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백지장을 왜 맞들까?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비슷한 속담으로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으라.’는 표현도 있다. 이 속담에 대해서도 콩 한 조각을 나누어 먹어서 간에 기별도 안 가겠다는 둥 말이 많다. 어떤 사람은 콩 나누려다가 힘 다 빠지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콩 나누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얼마나 힘든지. 겨우 반으로 잘랐다 하더라도 콩 반 조각으로 기운이 나겠는가? 입맛만 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속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속담들은 평상시 상황을 전제한 것이 아니다. 비상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내 힘이 아무리 작더라도 상대에게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도움을 주지 않게 될 때도 있다. 이럴 때 이 속담은 위력을 발휘한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비록 내 힘이 작다하여도,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또 그가 간절히 원한다면 선뜻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럴 때 백지장도 맞들면 낫게 된다. ‘백지장’은 우리의 핑계대고 싶은 마음을 나무라고 있다.
배부를 때 콩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니 아주 주린 배가 아니라면 콩 한 조각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위급한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나눌 생각을 잊는다. 배부를 때 나누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소 한 마리를 나누어 먹는 것은 어쩌면 할 만한 일일 수 있다.(물론 소 한 마리도 나누어 먹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 우리가 굶주릴 때는 사람이 변한다. 변해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변한다. 그래서 이 속담은 변하지 말아야 함을 들려주고 있다. 여유 있을 때부터 변하지 않고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 버릇을 들여놓아야 정말 어려울 때 ‘버릇처럼’ 나눌 수 있다.
한편 백지장과 콩 한 조각은 또 다른 비유를 담고 있다. 단순히 돕고, 단순히 나누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을 돕고, 무엇을 나눌 것인가? 그 답은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작은 일이라도 두 팔 걷고 도와야 한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그 말을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 말을 들어주는 것은 작은 일처럼 보이나 어떨 때는 그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이렇게 해야 백지장도 콩도 의미가 살아난다. 친구에게 기쁜 일은 내 일처럼 기뻐하고, 더 즐겁게 어울려야 한다. 혼자보다는 둘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서로의 길벗이 되어주고, 말동무가 되어 준다. ‘함께’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힘이 난다.
작은 일이니까 하고 지나쳐 버리면 큰 일 앞에서도 비겁해진다. 우리는 비겁한 스스로가 부끄럽고 두렵다. 서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세상을 더 따뜻하고 살맛나게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 늘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백지장과 콩 한 조각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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