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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광장] '큰 어른' 안수산 여사를 추모하며

정영조 흥사단 미주위원부 위원장

흥사단의 특별 단우이시며 존경하는 안수산 여사께서 지난 6월 24일 오후 2시 경 100세를 일기로 평안히 운명하셨습니다.

고인은 1902년 미국 비자를 받고 입국한 최초의 한국인 유학생 부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의 스승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혜련 여사의 3남 2녀 중 장녀로 1915년 1월16일 LA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운동 신경도 뛰어났던 여사님은 샌디에이고주립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여자 필드하키와 여자 야구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셨습니다. 대학 졸업후 27살에 미국 해군에 자원 입대해 동양 여성으로는 미국 최초로 미해군 여성 포격술 장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전투기의 전술 교관으로, 해군 특수부대 대위로,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비밀 정보분석 부대 책임자로 활동하다 전역했습니다.

하지만 전역 후에도 미 해군정보국의 요청에 의해 민간인 신분으로 9년을 더 연장 근무하셨습니다. 안수산 여사께서는 1947년 미 해군정보국의 동료였던 아이리시 계통의 프란시스 커디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었으며 2명의 외손자를 두셨습니다. 그러나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강력히 원했던 어머니와는 사이가 멀어져 5년이나 서로 소식을 끊고 살았다고 합니다. "나 결혼할 때는 한국 남자는 물론 동양의 어떤 남자도 구경하기 어려웠어." 결혼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여사님은 퇴직 후 LA 북쪽 파노라마시에서 가족과 함께 문게이트 식당을 운영했으며 1983년 아버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품과 자료 2500여점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습니다. 2003년 전기 '버드나무 그늘 아래'를 출간하셨고 미주 흥사단과 3.1여성동지회를 비롯해 마지막 가시기 전날까지도 미주 한인사회를 위해 꾸준히 단체 활동을 하셨습니다.

"나, 한국말 잘못해요. 미안해요. 영어로 말할게요." 가끔 한인 단체 초청 강연을 하실 때면 모국어로 진행하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 하셨습니다. 2006년 한인 최초로 '미국의 용기상(American Courage Award, Asian American Justice Center 주관)'을 받았으며 올해 3월 10일은 도산 선생의 순국일을 맞아 LA카운티 정부로부터 '안수산의 날'로 선포되기도 했습니다.

늘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셨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후손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안수산 여사님. 한인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항상 우리 곁에 계셨던 여사님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참되고 용기있는 정의의 실천가이자 개척자요 애국자였습니다.

▶고 안수산 여사의 장례식은 오늘(2일) 오전 11시부터 할리우드힐스 포레스트론의 리버티빌딩에서 진행됩니다.

문의: (818) 886-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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