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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빗방울을 달고 있는 매화의 순연한 꽃잎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혼자 보기 아까워 영상편지를 띄운다. 동쪽으로 뻗은 매화 가지에 핀 꽃을 따서 그늘에 말리라는 뜻밖의 답신이다. 말린 꽃잎을 가루 내어 보관해 두면 나중에 사람 살릴 일이 있을 거란다. 이 엄청난 전언에 꽃잎을 조심스레 받기도 하고 낮은 잎에 앉은 낙화를 화기에 주워 담는다. 에메랄드빛 그릇에 담긴 하얀 꽃잎이 쌀 튀밥 같다. 이를 보고, 늘 호작질(손장난)하는 중이라던 겸손한 도예가 한 분은 마치 깊은 바닷속에 그물을 내려 비늘 눈부신 고기를 넘치도록 잡아 놓은 것 같단다. 가까이 있다면 향 담을 그릇 하나 주고 싶다며 향기로 꽃을 피우라신다. 표현할 수도 잡아 둘 수도 없는 매향 담을 그릇을 주신다니 수수만리 하늘길 날아 마음으로 받든다.

사람 살릴 일이 무엇일까. 뜻밖에도 천연두란 전염병에 쓰인단다. 천연두 백신을 만든 지 181년 만에 멸종되었다지만, 과학의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연두 바이러스가 생화학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위험 중에 살고 있다. 어린 날 흔히 접하던 선명한 우두 자국의 무섬증이 아직도 섬뜩한 마마님이다. 하지만 천연두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으니 외로움이라는 병이다. 현대인의 고독이 사회 문제로 발전함에 따라 영국에서는 '외로움'(loneliness) 장관이 임명됐다.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지만, 누구도 동행할 수 없는 생과 사는 홀로이다.

소낙비 소리에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를 만난다.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벗으로 삼은 옛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녹우당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무량한 은총이 선물이다.

어느 사이 밤비 그치고 달빛이 포근하다. 기쁨도 근심도 한마음으로 나누던 오랜 지기의 고별이 영 이별이 아닌 것은 매화 가지에 걸린 달님이 벗이 되는 까닭이다. 설렘으로 산조 가락을 함께 연습하던 그 밤처럼 거문고의 곡조가 흐른다. 먼 데서 좋은 일이 많기를 빌어주는 봄소식을 안고 바람이 불어온다. 때때로 몰아치는 꽃샘바람에 몸살을 앓는 날도 있으리라. 외롭고 고단한 시간을 통하여 예술가들이 남긴 불멸의 작품은 기진한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 된다. 해와 달을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정을 나누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찬미가는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운다.



연일 봄날이더니 쌀쌀한 날씨가 아직 겨울인가 보다. 냉염(冷艶)한 설중매의 아취에 취하고 싶은 날에 빙등을 마련하여 벗을 초대한다. 겨울밤, 얼음덩이를 잘라내어 그 속에 촛불을 밝혀 매화를 감상하던 빙등조빈연(氷燈照賓筵)의 고요를 마주한다. 외로움이 축복임을 혼자 노는 적요의 시간, 고독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감미로운 행복이요 나를 살리는 일이다. 새날이 밝으면 따스한 햇볕이 다독이고 벌들은 분주히 꽃 사이를 날아다닐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집 매실은 언제나 열릴까. 향기로운 꽃들이 한창인데 감사가 부족할 뿐 욕심도 참 많다고 내 속에 내가 나무란다.


박계용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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