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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보수의 '서릿발 품격'

'디어 헌터(Deer Hunter)'.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1979년)이다. 3시간짜리 대작이라 곳곳에 명장면이 많지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러시안 룰렛' 순간이다. 미군 포로 2명이 베트콩들에 둘러싸여,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 당기기를 강요당한다. 시끄러운 베트콩의 흥분된 소리 속에 공포에 질린 그 표정. 긴장감과 압박감에 숨이 턱턱 막힌다.

존 매케인(81)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은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5년 반을 버텼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중, 대공포에 격추됐다. 비상탈출 때 충격으로 두 팔과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낙하산에 매달려 호수로 떨어졌다. 베트콩은 매케인을 밖으로 끌어내 어깨를 개머리판으로 부수고 대검으로 발을 찍었다. 독방 생활과 각종 고문이 뒤따랐다.

매케인은 명문 군인 가족에서 태어났다. 베트남전 당시 아버지는 태평양 사령관이었으며 할아버지도 해군 제독이었다. 가족 이력을 안 베트콩은 매케인을 먼저 석방하겠다고 선심을 섰다. 하지만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매케인은 정치에 뛰어든 후 애리조나주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내리 6선 상원의원을 한 보수의 핵심이었다. 두 차례의 대선 도전(2000년·2008년)과 실패. 하지만 그는 품격이 있었다. 치열한 비방전이 오간 2008년 대선 때, 승리한 오바마는 '적'이었던 매케인을 취임식 전날 파티에 초청했다. '들러리' 서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참석한 매케인은 오바마로부터 "평생 미국을 위해 봉사한 애국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주 전에도 오바마와 매케인은 만나 당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당파적 이해를 타파한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오바마의 상·하원 합동 연설 도중, 한 공화당 의원이 건강보험 개혁안(오바마 케어)을 두고 "당신, 거짓말이야(You lie!)"라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매케인은 "무례하고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고, 해당 의원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매케인이 회고록 '쉼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를 오는 22일 출간한다. 공개된 요약본을 보면 매케인은 "오늘날 정치에는 겸손이 부족하다. 겸손이 (대화와 타협을 가능케 해) 더 생산적인 정치를 만든다.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기고 말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치 성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좋은 부모, 충성스러운 미국인, 고결한 인간일 수 있다"고 했다.

국가를 보(保)하고, 수(守)하는 데 목숨까지 바친 보수의 상징 매케인은 보수를 새롭게 정의했다. 보(保)하고 수(守)할 기본은 겸손이라고.

대한민국 보수정당 자유한국당이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장 평화쇼(홍준표)'라고 막말하고, 심지어 문 대통령에게 원색적인 욕설(조원진)까지 내뱉었다. 품격과는 먼 이야기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앞에서 30대 남성으로부터 폭행당했다. 한국당은 '특정정파의 테러'라며 조직적 뒷배경을 운운하고 있다. 5월 국회는 또 갈가리 찢길 판이다.

6월 지방선거라는 러시안 룰렛 앞에 있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7일 리얼미터)은 17%대로 하락했다. 대개 6연발 리볼버를 쓰는 러시안 룰렛에서 사람이 죽을 확률은 6분의 1, 약 17% 정도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팩트(fact)'만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다 버리는 한국 보수의 교만 앞에, '매케인의 겸손'이 서릿발 품격으로 다가오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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