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고민…비핵화 못 끌어내면 한·미 동맹만 균열

평창올림픽 통해 전달된 정상회담 카드
과거에는 북·미 해빙 뒤 성사돼
강경한 미국과 조율 여부가 핵심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남녀 쇼트트랙 예선전을 관람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의 뒷줄 왼쪽은 지난해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나 6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본사전송]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달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 요청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방북) 수락이라고 볼 수 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30여 분 후 다른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 해석해 달라"며 신중한 태도로 한발 물러섰다. 남북관계 진전을 한.미 관계와 맞물려 추진해야 하는 청와대의 고심이 드러난 대목이다.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 남북관계의 최고 이벤트인 정상회담을 사실상 제안하면서 한반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주먹'과 김정은의 '악수'가 겹치는 현장이 됐다. 한.미 동맹을 강건하게 유지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이중의 과제가 청와대에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10일 김여정 일행을 접견했을 때 비핵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모두 북.미 관계 개선이 선행된 뒤 성사됐다.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 때의 첫 회담을 앞둔 1999년 9월 미 행정부는 대북제재 완화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자제 등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를 의회에 보고하며 북.미 관계가 해빙기에 돌입했다.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은 그해 미국이 동결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통치자금을 풀어주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가동 중단 등을 담은 '2.13 합의'에 도장을 찍으며 북.미 관계가 풀린 뒤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선제타격까지 옵션에서 배제하지 않는 '최대의 압박'으로 나섰고, 김정은은 정상회담 제안이라는 '최대의 미소'를 보이며 마치 한국에 양자선택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정부는 '비핵화 없는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원칙이 분명하다. 평창올림픽 참석차 방한을 앞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가라고 한 이유는 한.미.일 동맹 강화와 북한이 핵무기 야욕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되는 고립을 강조하기 위해"라고 단언했다. 펜스 부통령은 결국 북한 대표단과 접촉하지 않은 채 10일 출국했다. 청와대가 기대했던 북.미 조우는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비핵화 목표에선 미국과 같지만 방법론은 보다 유연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비핵화는 나란히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과제는 남북 간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어떻게 평창올림픽 이후까지 이어가 북.미 간 대화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김정은의 방북 초청은 남북관계만 놓고 보면 최상위 대화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지만 비핵화를 향한 단초를 마련하지 않을 경우 한.미 간 이견을 야기하는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결국 '비핵화 없는 북.미 대화는 없다'는 미국과 '비핵화 약속은 없이 남북대화부터 하자'는 북한 사이에서 접점을 만들어 나가는 게 문 대통령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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