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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아들이 아른거려 도움 멈출 수 없었어요"

20년간 구호활동 사업가 배병준씨
50여 차례 방북…700만 달러 써
"가진 게 없으니 서로 싸우지 않아"

"가진 것이 없으니 서로 싸우지 않아"

슬픈 눈을 가진 북녘땅의 아이들이 계속 아른거렸다.

올해 78세인 배병준(사진)씨는 그 아이들을 '내 손주'라고 불렀다. 현재 북가주 플리젠트 지역에 사는 배씨는 함경북도 회령 태생이다. 미주에서 염화비닐 관련 개인사업을 하던 그가 고향땅을 처음 밟은 건 1997년.

당시 식량난에 시달리던 북한으로 구호활동을 하러 갔다. 60여년 만에 맡은 고향의 흙냄새는 기쁨보단 슬픔이었다.



"고아원마다 애들이 너무 많더라고. 아마 수천 명은 됐을거야. 내가 그 땅에서 자랐잖아. 다 내 손주 같은 애들인데…."

그때부터 배씨는 북한 어린이 빵나누기 운동 등을 펼쳐온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LA기윤실) 등과 함께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 필요한 농업용 비닐 및 비료 등을 지원하는가 하면, 매년 두 차례씩 북한 고아들을 위해 식량, 의복, 의약품 등을 보냈다. 지금까지 사비를 털어 지원한 금액은 약 700만 달러.

최근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에 또 마음이 아팠다. 북한 북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두만강이 범람하면서 수백 명이 숨졌다. 그의 고향 회령의 피해도 컸다. 배씨는 곧바로 LA기윤실에 수해 복구 지원금으로 10만 달러를 기탁했다.

사비를 들여 돕고 있지만, 마음속에 남는 건 손주같은 북한 아이들의 눈빛뿐이다.

"처음에는 뼈만 앙상했던 아이들이 이듬해에 가면 살이 붙어있고, 그 다음해에는 나를 알아봐. 다들 나보고 '할아버지~' 하면서 안기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해맑고 귀여운지…."

배씨의 바람과 달리 요즘 남북관계는 냉랭하다.

"정치? 난 그런 거 잘 몰라. 정치는 정치니까…. 단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하는 거지. 지금 당장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정치 때문에 돕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인도적인겁니까. 그건 조건에 따라 돕는 거지."

배씨는 콘트라코스타한인장로교회를 다니는 집사다. 1959년 유학와 아들 2명과 손자 4명을 둔 할아버지다. 배씨는 "내 손주들이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건 북한 애들도 똑같이 좋아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50여 차례 이상 북한을 다녀왔다. 배씨가 바라본 북한 풍경은 어떨까.

"남한과 북한 모두 장단점이 있어. 남한은 자유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많이 변했지. 각박해지고 경쟁도 심하고, 세속화됐고…그런데 북한은 남한만큼 자유는 없지만 사람들이 순박해. 때묻지 않았어. 가족간의 유대도 끈끈하고, 자살 같은 것도 없으니 사회적으로 그런 게 문제가 되지 않아. 게다가, 사람들이 잘 안 싸워. 가진 게 없으니까 안 싸우지(웃음).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우리는 가진 건 많지만 더 많이 싸우지 않나요?"

배씨는 그래서 통일을 갈망한다. "북의 장점, 남의 장점이 합쳐지면 정말 좋지 않겠어? 그래서 통일이 돼야 해. 내가 자꾸 북한에 드나드니까 처음에는 FBI도 나를 지켜보다가 지금은 그쪽이 오히려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친구가 됐다니까."

배씨는 그동안 북한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산너머 마을(2013년)'이라는 영화도 제작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북한 간호사와 남한 병사의 사랑을 그렸다.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제작 과정이 북한에서 진행돼 한때 화제가 됐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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