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바닥, 시선이 하늘로 향하는 축복" 충무로의 거장 이장호 감독의 신앙 고백

내리막 길, 그건 인생의 아름다움
겸손은 나의 실체와 죄 깨닫게 해

인생에서의 '내리막길'은 아름답다.

충무로의 거장 이장호 감독(70)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고 고백했다.

바닥을 향한 삶은 곧 축복을 향한 지향이었다. 내리막은 실패로의 점철이 아닌, '나'의 실체를 보게 한 깨달음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한 손에는 늘 메가폰이 들려 있었다. 절대 놓을 수 없었던 우상이었다. 그건 다른 한 손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하는 도구였다. 어느 순간 내리막은 그가 붙들고 있던 메가폰의 의미를 달리 보게 했다.



삶이 바닥에 이르자 시선은 본능적으로 위를 향했다. 계속되는 흥행 참패, 교통사고, 스캔들, 이혼, 대마초 사건 등을 통한 인생의 추락은 그가 '하늘'을 만난 계기다. 그는 내리막의 이유를 알게 한 건 '예수'라 했다.

지난 18일 이장호 감독을 만났다. LA지역에서 열리는 '제6회 기독 환태평양 영화제(24일~26일)' 참석차 남가주를 방문한 그는 한 손엔 메가폰을, 다른 한 손엔 '복음'을 들고 있었다.


삶의 추락, 예수가 알려준 인생의 답
관객은 돈 아닌, '한 영혼'이었다


-왜 '내리막을 걷는다' 했나.

"(웃음) 1970~80년대의 한국 영화는 '이장호'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감독으로서 20년 넘게 슬럼프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계속 실패했다. 내가 만든 작품들이 속속 흥행에 참패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되고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는 등 철저히 내리막이었다."

-결국 바닥에서 본 것은.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더라. 결국, 마지막에 깨달은 건 '나는 철저히 무능한 존재였구나'라는 고백을 통한 겸손이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겸손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예의나 처세 정도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와 마주하게 되면서 겸손의 실체를 보게 됐다."

(그가 처음 개신교 신앙을 접한 건 1980년 신영균 씨가 운영하던 명보극장 신우회 모임이었다. 당시 고 하용조 목사가 이끌던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했었다. 이 감독은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그 이후 인생의 여러 일을 겪으며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 현재 그는 과거 금강제화 계열사 CEO였던 김세제 목사가 개척한 길(GIL)교회에 출석중이다.)

-겸손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가운데 결국 그분 앞에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할 개념이다. 그걸 깨닫게 한 건 '죄'였다. 존재적으로 내 안에 있던 죄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18년 만에 기독 영화 '시선'을 선보인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에서 감동을 받아 제작했다. 이 감독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 '어둠의 자식들', '과부춤' 등 기독교 색채가 묻어나는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과거의 기독영화와 이번 작품의 차이는.

"예전에는 주로 기독교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아냈었다. 물론 결말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신앙의 깊은 면을 깨닫게 된 후로 관점이 바뀌게 됐다. 하나님의 시선을 필름에 담아보려는 노력이었다."

-어떻게 관점이 변했나.

"영화는 나에게 우상이었다. 나에게 영화는 돈, 인기, 명예를 쌓기 위한 수단이었다. 관객이 '돈'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이후 영화인으로서 슬럼프를 겪고 신앙을 소유하게 되면서 근본적으로 그런 관점이 너무나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결국 '한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관객은 곧 흥행과 연결되는데.

"신앙을 통해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해 본다면, 한 사람의 관객은 곧 '한 영혼'이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시선 아니겠는가. 나도 한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영혼에 호소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영화인으로서 어쩌면 '좁은 길'을 택한 셈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흥행에 목숨을 걸지 않게 됐다. 관객이 돈이 아닌 영혼으로 보이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맘이 편안해지더라."

(그는 과거의 작품들을 두고 사람들의 돈을 털어내고, 시간을 빼앗고, 생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영화였다고 고백했다. 그건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된 모습이라 했다.)

-이제 작품에 무엇을 담고 싶나.

"내 길은 정해졌다. '이타심'을 담아내는 것이다. 반대 개념으로 말하면 인간의 이기심일 수 있겠다. 한 예로 세월호 사건이 그렇다. 아무리 개혁을 외치고, 제도를 고쳐도 한국 사회가 본질적으로 이기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변화는 없다. 앞으로 이타심을 영화를 통해 사람의 영혼에 호소하고 싶다."

-한국 기독영화의 현주소는.

"그동안 한국에서는 기독교 시장을 노린 선교 영화, 기독교 구미에 맞는 영화만이 제작돼 왔다. 사실 기독교 영화는 비교인들이 봐야 하는 건데 그런 영화들 때문에 기독영화의 질이 낮아진 면도 있다. 기독교 시장을 상업적으로 노리다 보니 당연히 기독교인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그려지고, 반면 세상은 악하다는 경계선만 긋게 했다."

(이장호 감독은 오늘날 한국 기독영화의 근본적 문제로 '제작자'를 꼽았다. 신앙이 없는 감독도 얼마든지 기독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게 현실적 문제라고 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신앙을 가진 기독 문화인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기독영화의 수준을 높이려면.

"사실 '죄'의 개념을 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건 비교인이 아닌 크리스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걸 고민하고 있다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해보고 깨닫게 해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니 세상이 기독영화에 대해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지 않나."

(현재 이장호 감독은 두 편의 기독영화를 계획중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최인호 작가의 죽음 이후 최 작가의 투병기를 보며 감동을 얻어 눈물에 대한 화답으로 영화를 만들 예정이다. 또 한국판 테레사였던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다.)

-후배 기독영화인이 많을 텐데.

"예수라면 어떤 영화 감독이 됐을까. 예수님은 아마 '독립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웃음) 같이 있던 제자들이 유명한 석학이나 우수한 인력도 아니었고 돈도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해야 했으니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러나 결국 복음은 예수님과 보잘것없던 12명의 제자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예수님의 관심은 결국 '영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나는 '씨를 뿌리는 역할'인 것 뿐이다."

한 손엔 메가폰, 다른 손엔 복음을
하나님 시선 담아내는 감독 되고파


-교계가 담당해야 할 부분은.

"사실 요즘 목회자들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너무 얕다. 그러다 보니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있게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주로 글을 보던 인문학적 세대였다면, 지금은 오디오와 비디오를 통한 인식이 더 편한 세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오디오와 비디오에 어떤 식으로 '인문'을 넣어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목회자들이 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이해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기독영화인으로서 요즘 교계를 보면.

"내리막길을 가면서 느낀 건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침묵은 곧 응답일 수 있다. 침묵 속에도 답이 있다. 오늘날 교계를 보면 참 안타까운 점이 각종 스캔들, 부정부패가 드러나도 하나님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자꾸 현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교회가 반성하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지 않겠나."

-본인에게 신앙은 무엇인가.

"신앙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숙제다. 나는 사람이 신앙을 갖기 위해 태어났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숙제의 절반은 풀었다. (웃음) 신앙을 가진 후로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됐다. 오히려 기다려진다. 그래서 나는 진정 '축복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여전히 걷고 있는 셈이다."

글=장열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

ryan@koreadaily.com

-------------------------------

☞이장호 감독은

그는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하며 그 해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당시 ‘별들의 고향’은 서울에서만 무려 관객 수 46만 명을 넘기며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바보 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외인 구단’, ‘어우동’, ‘무릎과 무릎 사이’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국내외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는 이장호 감독은 그의 20번째 작품이자 1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시선’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 ‘시선’은 해외 선교 봉사 도중 겪게 되는 극한의 피랍 상황을 통해 인간 본연의 내밀한 심리묘사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 뜨거운 질문을 던진다.

‘시선’은 LA다운타운 지역 ‘아라타니 재팬 아메리칸 시어터(The Aratani Japan American Theatre)’에서 열리는 제‘6회 기독 환태평양 영화제’에서 26일 오후 7시30분에 상영된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