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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잭 할아버지가 남겨준 스테이크

이정아/수필가

옆집의 잭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국이름은 김영철, 1922년에 이곳 나성에서 태어나 95세 생일을 앞두고 노환으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내셨다. 내 남편 생일과 비슷한 날짜여서 남편과 할아버지가 함께 생일 파티도 한 적이 있다. 1989년부터 이웃으로 산 28년의 인연이다.

미국의 16명의 전쟁영웅 중 한 사람인 김영옥 대령의 동생으로 그의 누이는 토니상을 받은 무대의상디자이너 윌라 김(김월려)이다. 그녀는 99세로 아직 생존하고 있으니 장수 집안이다. 유명한 형제 자매들에 비해 항공사 엔지니어로 은퇴한 잭 할아버지는 비교적 소박한 삶을 살았다.

독립운동가인 김순권과 이화학당 출신인 노라 고의 자제로, 그의 부모는 템플과 브로드웨이에 한인 최초의 마켓인 킴스마켓을 열어 동지회 사람들 중 가장 부자였다고 이민 역사책에서 읽었다. 그러나 잭 할아버지에 의하면 독립자금으로 다 나가서 집안은 늘 가난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미주 초기 한국인의 역사 중 일부가 사라진 셈이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던데 말이다. 총명해서 고등학교땐 캘리포니아 전체에서 수학경시대회 1등을 할 정도였고, 킴스마켓의 야채 다듬기 고기 썰기 등 전반을 관리하던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었다.

우리가 이사 오던 해 아내와 사별한 잭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아내의 묘지에 갔다 오곤 했다. 자식들이 멀리 살아 심심한 그는 어린 우리아이의 친구였다. 집에서 키운 토마토로 살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옥수수 껍질로 싸서 찐 따말리도 종종 보내주었다.(사별한 부인이 히스패닉이어서 멕시코 음식을 잘 만든다) 우리가 여행가면 강아지와 마당을 돌봐주고 이웃이지만 친정아버지처럼 보살펴주시던 분이었다.



장례식 후 시애틀에 살던 딸이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러 와선 사진과 아버지를 추억할 물건을 한 차 가득 싣고 갔다. 며칠 전엔 콜로라도에 사는 아들이 휴가차 와서 아버지의 물품을 한박스 가득 가져갔다. 아들은 내게, 아버지로부터 '좋은 이웃'이라 들었다며 고맙다고 한다.

딸인 캔디는 킴스마켓 시절부터 고기를 잘 다루던 아버지의 솜씨라며 냉동고의 잘 손질된 스테이크를 잔뜩주고, 할아버지가 보던 요리책도 여러권 주고갔다. 사람이 죽어 슬퍼도, 남은 자는 먹고 살려고 요리책을 뒤지고 굽고 지진다. 이 인생의 아이러니가 마음에 걸린다.

내 마음 속엔 밥 퍼낸 자리처럼 잭 할아버지의 부재가 허전한데, 동네 길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하기만하다. 할아버지 가족들은 집을 처분하려고 내 놓았다. 살아 생전엔 안 고친 집을 뒤늦게 수리한다. 시니어가 살다 간 집을 젊은 새 가족들이 사서 들어오곤 한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어린 가족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고참이 되면서 세대교체가 되어가고 있다.

세월은 속절 없이 흘러갈 것이고 잭 할아버지를 하늘에서 만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유한한 인생, 참으로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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