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를 바꾼 30대사건]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1910년)

교회일치운동 필요성 제기, 윤치호선생 조선 대표해 참가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고 불렸던 19세기의 개신교 해외선교는 1793년 윌리엄 캐리의 인도 선교부터 시작되었다. 각종 해외 선교단체의 설립과 함께 불붙기 시작한 세계 복음화의 열기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한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개신교 선교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세계 복음화의 실제적 방향과 전략을 점검하기 위한 국제규모의 선교대회가 1910년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개최되었다.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는 선교사 모집이나 선교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전시용 집회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솔직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세계 선교가 당면하고 있던 여러가지 문제를 심도있게 분석하기 위한 실무형 집회였다.

 에딘버러 대회는 1907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지역 선교대회에서 세계 선교의 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선교자료 조사위원회’를 발족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준비작업은 1908년 7월 영국 옥스포드에서 결성된 ‘국제위원회’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국제 위원회에서는 ‘비 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선교’와 ‘타종교에 대한 선교방법’ 등의 8개의 상임분과를 설치하고 각 분야별 기초 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각 상임분과에서 준비한 선교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설문지가 세계 각국의 선교지로 발송되었으며, 선교사들의 회신내용을 종합한 종합보고서가 1910년 6월 14일,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개최 직전에 출간되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 의회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연합자유교회 대강당에서 개최된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는 영국 켄터베리 대주교와 미국 해외 선교국 총무 로버트 스피어의 기조연설로 시작되었다. 세계 각국의 160여개 선교부를 대표하는1200명이 참여한 이 대규모 선교대회는 각 상임분과별 의장의 사회로 8일간의 일정이 진행되었다.

 선교대회의 첫날 일정은 초기 YMCA운동의 핵심인물이었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미국의 평신도 지도자 존 모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이 날의 주제는 ‘비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선교’였다. 존 모트 의장은 첫날의 기조연설을 통해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가 “선교현장의 문제들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전후무후한 선교상황의 긴급성을 교회에 알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선교대회 첫날의 의제에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한 광범위한 선교보고와 집중적인 토론이 있었다. 성공적인 세계 복음화를 위해 인도, 동아시아, 이슬람 지역을 집중 선교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며 특별히 이슬람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아프리카 선교의 긴급성이 보고되었다. 당시 조선 기독교의 선교현황과 문제점은 조선 기독교 대표로 참석한 좌옹 윤치호 선생(1865-1945)의 감동적인 연설을 통해 발표되었다.

 윤치호 선생은 조선의 선교를 위해 헌신한 유럽과 미국 선교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조선기독교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너무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개종도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함으로써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자세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명연설을 남겼다. 현지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지 않고 실적주의에 빠지기 쉬운 선교사들의 유혹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윤치호 선생의 감동적인 연설에 도전을 받은 한 참석자는 긴급동의을 통해 “가장 양질의 선교사를 조선에 파송해야 한다”는 발언을 덧붙였다는 속기록이 남아 있다.

 사실 8일동안 여덟개의 분과별로 진행된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의 가장 큰 관심중의 하나는 아시아 대표단의 참가였다. 일본과 중국의 대표단과 함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조선 기독교 대표로 참석한 윤치호 선생의 모습이었다. 대회의 기록을 담당했던 가일더너는 윤치호 선생을 “조선대표는 미국의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외무부 차관이신 윤치호 선생(The Honorable Yun Chi-Ho)이었다. 그는 세상의 화려한 경력을 가졌지만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인물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선교사업을 위하여 2만 5천파운드의 헌금을 모은 조선 기독교가 피선교국가로서의 모범으로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소개할 때, ‘아프리카의 조선(Korea of Africa)’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조선 교회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에서는 선교현지의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토착문화와의 갈등문제, 예를 들면 조상숭배(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국가), 카스트 제도(인도), 축첩(아프리카)의 문제가 선교 현장의 경험을 통해 상세히 분석되었으며, 선교현지의 문화와 풍토를 존중하는 선교정책이 소개될 때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이 있었다. 심지어 중국대표로 참석한 한 선교사는 “선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선교의 문을 열고 즉시 그 문을 통해 빠져 나가는 것”인데, 많은 경우 서구 선교사들은 “자기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통로를 만들어 놓고 원주민들에게 들어오라”고만 한다고 실랄하게 비판하였다.

 여섯째 날의 일정은 에딘버러 선교대회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날이었다. 선교사간의 협력관계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8천만명의 인구를 대표하는 중국서부지역 대표단은 그 지역에서 사역하는 9개 선교단체간의 선교지역 분할(Comity) 정책과 의료선교와 교육, 그리고 찬송가의 선택등에 있어서 어떻게 다른 교단이나 국가의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이날의 토론은 20세기 기독교 연합 일치 운동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사간의 협력관계를 강조한 중국대표의 발언 이후, 이 상임분과의 의장인 앤드류 프레이져의 긴급 동의를 거쳐 교단간의 선교 협력관계를 모색할 후속위원회(Continuation Committee)의 존립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 기관의 후속기관인 ‘국제 선교 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1921년에 설립됨으로써 20세기의 본격적인 에큐메니칼(교회일치) 운동이 시작되었다. 선교 현지의 필요성에 의해 교회 일치 운동의 당위성이 제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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