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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왕건의 길, 통일의 길

#. 우리 민족사에서 통일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신라의 삼국통일(676년)이고 두 번째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936년)이다. 신라 삼국통일은 당나라의 힘을 빌린 무력 정복 통일이었다.

후삼국 통일은 달랐다. 크고 작은 전투는 있었지만 크게 보면 흡수 평화 통일이었다. 후백제의 견훤이 먼저 고려에 투항했고 신라 마지막 경순왕도 스스로 나라를 들어 바쳤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창업 군주 태조 왕건(재위 918~943년)의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다. 리더 한 사람의 역량이 국가적 역량으로 승화됐을 때 얼마나 큰일을 이뤄낼 수 있는 가를 생생히 보여준 사례다. 40여년 후삼국 분열을 종식시킨 왕건의 리더십,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 가능한 한 무력 사용을 자제했다. 인내와 끈기로 때를 기다렸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고수임을 알았다.



둘째, 포용했다. 적군도 싸우고 나면 죽이지 않았다. 귀순해 오는 호족들은 성(姓)을 하사하며 지위와 부를 그대로 인정했다. 자신에게 수없이 패배의 수모를 안겼던 라이벌 견훤 조차 투항해 왔을 때 아버지의 예로 맞아들였다. 신라 경순왕에게는 사심관 벼슬을 내려 경주를 계속 다스리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장녀 낙랑공주까지 주어 혼인을 시켰다. 확실한 내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하자 그 유민들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고려의 노동력과 군사력에 큰 보탬이 됐다.

셋째, 겸손했다. 지방 호족들이 득세하던 군웅할거 시대, 왕건은 독보적이었지만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자신을 낮추어 마음을 얻었다. 왕건은 29명의 아내를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호색(好色)이 아니라 정책이었다. 각지의 유력 호족과 혼인으로 연을 맺어 자기 세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넷째, 삼한 땅을 다시 통일하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상대도 결국 내 백성임을 잊지 않았다. 왕건이 궁예나 견훤과 달리 세금을 줄여주고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헤아렸던 이유다. 민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통일의 길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도 하다. 하지만 곳곳에 늪도 있고 돌부리도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 가야 할까. 민족사 세 번째 통일로 가는 길, 1100년 전 왕건이 걸었던 길이 길잡이가 될 것이다.

첫째는 평화 정책의 고수다.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있다. 좁은 한반도 땅에서 너도 죽고 나도 죽겠다는 이야기다. 피는 피를 부르고 폭력은 원수를 만든다. 무력과 강압은 일시적 복종을 강제할 수 있지만 끊임없는 이반과 모반의 위협에 또 맞서야 한다.

둘째는 포용이다.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40배다. 공산주의는 쇠락하고 자유민주주의의는 세계사의 대세가 됐다. 그것으로 체제 경쟁은 끝났다. 가진 자가 품어야 한다. 힘 있는 자의 아량만이 상대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

셋째는 겸손이다. 좀 잘 산다고 해서 거들먹거리지는 말아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 자존심으로 버티는 북한이다. 그것마저 건드리면 대화도 협상도 멀어진다. 다시 원점이다.

넷째는 비전이다. 통일의 비전은 민족이 함께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어야 통일도 있고 민족도 있다. 화해 분위기에 섣불리 휩쓸려 내치와 경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70년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상대다. 잠깐 얼굴 바꿨다고 속마음까지 달라졌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믿어 보자.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다. 옛 원한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어떤 역사 발전도 이뤄낼 수 없다.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자가 이기는 자다. 지금 우리가 그 일을 할 때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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