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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아이 적성에 맞는 직업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줘.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라고 써놓아라." "눈 잠깐만 감아봐요. 아빠가 안아 줄게. 자 눈떠!"

이것은 영문학자이며 수필가였던 피천득 선생이 외국에 나가 계신 동안에 자신의 딸 서영에게 보낸 편지다. 너무나 딸이 보고 싶어서 미리 계획해 놓았던 일본에서의 3일간 여정도 깨뜨리고 집으로 왔다는 아빠, 그는 뉴욕에서 많은 백화점들을 뒤진 후에 딸을 위한 인형을 하나 골라 가지고 이름마저 난영이라 지어서 왔다. 먼 훗날 서영이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에는 본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인형의 목욕을 시켜주며 돌보아 주었단다.

이런 아빠의 사랑은 수천 마일을 떨어져 있더라도 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을 듯하다. 이 따님은 영문학자였던 아버지와는 다른 분야인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미국 교육자들이 여학생들의 전공 선택에 대해서 연구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이 학자들은 엄마가 가정 주부로 집을 지키며 자녀를 키운 가정과, 엄마가 일을 해야해서 자연히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며 친해진 가정의 소녀들을 비교하였다.



처음 학교에 가서는 남녀 아이들이 모든 과목을 열심히 하더란다. 그러다가 7, 8학년이 되면서 엄마가 집 안에 있는 가정의 여자아이들이 수학이나 과학 등 이공계통에 관심이 줄어들고, 따라서 성적도 떨어지는 데 비해, 언어나 사회 분야에는 변화가 없었단다. 이 학자들의 결론은 아빠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여학생들이 다른 남자아이들에게 행여 위협이 될 수 있는 이공분야에서 자신을 낮추어서 호감도를 높이려는 데 비해, 이미 아빠와의 관계에 자신이 있는 여학생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과는 자신도 모르게 나타난 무의식의 현상들이니 증명하기가 힘들 테지만 나의 큰딸 은하는 미 육군 군의관으로 121 후송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엄마가 일하는 동안에 서울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며 아빠와 친해졌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니 심청전, 흥부전 이야기는 물론, 손오공이 출몰하는 서유기를 비롯하여 삼국지까지 동양과 서양을 휘저으며,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깊이 있는 대화들을 했었단다. 은하는 의사였지만 수학을 좋아하던 아빠의 길을 따라서 엔지니어의 길을 갔다.

내가 고교를 졸업하던 1960년대에 여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전문직은 교사, 약사, 간호사 등이었다. 국어 교사가 되려던 나에게 스코필드 박사님은 한국 사회를 정화시키려면 여성의 힘이 있어야 한다며 의사의 길을 권하셨다. 그때 나는 이미 문예 콩쿠르에 입상이 되어 국문과에 입학이 결정된 후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 적성에 맞는 길이었다.

나는 물리나 수학 같은 이공 계통은 아무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나에 대한 신임과 사랑, 그리고 나처럼 그분을 존경했던 내 엄마의 격려는 모든 결점과 약한 분야를 견디게 해주었다.

대학교 2년간은 특정 과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도록 학교가 기다려주는 것은 아직 성숙이 멈추지 않은 전두엽의 합리적 사고 능력이 높아지는 것을 기다려주는 좋은 제도이다. 따라서 나는 부모님들께 적성 검사에 맞는 분야를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사랑으로 자신감을 길러주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신임하는 젊은이라면 주위에서 만나는 선생님이나 코치, 멘토들의 영향, 아니면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에서 받은 영감, 예술 등을 통해 느낀 감명 등이 모두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자, 이제 마음 놓고 대학으로 떠나는 우리의 2세들에게 천천히 결정해도 된다고 말하며 웃어주자.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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