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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사드와 소국·대국론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학
얼마 전 필자는 한국과 중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토론에 참석했다. 한국 측 국책연구원이 주관해 꽤 비중 있는 인사들이 서로 격식 없이 속내를 터놓기로 합의한 자리였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7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국빈방한과 한·중 정상회담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덕담이 오갔다. 그러나 특정한 주제가 도마에 오르자마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바로 사드(THAAD·미국 고고도미사일요격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였다.

 이전에도 사드는 대부분의 한·중 간 민간 회의에서 뜨거운 이슈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특히 중국 측 전직 고위 외교관의 고압적인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됐다.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지연시키기 위해 사드의 평택 배치를 수용할 것이라는 보도를 접했다”며 운을 뗀 그는 “이는 자주적이지 못한 처사”라고 평했다. 또 “만일 이 무기체계의 한국 배치가 현재 논의대로 이뤄진다면 한·중 관계를 크게 해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한국 측 참석자들의 반론도 격렬했다. “우리가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미사일방어(MD) 참여도 고려하게 된 것은 북한의 핵 위협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 지연이나 사드 문제를 가지고 한국의 자주를 운운하는 것은 심히 부적절하다. 이는 우리의 주권적 권한이자 자주적 결정에 속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부 인사는 중국의 이러한 태도가 우리를 ‘소국’으로 보는 데서 유래한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예비역 장성이 나섰다. 동맹이 한국의 주권적 권한임을 인정하고 중국 역시 한·미 동맹에 반대하지 않지만 한·미 동맹이 대북 군사 억지를 넘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사드의 평택 배치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한국의 결정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으며 사드가 배치된 주한미군 기지는 중국의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소국·대국’ 논쟁에도 말을 보탰다. “중국은 이제 대국이다. 한국이 미국을 대국으로 존중하면서 중국을 경시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 한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이다.

 격론 와중에 필자가 느낀 사실 하나는 사드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보다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방부는 이 무기체계의 배치와 관련해 미국이 공식적으로 요청해온 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안호영 주미대사 역시 최근 국정감사에서 “협의한 바는 있지만 배치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미 국방부는 사드의 평택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엇갈리는 모호한 태도가 중국 측 의혹만 증폭시키는 형국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미봉책으로 감당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나가버린 것이다. 도리어 배치 여부를 분명히 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소국·대국’ 논쟁만 해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부상은 이제 픽션이 아니라 현실이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가 미국의 도움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면, 다음 60년은 중국이 우리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 중국의 부상에 편승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전의 관성만을 좇아 동맹에만 집중하는 외교 행보가 재앙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만들어진 지금, 한층 균형 잡힌 인식과 현명한 강대국 외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냉전 시기의 적대적인 대중(對中) 인식이나 1990년대 초의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또한 보다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국 측 누구도 사대자소(事大字小)나 조공과 책봉으로 상징되는 과거 두 나라 사이의 역사관계를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주권 개념이 보편화된 현재 시점에서 ‘대국론’을 들먹이는 것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경성국력만으로 이웃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은 시진핑 주석 본인이 강조한 바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이웃과 친화하고 정성을 다하는 동시에 혜택을 베풀고 관용하는 자세를 보이겠다는 ‘친성혜용(親誠惠容)’의 리더십이 가시화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경고한 바 있지만 중국은 ‘대국론의 유혹과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친 논쟁이 오가는 동안 뚜렷하게 느낀 것은 한국과 중국 사이의 상호인식이나 정책의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었다.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가야 할지 고민이 이어졌지만 묘수는 안갯속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 가까워질수록 갈 길은 점점 더 멀어지는 한·중 관계의 미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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