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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숫자의 시대, 스마트하게 사는 길

이정아/수필가

집을 들어가려면 현관문에 비밀번호 5자리를 입력해야 열린다. 수영하러 피트니스센터에 입장할 땐 프런트에서 숫자 열자리에 손가락 지문으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 탈의실의 락커 키도 3자리 비밀 번호를 조합해야 열린다. 아이폰엔 4자리 숫자를 입력해야 활성화된다.

컴퓨터에 로그인을 하거나 인터넷 뱅킹을 하는 것도 요즘엔 도용 피해를 막으려는지, 숫자 문자 부호를 섞어 10자리 이상을 코드로 만들라고 요구한다. 운전면허도 잘 못 외우는 터에 소셜 시큐리티 번호라도 써야 하면 난감하다. 외워야 할 숫자는 하 많아 스마트 세상에서 살기가 더 복잡해졌다. "열려라 참깨!" 같은 간단한 주문이 아니다. 에휴.

검진 차 한국엘 가면 공인인증서에 여권번호, 거소증 번호가 추가로 더 필요하고 병원에선 환자 등록번호가 있어야 진료부터 정산까지 가능하다. 홈쇼핑이라도 할라치면 신용 카드번호도 다 외워야 주문이 빠르다.

나이 먹을수록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피질이 줄어들어서 기억력이 감퇴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노인들이 숙면을 취하면 기억력 감퇴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늙으면 뇌의 쇠퇴로 인해 수면의 질이 악화되고 이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된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서 뇌의 전반적 기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숙면을 하거나 낮잠을 자면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버클리 대학과 캘리포니아 태평양 의학센터가 공동 연구한 결과라고 한다.



예전엔 남의 일이나 외우지 않아도 될 일까지 쓸데없이 줄줄이 기억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건만 지금은 무색하다. 휴대폰을 어디에 둔지 몰라서 매일 내가 내게로 전화를 하여 찾는 형편이 되었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사람 이름도 사건도 장보기도 실수 투성이다. 전화기 대신 리모트 컨트롤을 핸드백에 넣어가질 않나, 현관문을 잠그고도 안 잠근 것 같아 차를 돌려 확인하는 건 부지기수이다.

평상시 잠이 없는 나는 그래서 그런지 기억력이 많이 쇠퇴 되었다. 불면의 밤이 잦고, 쪽잠을 자고, 선잠을 자고, 몽유병 환자처럼 남들 잘 밤에 서성댄다. 그러니 잠의 질이 무척 떨어지는 편이다. 소설가 윤 선생님은 새벽 한시에 이메일을 해도 새벽 3시에 카톡을 해도 답장이 바로 온다며, 잠은 통 안 자는가 물으신다.

이 세상에 숫자는 단 10개 뿐인데 외워야 하는 것은 어찌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이제라도 푹 자도록 수면 습관을 고쳐야겠다. 멜라토닌을 먹거나 따스한 우유에 식초 한 스푼을 섞어 마시면 잠에 도움이 된다니 실행해 봐야겠다. 스마트한 시대에 부응하는 스마트한 노인이 되려면 말이다.

어느 날 비밀번호를 기억 못해 망연자실한 노인이 되는 건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다. 그 시간을 가능한 한 늦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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