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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콩글리시'가 가져온 오해

하정아/수필가·간호사

"훳 아 유 두잉 히얼, 제인?" 닥터 콜튼이 간호사 스테이션에 기대서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 쳤다. "아임 웨이팅 포 유." "오호, 정말? 나를 기다렸다고?" "예, 아니면 왜 제가 이 시간에 달려왔겠습니까?" 동분서주하던 몇몇 간호사들이 우리의 대화를 엿듣더니 탄성과 함께 야유를 쏟아냈다. 입빠른 수간호사 렌이 놀렸다. "제인, 이 앙큼한 것, 내숭도 떨 줄 아네?" "뭐, 내숭?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그럼 넌 네가 방금 무슨 말을 한 줄을 모른단 말이야? 우리는 네가 단수 높은 작업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모르겠어?"

나는 멍청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머머머, 저 맹한 표정 좀 봐, 내가 미친다, 미쳐." 이제 스태프들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를 참이다. 렌은 눈꼬리에서 눈물을 폭 쏟아내더니 콧물까지 풀었다.

닥터 콜튼은 퉁방울처럼 큰 눈을 껌벅이며 싱글거렸다. "제인, 그런 말은 나 혼자만 들을 수 있게 내 귀에 대고 속삭여줘." 스태프들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등을 구부리고 자글자글 웃어댔다. 나는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렌이 말했다. "제인아, 그럴 때는 '아임 웨이팅 포 마이 페이션트, 내 환자를 기다립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지난 목요일 새벽 1시. 양수가 터져 산모와 영아의 생명이 위급한 제왕절개 수술이 있다는 병원 호출을 받았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산부인과 의사를 기다리다가 일어난 해프닝이다.

어젯밤 11시, 그 의사와 응급수술 건으로 다시 만났다.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 있던 그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제인 왔구나, 늦은 시간인데." "비코스 오브 유. 선생님 때문이지요."

일하던 간호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닥터 콜튼 때문에 왔다고? 히야, 끝내주는구나." 닥터 콜튼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태연하니 마땅히 대응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스태프들이 놀렸다. "제인, 이 야밤에 야담 하는 거야?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대화는 삼가해 주었으면 좋겠어. 조용히 둘이서 따로 만나든지."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태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나는 당당했다.

닥터 콜튼이 말했다. "제인, 그런 말은 나한테만 살짝 비밀스럽게 얘기하는 거야." 나는 다시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스태프들은 차트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깔깔댔다.

망할 것들, 지들이 영어 좀 안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아니, "선생님을 기다렸어요"라든지 "선생님 때문이어요"라는 말이 뭐가 그리 야하고 진해? 뭐가 그리 우스워? 두 번 모두 하루 종일 힘들게 낮 근무를 하고 한밤중에 다시 불려나온 참이어서 일종의 짜증 섞인 불평이었는데?

이것들아, 이제 그만 좀 웃어라들.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거야? 니들 배꼽이 놀라서 도망가겠다. 이 얄궂은 것들아, 내가 너희들을 모두 한국으로 보내 서울 한복판에서 맹한 짓 하며 쩔쩔매는 꼴을 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에휴, 영어야, 너는 어쩌다가 내 인생의 십자가가 되었니. 언제쯤 나를 받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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