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디세이] 3랩 에리카 정 대표, 아름다운 완벽주의자, 성공신화 쓰다

광고 없이 오로지 품질만으로 미국 상류사회를 사로잡은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3랩' 에리카 정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미국 유학
한국기업 뉴욕 지사장 10년

남편과 화장품 가게로 출발
소매체인, 제조업까지 확장

03년 고가 브랜드 3랩 론칭
3년 만에 고급 백화점 입점

광고비 안 쓰고 품질로 승부
작년 매출액 4천만불 달성


사진 속 그녀는 천상여자였다. 단아함과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그러나 웬걸, 직접 만나보니 그녀가 이미 전화상으로 선전포고(?)했듯 대장부도 이런 대장부가 없다. 바로 화장품업계에서 독보적인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3랩(3LAB) 에리카 정(61) 대표다. 대화가 시작되고 10분도 채 안 돼 그녀의 카리스마는 빛을 발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화통한 성격에 타고난 친화력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본새는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대화 도중 간간히 튀어나오는 대구 사투리가 매력적인, 이 타고난 사업가를 전나무 숲이 우거진 그녀의 뉴욕주 주말 별장에서 만나봤다.

#대구 아가씨, 뉴요커 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계명대 작곡과 재학 중이던 1979년 일리노이주 소재 어거스타나 칼리지로 유학 와 정치학과 미술을 복수 전공했다. 미술 공부를 시작한 것은 한국 추상화가의 개척자이며 계명대 미술대학장을 지낸 부친 고(故) 정점식 화백의 영향이 컸다.

"한국에서 음대에 간 건 졸업 후 시집 잘 간다고 믿었던 어머니의 반 강요 때문이었고(웃음) 저는 어려서부터 꿈꿨던 좁은 한국을 떠나 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살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오빠가 유학 중이던 미국으로 왔죠."

대학 졸업 후인 1985년 그녀는 뉴욕 리먼칼리지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혼기 꽉 찬 막내딸 걱정에 모친은 그녀를 한국으로 불러들였고 1986년 귀국한 그녀는 신라호텔 공채 경력직으로 입사, 1년6개월간 VIP담당자로 근무했다. 이후 1987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던 중 동국방직 뉴욕 지사장직 제안을 받고는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1988년 어느 봄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세계 각국의 패션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러면서 언젠가 꼭 성공해 저들처럼 자가용 비행기를 타며 살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웃음)"

#그녀의 성공시대

1990년 그녀는 현 잉글우드랩 데이비드 정 대표와 결혼했다. 1년 뒤 부부는 뉴저지에 화장품전문점 '모나스'를 오픈했다. 부부의 타고난 비즈니스 수완 덕분에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인수당시 하루 매출 500달러이던 것이 6000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여세를 몰아 1년 뒤 부부는 뉴욕과 LA에 '코스메틱 월드'도 오픈했다. 그러다 1997년 데이비드 정 대표가 '엘리자베스 아덴'의 한국 총판권을 따게 되면서 부부는 한국행을 결심하고 그녀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국에 가 얼마 지나지 않아 IMF가 터져 1년 뒤 막대한 손실만 입은 채 부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후 심기일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그녀는 2000년 온라인 화장품 쇼핑몰 '마이디바닷컴'을 론칭했다. 주로 한국 고객들을 상대로 화장품을 배송해 줬는데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해외 직구의 원조였던 셈. 쇼핑몰은 대히트를 쳤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자체 브랜드 론칭에 착수, 2003년 3랩을 선보였다. 제조는 뉴저지 소재 한 화장품 제조공장에 맡겼고 판매는 '코스메틱 월드'에서 시작했다. 당시 3랩 제품의 소매가는 100~400달러 선. 처음 하는 브랜드 사업인데 안전하게 중저가 브랜드부터 론칭할 생각은 안했냐는 질문에 그녀가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게요. 수익만 놓고 보면 당연히 중저가를 만드는 게 낮죠. 그런데 뭘 하나 하더라도 완벽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보니 론칭 전부터 제가 쓰고 싶은, 세상에서 최고로 효과 좋은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론칭 후 반응은 좋았다. 여타의 광고 없이 오로지 샘플로만 승부했음에도 이 신생 브랜드는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려 나가 매장 한곳 당 연 매출액이 60만달러를 넘어설 정도였다.

#이 여자가 사는 법

2005년 부부는 화장품 제조업체인 '잉글우드랩'도 설립했다. 1년 뒤 3랩은 뉴욕 삭스핍스애비뉴 백화점에 입점했고 이듬해엔 바니스 전국 매장에, 2009년엔 노스트롬의 전국 22곳 매장에도 3랩 간판을 걸 수 있었다. 또 2006년 독일을 시작으로 영국, 홍콩, 두바이, 러시아 등 18개국에 진출했다.

이처럼 3랩이 론칭 3년 만에 고급 백화점은 물론 해외시장까지 진출 할 수 있었던 것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입소문 공이 컸다. 당시 제니퍼 로페즈, 힐러리 스윙크, 파라 포셋 등 유명 배우들이 3랩 'WW크림'의 열혈 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류사회 '부잣집 사모님'들의 이목을 잡아 끈 것이다. 이후 3랩은 수퍼세럼, 수퍼크림, H세럼 등 연이은 히트작을 내놓으며 매년 20%이상의 매출신장을 보이며 성장해 지난해엔 연 매출 4000만달러를 돌파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늘 꽃길만 걸어 온 것은 아니다. 믿었던 직원들에게 배신을 당해 큰돈을 날리기도 수 차례였고 2005년 한국에 진출해서는 '가짜 명품' 논란에 휘말리며 방송에까지 오르내리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 별별 일을 다 겪게 돼요.(웃음) 그러다보니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공부를 시작했고 그 길에서 불교를 만나게 됐죠.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요.(웃음)"

처음엔 그녀가 불자가 된 것을 탐탁지않게 여겼던 사춘기 아들 피터씨는 NYU 국제정치학과에 진학해 명상 수업을 듣는 등 수행에 관심을 갖다 5년 전 출가해 백담사를 거쳐 얼마 전 김천 직지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아무리 불심 깊은 신자라 해도 외아들의 출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구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데 말릴 이유가 없죠. 그래서 남편이나 저나 모두 응원 중입니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든 좋은 에너지를 나눠주며 살고 싶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젊은이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고 벤처 기업도 설립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게 꿈이기도 합니다."

오호라, 그녀 이미 평상심 한가운데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상심이란 본디 원래부터 고요한 마음이 아닌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도 고요한 것이니 그녀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의 경계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것은 아닐는지. 그 경계 무장무애 하니 깨달음이 지척이 아니겠는가.

이주현 객원 joohyunyi30@gmail.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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