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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리처드 최 전 한인민주당협회 고문은 "한인 정치권의 큰 머슴…조력자 역할 최선"

LA폭동 계기로 정치권 참여
언변 좋아 평론가로도 명성

지난 25일 갑자기 별세한 리처드 최 전 한인민주당협회 고문은 남가주 한인정치권에서는 숨어있는 보석 마당발로 불렸다.

최씨와 함께 오랜 기간 정치적 호흡을 맞춰온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을 누구보다도 원했던 사람"이라며 "리처드를 잃은 것은 내가 날개 하나 잃은 기분"이라고 침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최씨는 13살 때 이민 와 UC어바인을 다녔다. 젊을 때부터 워크맨 등 전자제품을 취급하면서 일찌감치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990년대는 'LA사운드'라는 자동차 오디오 제조 업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1992년 폭동을 겪으면서 한미연합회 한인민주당협회 등의 창립멤버로 참여하면서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LA한미연합회 회장 OC한미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며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과 권익 옹호를 위해 노력했으며 유권자등록 및 영구우편투표신청 캠페인을 벌여 한인 선출직 공직자 배출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에는 라하브라에서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마이클 조씨 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도 참여했으며 한인민주당협회를 기반으로 주류 정계와 한인사회와의 연결에 힘썼다. 한국정치권과도 폭넓은 교분을 나눴으며 특히 손학규씨와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최씨는 주요 민주당 정치인들의 기금모금행사 주최 참모활동 등 묵묵하게 조력자 역할을 해 한인 정치권의 '큰머슴'으로 불렸다. 최씨는 아버지가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여태 한국국적의 영주권자로 살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주변에서는 최씨가 이렇게 정치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돈은 항상 자비로 써왔을 정도로 이타적인 면모가 두드러졌던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강석희 전 시장은 "1998년도부터 알게 돼 지금까지 절대적 후원자이자 신랄한 비판자로서 형제같이 지내온 둘도 없는 친구"라면서 "최씨를 잃은 것은 한인커뮤니티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최씨는 오랫동안 고혈압약을 복용해왔고 최근 들어 당뇨 때문에 힘들어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주변인들은 전하고 있다. 부인과 2남 1녀의 가족을 두고 있다.

임상환·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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