터, 디지털 기기들, 그리고 애플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방식까지 모든 과정이 단순함을 추구했다”고 전했다.

애플은 1998년 동글동글한 모양에 캔디 컬러를 입힌 올인원 데스크톱 컴퓨터 아이맥 G3를 내놓았다. 이 제품이 대히트를 치면서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애플이 회생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1년 출시한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아이팟이다. 뮤직 스토어 아이튠즈와 결합해서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지금까지 아이팟 4억 개가 판매됐다.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첫 아이폰을 소개하고 있다. 애플은 2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AP=연합뉴스]


애플이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게 된 결정타는 2007년 선보인 아이폰이었다. 그해 애플 시가총액은 734억 달러에 불과했다. 현재의 시가 총액 1조 달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치였다. NYT는 “아이폰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애플은 11년간 17종류의 아이폰을 내놓았다. 모두 12억 개가 판매됐다. 전화기로 통화와 문자는 물론이고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을 보고, 뉴스를 읽을 수 있는, 오늘날 모바일 환경을 만들었다. 아이팟과 아이폰을 거치면서 애플은 개인용 디지털 기기 회사로 변신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뒤를 이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 애플은 2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AP=연합뉴스]


잡스가 애플의 비전과 혁신을 책임졌다면 후계자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의 생산 체계를 세웠다. 잡스가 CEO일 때 쿡은 최고행정책임자(COO)를 맡아 매일매일의 살림을 도맡았다. 중국에 있는 공급체인을 재정비해 애플이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NYT는 “사실 팀 쿡이 애플 시가총액 상당액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가 2011년 8월 CEO에 올랐을 때 애플의 시가총액은 3460억 달러였다. 쿡은 잡스가 만든 혁신적인 상품을 거대 비즈니스로 볼륨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진 눈부신 시간을 보냈지만, 애플의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시각도 있다. 아이폰이 나온 지 11년째인데, 스마트폰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다음 히트 상품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애플이 제조와 판매를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미ㆍ중 무역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치명상을 입게 된다.

팀 바자린 기술 애널리스트는 “애플은 세계 산업 역사상 가장 기적 같은 회생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애플이 계속해서 혁신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말했다.

애플의 성공은 엇갈린 반응을 불러온다. 중국 등지에서 제조하는 방식은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마술 같은 프레젠테이션과 독설가 면모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자 동시에 가장 두려워하는 기업가로 만들었다. 잡스는 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최고 책임자를 맡았던 아비 테바니안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성공을 스티브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이미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다. 몸값 1조 달러를 향해 경쟁하던 아마존 시가총액은 1일 기준 8770억 달러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858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는 8170억 달러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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