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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상] 월드컵은 독하다

한국의 어느 TV에서 월드컵 독일전 직후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차범근, 최용수 같은 축구인들이 패널이었다. 극적인 승리에 대한 얘기꽃이 만발했다. 차 감독은 "경기 끝나고 라커룸에 가서 선수들 하나하나를 안아줬다. 고통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오래 안고 울었다"며 감격적인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 때였다. 사회자가 돌발적인 질문을 꺼냈다. "20년 전 감독님이 풀지 못한 아픔이 풀린 것 같냐?" 차 감독은 1998년 대회 사령탑이었다. 그러나 한을 남긴 채 끝내야 했다. 대답은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끝났지만 우리 선수들은 결과를 얻어냈다. 그게 다른 거다. 그게 사건이다."

사회자의 얘기가 이어졌다. "98년 아픔을 그렇게 정리하신 셈인데, 아직 아픔을 풀지 못한 사람이 있다." 차 감독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스튜디오 저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 쭈뼛거리며 등장했다. 하석주였다. 차 감독은 깜짝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내 다가가 손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덥썩 안았다.

어린 아이처럼 안긴 하석주는 한동안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차 감독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렇게 마음에 두고 살았냐. 축구하면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그 때는 나만 힘든 게 아니고, (하)석주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주대 감독인 하석주는 1998년 프랑스 대회 조별리그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불과 몇 분 뒤에 거친 백태클로 퇴장당했다. 그 여파로 한국은 역전패했다. 그 다음 네델란드전은 0-5로 참패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차범근은 대회 도중 현지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하석주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렷다. 심한 대인기피증도 앓았다. 특히 차 감독에게 죄책감이 심했다. 일부러 피해 다녔다. "20년간 두 번 정도 우연히 마주쳤다. 내가 눈이 나쁜 데도 이상하게 감독님은 확 들어오더라. 그 때마다 겁이 나서 도망갔다." 울먹인 고백이었다.

월드컵은 그렇다. 점잖은 나라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 패해 치욕적인 예선 탈락을 경험했다. 충격이 쉽게 가실 리 없다. 특히 간판 스타인 메주트 외질이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했다는 게 논란의 포인트다. 독일 여론은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인권 탄압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독재자라는 인상 때문이다.

팀의 리더가 비호감 정치인과 어울렸다는 사실에 독일 팬들은 분노했다. 외질이 터키계라는 사실이 덧붙여졌다. 부실한 경기력에 대한 실망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비난이 폭주했다. 결국 아버지까지 나섰다. "아들은 10년 가까이 독일을 위해서 뛰었다. 그런데 한 순간에 이렇게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나 같으면 벌써 대표팀 유니폼을 벗어버렸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콜롬비아의 미드필더 카를로스 산체스는 두 번이나 PK를 내주는 대형 사고를 쳤다. 성토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심지어 그와 가족들에 대한 살해 협박까지 등장했다. 그의 조국은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994년 미국 대회 때 자책골을 기록한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괴한의 총에 희생된 곳이다. 그래서 더욱 섬찟하다.

우리 대표팀 장현수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두어 차례 결정적인 수비 실수 탓이다. 본인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SNS도 무사하지 못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살벌한 게시물이 가득했다.

월드컵은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다. 전세계인이 열광한다. 승리에 대한 환호와 갈채는 어마어마하다. 반대로 저주와 손가락질도 상상 이상이다. 맞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빛이 강렬하면, 반대로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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